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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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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Oct 03. 2015

bartender 7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3

삼, 사일쯤 지났을까, 그 남자 손님이 왔다.

그를 아는 바텐더들은 조심스럽게 안부와 아내와의 일에 경과를 물었다.

남자는 전보다 한층 더 우울해 보였고, 더 과묵해졌다. 우리는 그의 기분을 고려해서 이혼이나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제쳐두고 당시 유행하던 연예인들의 가십이나, 화제성 있는 뉴스, 혹은 새로 개봉하는 영화에 대한 것들로 화두를 열었지만 그는 좀처럼 우리의 노력에 응답을 해주지 않았다.


술이 제법 들어가야 그는 결국 입을 열었는데, 언제나 왜 아내는 그랬을까요? 가 대화의 주제였다.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고 반복되는 남자의 징징거림에 바텐더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처음에 우리는 사랑과 전쟁을 시청하는 아줌마들처럼 분노하고, 아내의 배은망덕을 성토하고, 죄 없는 아이가 받을 상처를 염려하며 내 가족이나 된 것처럼 남자의 신변을 걱정하였다.

하지만 마치 타임리프의 굴레에라도 빠진 듯, 세 번, 네 번, 다섯 번의 방문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남자의 한탄, 반복되는 응대에 바텐더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저런 식이니까 이혼을 당하지, 이젠 그 아내가 이해가 되네!”


다섯 번째 방문으로 바텐더들의 진을 잔뜩 빼놓고 돌아간 그의 자리를 치우며 누군가 분통을 터뜨렸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쏟아 붓는 듯 감정을 낭비하는 기분은 상대의 기분을 받아주는 게 업인 바텐더에게도 스트레스가 된다. 고지식하지만 성실한 한 남자가 받는 부당한 대우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정의 실현의 한 공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똘똘 뭉쳐 ‘아내’라는 이름의 악을 물리치어 그 악이 무릎 꿇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악의 상대자인 남자는 언제나 우리가 ‘정말 못 됐군요, 그 여자는!’ 이라고 소리치면 ‘그런가요. 역시 그렇겠지요.’ 라며 미적지근한 반응만을 보여주었다.


아내를 아직 사랑해서 그런 것 인가, 아니다. 그가 자신의 반려자를 묘사할 때의 모습은……. 차라리 혐오에 가까웠다. 그는 우리에게 아내라는 사람이 얼마나 게으르고 뻔뻔한지를 묘사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자신이 얼마나 그런 사람과 부부생활을 위해 희생해야 했는지 증명하기 위해 아주 사소한 일화까지 끄집어내서 설명하고 처음 만난 이십대의 어린 여자들에게 그의 아내가 최악의 여자라는 것에 동의를 구하였다.

사랑의 형태가 다양하다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다.

나무토막과 같은 아내와 섹스를 하는 유일한 이유가 업소에 갈 돈이 아깝고, 욕구는 해소해야하니까 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혹시 아직도 아내를 사랑하시나요?’ 하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 그는 왜,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일까.


그의 아내에게 이미 다른 남자가 생겼을 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그의 결혼생활은 월하노인이 와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끝장이 났다는 사실을.

하나뿐인 아들을 위하여?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아내는 엄마로써도 최악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아들은 조부모를 엄마보다 더 따른다고 했다. 편모가정이 아이에게 좋은 환경은 아니겠지만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부모도 세상에는 많다는 걸 그 역시 인정하였다.


그가 찾는 답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니 그가 우리에게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무엇일까? 이미 자신이 생각하고 있지만 누군가의 입으로 확신을 받고 싶어 하는 그 말.


마지막으로 그 남자가 방문한 날, 여느 때와 같이 우울한 낯짝이 가게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자 바텐더들은 일제히 바쁜 척을 하기 시작했다.

가게 안에는 적당히 손님이 있었고, 우리는 누구라도 그 남자의 서브를 볼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쉽사리 움직이는 바텐더는 없었다.

결국 ‘진상처리반’인 내가 움직였다.


그 날은 남자가 새로운 소식을 들고 온 날이다. 그는 아내의 변호사로부터 아내의 주장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이혼의 사유가 되는 남자의 잘못을 구구절절이 적은 그 편지를 크게 압축하자면, 결혼 생활 내내 지속되었던 남자의 태도,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매순간 모멸감을 주는 표정,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언어폭력, 시댁식구들의 무시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남자는 말했다. 도대체 말도 안 되는 트집이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이 사람은 왜 나한테 이러는 걸까요?”


