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쳐서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
2500여년 전, 고타마 싯다르타는 식음을 전폐하고 수행에만 매진하다 쓰러져 소녀가 준 우유죽을 먹고는 중도를 깨달았다. 도를 닦는데 고행만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을 따르던 다섯 명의 도반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변절자라고 욕을 했다. 그러나 실은 중도가 공(空)이요, 공(空)은 진리이며 진리가 곧 부처요, 예수였다.
중도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과 저것의 중간이라고만 생각한다. 이 편도 저 편도 아니다보니 "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느냐, 노선을 분명히 정해라" 등등 양측에서 압력과 욕을 듣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자기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우파와 좌파 사이에 중도파라는 것이 있는데 그 집단은 형체를 뚜렷하게 드러낼만한 특징적인 것이 없어서 잘 뭉치기도 어렵다. 알고보면 가장 이상적인 것을 골라서 적용하는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하게 보이기 때문에 대중을 끄는 매력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존재감이 불확실한 쪽은 웬만해서는 선택하려 들지 않으니까 말이다.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 딸이 좋으냐 아들이 좋으냐 등등 편 가르기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학교, 직장, 국회, 교회, 절에서 조차도 호불호를 가리고 편을 가르려 든다. 어떤 일이 생기면 빨리 파악하고 수습을 해야하는데 그것보다는 누가 나의 편이고 그 편이 잘 했니 못 했니 시비가리기에만 급급하다.
살다보면 했던 말을 번복해야 할 경우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그들은 배신자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알고보면 상황판단을 잘 하는 탁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진리 뿐인 것처럼 모든 것은 여건과 사정에 따라 모양을 달리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에 치우쳐 그것만 고집하다보면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불완전한 사람이 완전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다른 의견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 리가 없다.
중도는 중간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다. 이 돌 저 돌 다 가지고 있는 커다란 산과 같은 것이다. 냇물, 호수 다 품는 바다와 같은 것이다. 중도는 변덕이 아니다.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물처럼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 그것이 중도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치우침이 없는 것, 적당함을 아는 것 그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부른다. 중도가 곧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