착해서 행복한가요
동네에서 착하다고 소문난 남자가 있다. 농사 일도 열심히 하고 사람들에게도 싹싹하다. 그런데 그는 술만 마시면 마누라와 자식들을 때린다. 이 남자는 착한 사람일까? 공부도 잘 하고 엄마 말씀도 잘 듣는 효자가 있다. 그런데 이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을 괴롭히고 물건을 빼앗는다. 이 아이는 착한 학생이라 할 수 있을까? 가정적인 가장인데다 기부도 많이 하는 팀장이 있다. 그런데 그는 툭하면 부하직원들에게 고함을 치고 욕을 한다.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이 맞을까?
나에게는 정말 밥맛없는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착한 사람일 수도 있고 나에게 착한 사람이 남에게는 불쾌한 사람일 수도 있다. 세상에 착하다는 말만큼 기준도 없고 애매한 말도 없을 것이다. 그저 내 입맛에 맞게 행동하면 착한 사람, 그렇지 않으면 못된 사람이거나 이상한 사람이 된다. 그러다보니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사람에 대한 평판을 쉽게 믿을 수가 없다. 착하다 안 착하다 구분짓는 일도, 착한 사람으로 보이려 애쓰는 일도 무의미해 보인다.
일 년 전 일이다. 착하기로 소문난 직원이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이 직원과 같은 동네에 사는 직원이 이 직원에게 아침마다 카풀을 하자고 했는데 자기는 혼자 편하게 다니고 싶었음에도 거절을 못해서 예스라고 대답했다며 자신에게 다가올 일을 미리 걱정하고 있었다. 거기다 카풀을 요청한 그 직원은 자주 늦게 나타난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더욱더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다. 나는 말을 번복하는 수고스러움이 있더라도 다시 그 직원에게 가서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좋은 마음으로 선뜻 베푼 일이 나중엔 좋은 소리 못 듣고 관계만 틀어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처음부터 내키지도 않는 일을 상대방을 위해 희생해준다는 것은 서로에게 좋을 리가 없었다. 이 착한(?) 직원은 내가 조언한대로 다시 가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직원은 어색한 웃음으로 괜찮다 했다고 한다. 물론 조금은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서운함은 그 직원의 과제일 뿐, 자신이 손해보며 맞춰 줄 의무는 없다.
주변을 보면 남의 부탁에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이왕 들어주는 부탁 흔쾌히 들어주든지 아니면 과감히 NO!라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YES를 하고 나서 끙끙 앓기만 한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의 일종이다. 그것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깔려있고 그 욕구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자신에게 착한 주인이 아니다보니 남에게 착하다는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러다보니 남의 눈을 의식하고 눈치보며 살아가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세상에는 코드가 맞거나 안 맞는 사람만 있을 뿐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란 없다. 사람들에게 욕 좀 들으면 어떠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결코 흉이 될 수 없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원하지도 않는 무리에서 발버둥칠 필요도 없다. 모두에게 칭찬을 받는들 정작 자신의 속마음이 짓물러서 불행하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좀 더 착한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이 나를 훨씬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것은 수백명의 사람들에게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남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을 위해 할 수있는 가장 착한 일이 아닐까.
소리에 놀라지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