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바텐더 0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란 Oct 02. 2015

bartender 6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2

그 손님이 했던 이야기를 종합해 보자면 이렇다.


그 남자와 그의 아내는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고 했다. 아내는 남자에 비해 조건이 여러모로 딸렸지만 무던한 성격에 다른 여자들처럼 이것저것 까탈을 부리지 않는 것이 남자는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연애에서 시작했고, 둘의 성격만큼이나 심심한 만남이 이어지다가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여자가 임신을 했다.


고지식한 성격의 남자는 배우자로써의 여자가 크게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으나 더 잘난 여자는 만나봤자 피곤할 것이며 오래 무탈하게 함께 지내기에는 차라리 이런 여자가 낫다 생각하여 결혼을 하기로 한다.

인생이 이런 것이지.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남자는 오랜 갈등 없이 결정하였고, 여자는 임신 탓인지 남자를 사랑한 것인지, 혹은 자신에게 이보다 더 나은 자리는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순순히 남자의 결정을 따랐다.


결혼을 진행하면서 남자는 여자의 조건이 자신의 예상보다 더욱 형편없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받는 봉급의 절반도 안 되는 급여를 받는 여자는 그 마저도 쪼개어 자신의 친정에 바쳐야 했다. 물론 여자에게 결혼자금을 바랄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야말로 수저 한 벌과 몸뚱이가 전부였다. 운이 나쁘면 매달 생활비를 보조해 줘야 하는 친정부모까지 덤으로 딸려서.


“내 인생 유일하게 밑지는 장사였어요.”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계산기를 두들겨 손익이 따져나왔을 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후였다. 여자의 몸은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남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식장에 걸어들어갔다.


결혼 후 여자는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남자의 의지였다. 친정에는 결혼 전만큼은 아니지만 매달 소정의 생활비도 보내주었다고 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는 결혼 생활을 제공했다고 믿었다. 그다지 뛰어난 외모도, 능력도 없는 그 여자가 쥘 수 있는 최고의 카드가 자신이었다고 그렇게 진심으로 믿었다.

여자에 대한 애정은 그가 ‘밑지는 장사’라는 인식을 가지고 난 후부터 빠르게 식어서 남자 본인도 다정다감한 남편은 아니었다고 얘기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달랐다고 했다.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사막 같은 그의 마음 속에 소나기 같은 애정이 쏟아지게 했고, 놀랍게도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고 더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인생이란 이런 것이지 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유쾌한 되뇌임이었다. 남자의 가정은 평범해져 갔다. 고민이라고 해봤자 사소한 것들(이를테면 전업주부인 아내가 게을러서 청소를 성에 차게 하지 않는 다는 것, 돈을 절약할 줄 모르고 무절제한 소비를 하는 것, 날이 갈수록 자신에게 무뚝뚝하고 불쾌한 태도로 대한다는 것 같은) 뿐이었고 그 외에는 만사 오케이. 가끔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를 상상하고 남몰래 미소를 짓곤 하는 대한민국 평범한 가장의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계획적으로 소비해 나갔다.


그리고 한 달 전, 아내는 아들을 친가에 맡기고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만 친구를 만나러 간다하고 나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남자는 백방으로 아내를 찾으러 다녔다.

전화기는 꺼져있고, 친정부모는 딸이 가출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내의 친구를 만나보려 했으나, 남자는 자신이 아는 아내의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내려고 결심한 찰나에 아내로부터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이혼하고 싶다. 아들은 내가 키울 것이다. 아들과 함께 둘이 살 수 있도록 3억만 해주고 이혼을 해달라.>


이것이 문자의 내용이었다. 남자는 처음 며칠간은 아내에 대한 배반감과 분노로 정신이 없었으나, 자신의 전화나 문자 등을 철저히 모른 척하며 앵무새처럼 같은 요구만 반복하는 아내에게 어느 샌가 분노보다 더 강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것은 호기심이었다.


도대체 왜? 왜 아내는 십년 가까이 함께 한 남편을, 여자도 술도 도박도, 자신의 직장동기들이나 동창들, 대한민국의 많은 유부남들이 공공연하게 저지르는 악행에 한번 고개 돌려본 적 없는 자신을 왜 이렇게 통렬하게 배반해야 했을까.

고작 3억이란 돈으로 아들에게는 아빠를 빼앗고, 자신이 마련해주고 보호해주는 가정이란 둥지에서 벗어나 기술도 재주도 없이 이 험한 세상에 자기 자신을 내팽겨치려는 걸까.


남자는 그 이유가 너무도 궁금해서 잠도 오지 않을 지경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상황, 사람들, 자신이 연구하는 기계의 원리에서부터 숙취에 괴로워하면서도 해가 지면 또 다시 술을 찾는 상사와 쌓아놓은 일을 두고 농땡이를 부리는 부하직원의 어리석음 까지도 모두 자신의 상식 선 안에서 그 원인을 알 수 있었으나 십년 가까이 그와 제일 가까웠던 아내 하나 만이 그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던져놓고 사라져 버렸다.


“남자가 생긴거지 뭐. 백방.”


바텐더 하나가 쉽게 결론을 내어놓았다. 순간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세상 모든 사건의 원인은 의외로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행동은 복잡하게 보이지만 기본은 아주 단순하다. 그저 장식품을 어떻게 매다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다른 바텐더들도 말을 보탠다. 바람이 났다던가, 분명 어떤 제비가 뒤에서 3억 꿀꺽해볼려고 사주하고 있을 거라던가. 아들을 걸고 넘어지는 건 손님이 아들을 끔찍이 아끼니 양육권으로 협상하려는 수작이라던가.


그들은 입을 모아 세상에 둘도 없는 악녀가 되어버린 그의 아내를 매도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밝으며 나이 보다 조숙함을 뽐내는 바텐더들이 판단하고 내어놓는 말들은 남자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신랄하고 그럴 듯하다.


우리는 억울한 희생자가 된 남자에게 이혼을 할지라도 3억은 가당치도 않고 빈털터리로 쫓아내서 세상 무서운걸 알고 눈물로 참회하게 만들라고 온갖 호들갑으로 그를 응원해준다.

그것이 남자를 위한 우리의 위로이며 이 자리에 그가 지불한 술 값 만큼의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너무 늦지 않게 자리를 떴고, 남은 술을 킵(보관)하던 바텐더 하나가 내게 물었다.


“이 사람 다시 올까요?”


나는 그럴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는 우리가 해준 말을 일견 수긍하는 듯 듣고 갔지만 나는 어쩐지 그가 듣고 싶은 답을 듣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내 예상대로 남자는 다시 가게를 찾아왔다.


이전 05화 bartender 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