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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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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Sep 27. 2015

bartender 4

명절.


오피스 상권의 가게들은 주 5일제로 문을 연다. 손님층이 거의 근처 회사의 직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쉬는 토요일, 일요일에는 손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높은 인건비를 낭비하느니 문을 닫는 것이 이득이다. 대표적으로 여의도와 같은 지역의 가게들이 이와 같다.


반대로 번화가 상권들은 토요일 일요일의 매출이 다른 요일보다 월등히 높다. 유동인구가 늘어나기 때문에 단골 이외에 뜨내기들이 많이 유입된다. 그들 중 몇 퍼센트만 단골로 잡아도 장기적인 이득이 된다. 그러나 사실 이 상권의 뜨내기들은 단골로 잡기가 쉽지 않다. 주변에 살지도 않아 평소에는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을 뿐더러 주말에나 친구와의 약속이나 특별한 일로 외출하여 눈에 보이는 데로 들르는 곳이기 때문에 다시 찾아올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물론 가게 자체에 차별화되는 특이성이 있다면 또 모를까, 그저그런 모던 바 중에 하나라면 뜨내기를 충성단골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주택가 상권. 연중무휴로 문을 여는 가게가 많다. 단골 위주로 가게가 돌아간다. 주말 매출은 복불복이다. 그러나 대체로 일요일은 거의 한가한 편이다. 집 근처 가까운 곳에 자신의 아지트 삼아 단골 바를 만들고 삼선 아디다스와 캡모자,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어슬렁 어슬렁 오는 손님들이 많다. 혹은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 전에 들르는 곳이다. 단체손님보다는 혼자 오는 사람들과 친구와 둘이 오는 경우가 많다. 테이블당 단가가 높지 않지만 꾸준한 매출이 장점이며 보통 주택가 가게들은 작은 규모로, 비용을 낮추고 그닥 크지 않은 매출에 기대어 오래 이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런 주택가 상권에서 의외로 명절 장사가 대박이 난다. 정말 의외였다.


처음 바텐더로써 명절 출근을 하였을 때, 나는 한껏 회의적인 생각이었다. 

아, 이런 날 무슨 손님이 있겠어. 차라리 문을 닫고 인건비나 줄이지, 사장은 생각이 없나. 그냥 시간이나 때우다 들어가겠군.


무료한 업무시간을 위하여 읽을 책도 한 권 들고 왔다. 그리고 그 날 내내 나는 책 장을 한장도 넘기지 못하고 명절 근무를 하였다. 

세상에, 이 사람들은 민족의 명절날 남들 다가는 고향에도 안가고 바에 오다니! 어떻게 된일이야 이게!!


명절 특수란 말이 바에도 적용이 될 줄은 몰랐다. 평소보다 몇 배 많은 손님들이었고, 더 늦게까지 머무르며 더 많은 돈을 썼다.

어떤 사람은 차례까지 다 지내고 명절 음식 냄새도 지겹고 친척들 오지랖이 성가셔서 탈출한 경우였고, 어떤 사람은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친구도 없는 서울에 혼자 남아있으려니 지겨워서 말동무를 찾아 오기도 하였다.

단순히 명절이 휴일인 사람들은 출근할 걱정이 없어서 마음껏 술을 먹으러 오기도 했다. 


그들은 외려 명절에 출근을 한 바텐더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명절 휴일에 일을 하다니, 안됐네 너희들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쌍방이 서로를 뭐지, 이 사람들은 하고 생각하였을 게다. 

통유리에 비친 휘엉청한 보름달을 등에 지고 나와 그들은 술을 마셨다. 첫 대화는 주로 '고향에 안내려가세요?' 로 시작되었고 대충 얼버부리는 손님들의 대답을 들으며 어쩌면 이 명절특수는 매체에서 떠들썩하게 보여주는 귀경행렬과 왁자하게 둘러앉아 차례음식을 먹고 하하호호 하고 있는 보통의 한국인들 무리 속에 섞이지 못한 어떤 외로움이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단골 손님이 있었다. 그는 혼자 사는 독신남 이었고, 매우 개인적인 성향을 지닌 전형적인 도시 남자였다. 의외로 그는 지방 출신이었는데, 회사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고, 십 몇년이 넘도록 홀로 살았다. 여자친구가 있다 없다 반복을 하였고 지금은 완벽한 싱글로, 이제는 여자따위도 귀찮고 혼자가 좋다 늘 강조했으며 바텐더들은 퍽이나 그러겠수 하면서 농담섞인 빈정거림으로 응수해 주곤 했다.

그래도 정말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도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윌슨 하나 만들어 놓고 여유작작하게 살 수 있을것 같이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 줄 알았는데.

명절날 삼일을 내리 가게에 들르며 전에 없이 긴 시간을 보내는 그를 보니 그냥 전에 없이 고독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되도록이면 추석이니 뭐니 하는 얘기보다는 새로 나온 영화나, 요새 화제거리가 되는 뉴스에 대해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빙빙 주위를 맴돌 뿐, 그는 대화에 집중하지 않았고, 술잔만 계속 비워졌다. 

명절 마지막 날, 나는 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물어 보고야 말았다.


"그런데 왜 고향에는 안갔어요?"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가 대답했다.


"삼 년 전에 부모님이 이혼했어. 원래 문제가 많던 분들이라 이혼한 건 상관없는데, 각자 인생 사시는 거지. 그런데 그냥 이상하게 명절이라고 내려가고 싶지가 않더라고. 누굴 먼저 찾아봐야 하는건지. 만나더라도 서로 욕하기 바쁘고. 그럼 나는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하나......  나도 이제 서른중반인데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상처받거나 그러진 않거든. 안맞으면 갈라서야지. 그런데, 그냥 아직 적응이 안되네. 올 설에도 고민 많이 하다가 안 내려갔는데, 부모님 누구 한명도 왜 안내려오나 전화도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이번에도 안내려 간거야."


의외로 아주 쉽게 속마음을 내비친 이유는 그 만큼 본인도 답답해서였을까. 명절이라고 효와 가족에 대해 온 나라에서 떠들어 대는 이런 시기라서 그랬던 것일까. 담담하게 말을 하긴 했지만, 정말 그가 아무렇지도 않다면 이 곳에 삼일 내내 와서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바텐더와 무의미한 농담따먹기로 시간을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와 같은 처지에 있거나 그보다 더 안타까운 사람들도 이 안에는 가득할 것이다. 아니면 정말 명절이 휴일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시대는 바뀌고 지금의 가족상은 예전의 가족상이 아니다. 추석과 설날, 열시간이 넘도록 운전을 하고 시루같은 기차안에 입석으로 갇히더라도 우리는 고향으로 가야한다는 절대적인 의무감을 가진 사람들도 남겠지만 홀로 텅빈 집안에 남아 추석 특선을 보다가 온 나라에서 혼자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에 자리를 박차고 말동무를 찾으러 나오는 사람들도 있겠지. 더러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 더 극적인 사연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바에 손님들이 채워지고 바텐더와 가벼운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든, 자신의 외로움을 고장난 라디오처럼 반복 재생하든 이 시간들을 밀어버리면서 술에 취해 가게문을 나서겠지. 적어도 잠자리에 들어서 다음 날 지독한 숙취로 눈을 뜨기 전까지는 그 공허한 마음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 자리에서 잠시나마 그런 역할을 했던 거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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