당시 나는 별로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전 날 잠을 설쳐 머리는 무거웠고 이 전에 사람을 매우 힘들게 하는 까탈스러운 팀의 서브를 막 끝낸 참이었다. 비위에 맞지 않는 손님의 서브를 살살 미루는 동료들의 이기심에 짜증도 나고.

그래서 또다시 이 한심한 질문을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퉁명스런 본심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내분도 그럴 만하니까 그렇게 써서 보냈겠지요.”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남자는 얼어 있었고, 나는 그냥 넌 앞으로 안와도 돼, 라는 심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부었다.


“십 년이나 함께 산 아내가 왜 이렇게 배신 하냐고요? 배신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살고 싶어서 나갔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까놓고 말해서 손님은 그럼 왜 십년 가까이 산 아내를 생판 모르는 우리한테 그런 식으로 얘기하나요?

이미 시작부터 나한테 처지는 상대라고 얕잡아 보고 하는 결혼생활이 그럼 온전히 지속될 거 같았습니까? 아내라고 결혼이 하고 싶었겠어요? 임신이 본인 발목만 잡았나요? 모아둔 돈도 없이 남의 돈으로 눈치 보면서 하는 결혼이 아내라고 마냥 행복했겠냐고요.

한번이라도 아내한테 너는 나랑 결혼해서 행복하냐고, 지금 생활에 만족하냐고 물어봐줬어요? 네?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그렇게 물어본 적 있어요? 네? 없다고요? 물론 없겠지요. 가난뱅이 아내는 그냥 내가 선택해 줬으니 무조건 황송한 마음으로 따라와야 했었겠지요.

좋은 남편? 업소 안가고 도박 안하고, 이게 아내를 위해 한 일이에요? 본인이 돈 아까워 안한 걸 가지고 왜 아내에게 생색을 내세요? 이게 정상적인 부부생활이에요? 마지못해 주인과 노예로 사는 거지요.

내가 그 동안 말은 안했는데 그동안 우리한테 하는 얘기 들어보면 집에서 아내 분한테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안 봐도 비디오네요. 그래 놓고 상관도 없는 우리들한테 아내가 왜 그랬는지……. 진짜 몰라서 묻는거에요?”


나는 남자가 화를 내거나 항변을 하거나, 어쨌든 나는 좆됐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는 화를 내지 않았다. 여기가 보리수나무 아래도 아닌데 남자는 마치 어떤 깨달음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듯 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국의 백화점을 돌아다녀도 찾을 수 없었던 꼭 원하던 물건을 어느 시골 노점상 판매대에서 만난 것 같은 그런…….


“그렇군요. 내가 그랬네요.”


남자의 말에 이번에는 내가 충격을 받았다. 이 꽉 막힌 인간이, 사면이 고지식으로 둘러싸인 작은 섬 같은 인간이 자기보다 열 살은 어린 바텐더의 짜증 섞인 헛소리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앉아있다.


“그게 불만이었네요. 아내는.”


그리고 그는 몇 가지 더 나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자신의 말투가 많이 고압적으로 들리는지, 자신의 성격이 어떻게 보이는지,(정확히는 얼마나 재수 없게 보이는지) 자신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던 것인지…….

내내 아내의 행동에 의문을 품던 남자는 돌연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하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성의껏 대답해 주었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이게 이 남자가 원하던 대답이야?

그가 인정하고 싶었던 결말이 이런 것인가? 그의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걷히고 화색이 돌았다. 그는 자신이 아내에게 무심히 던졌던 말들과, 그가 아내를 바라보았던 부정적인 시선을 되돌아보고 ‘그래 결혼 생활이란 그런 게 아니지’ 라고 중얼거렸다.


오류를 찾은 기술자처럼, 그는 이제 문제점을 찾았으니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믿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며칠 동안 내가 보아왔던 남자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것 같으면서도 또 너무도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떠난 남자는 그 후로 다시는 가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의 실패를.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오류가 있는 세상의 존재를. 아내에게서 문제를 찾으면 모든 것은 알 수 없는 채로 끝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주변인들이 떠드는 것처럼 그냥 아내가 미친 것이지, 그 속을 누가 알겠어. 하고 넘겨버릴 수 없었던 것일까.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세계. 비록 자신이 돌을 맞더라도. 이게 그가 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고칠 수도 있을 테니까.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던,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있던, 그것은 그냥 문제일 뿐이다. 원인을 알면 고치지 못하는 문제는 없다고 그는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단지 여섯 번 만난 그 남자의 마음속을.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손님 하나를 잃었다는 것뿐이다. 좋다.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어쨌든 그를 괴롭히는 문제가 사라졌다는 뜻이니까. 뭐, 가게 입장에서는 조금쯤은 손해가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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