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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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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Oct 13. 2015

bartender 9

무전취주에 관하여.  1

무전취식이란 말이 있다. 돈 없이 식사를 한다는 뜻이다. 잘못되었고 해서는 안 되는 행위임이 분명하지만 나는 무전취식자들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관용과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


배를 곯아본 적이 있는가. 체중 감량이나 혹은 다른 목적에 의한 단식이 아니라 순수히 나의 입으로 집어넣을 양식에 대한 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현대 사회에서 그러한 입장에 처한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특히나 지금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더욱. 나 역시 돈이 없어 굶주린 적은 없었다.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생존을 위협할 만큼의 빈곤은 아니었으며 나의 욕구를 위해 누군가에게 굴욕을 당해야 했던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를 주리는 사람, 동물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게 되면 그들이 느끼는 곤궁과 설움에 깊은 감정이입과 함께 뭐라도 먹여야 할 것 같은? 그런 의무감이 든다.

현대 대한민국 서울 하늘 아래에도 아직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걸 알고 있고(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낯 뜨거운 도움의 손길을 줄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다.     


그렇지만.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것이 꼭 필요한 일도 아니면서.

무전취주(酒)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술을 못 마시면 죽기라도 한단 말인가? 지불할 형편이 아니 됨에도 꼭 취해야 할 만큼 그것이 그의 삶에 필요불가결한 일이란 말인가?

만일 꼭 술이 필요하다면, 오늘 하루의 절망감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어 그것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끔찍한 상태라면, 그래 그것도 백번 양보해 이해해보겠다.      


그럼 그저 동네 슈퍼만 가더라도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나를 별세계로 운반해 줄 주류들이 널려있는데, 천 원짜리 몇 장으로 천국이든 지옥이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을 텐데, 어째서 구태여 바를 찾는단 말인가?

비참한 삶이 주는 모멸과 능욕이 모자라 이젠 한참 어린 초면의 바텐더들에게까지 멸시당하며 제 밑바닥을 까 보이고 싶단 말인가?

아니면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피가학적 성향의 정신병자들인가?     


나는 그들의 행동과 선택이 너무도 궁금하여 한동안 이 무전취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다.     

비싼 술과 단정한 바텐더, 말쑥한 인테리어를 가진 바에는, 무언가 고상한 행동들만이 그 자리를 채울 것 같지만 위에 얘기한 것처럼 뻔뻔하고도 추접한 무전취주 사건이 발생한다. 내 경험으로는 대략 일 년에 네다섯 번꼴로 발생하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경험하고 들은 바에 따르면 어디에서도 제로는 아니었다.       


이들은 크게 나뉘어 두 가지 타입이 있다. 개복치와 먹튀.     


먹튀가 먹고 튄다는 준말인 그대로 그들은 술자리의 끝에 이르러 적당한 기회를 노려 재빨리 도망가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런 타입들은 대게 술을 마셔도 만취할 정도까지는 마시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 산만함과 불안 증세를 보인다. 그리고 잠깐 전화를 한다며 일어나 입구 쪽으로 향한다던지, 혹은 화장실이 외부에 있는 경우 볼일을 보러 가는 척하며 그대로 사라지는 방법을 쓴다.


가끔 담배를 사러 간다던가, 친구를 데리러 나갔다 온다며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바에서는 어지간한 단골이 아니고는 일단 외부로 나간다고 한다면 계산을 미리 시켜두기에 이 방법은 잘 쓰지 않는다.      

간혹 그렇게 나갔다가 계산 없이 사라지는 경우는 정말 만취하여 자신이 계산을 안 한 사실을 잊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 사람들까지 무전취주자에 넣기는 좀 애매하다.      


확실히 먹튀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일단 만취상태가 아니고, 사리분별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정도의 지각이 있다. 그들은 어떤 전조를 보이는 데, 사실 이 기미도 일이 벌어진 후에나 바텐더들이 그렇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는 것이지 대부분은 그저 넘어가고 마는 사소한 행동들이다. 그래서 이런 먹튀들을 미리 눈치 채고 잡아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더더군다나 바의 안쪽에서 근무하는 바텐더가 도망가려고 마음먹은 먹튀를 따라 잡기는 불가능한 일이며 혹여 따라 잡더라도 여성의 힘으로 그들을 붙잡아 둘 수 있을 리도 없다.


오히려 홀로 따라 나갔다가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바텐더들이 먹튀를 홀로 쫓아가는 행동을 권장하고 싶지 않다.     


다음은 개복치 형인데…….

개복치가 요새 인기 있는 그 물고기 개복치가 아니라, 이건 그냥 내가 붙인 이름이다.

배 째라 형인 개복치. 開腹.

이들은 먹튀들과 달리 언제나 만취한다. 그럴 수밖에. 도주를 포기했다면 남은 것은 비난과 멸시의 도가니에 몸을 담그는 결말뿐인데, 아무리 두꺼운 낯가죽을 둘렀다고 해도 맨 정신으로 당해내겠는가.      

느긋하다. 그저 마실 만큼 마시고 늘어질 만큼 늘어진 후에 빈 지갑, 한도초과나 사용 정지된 카드들을 던져놓고 ‘계산해, 안 돼? 아 그럼 몰라. 알아서 해.’ 그리고 끝.


먹튀는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고 개복치들은 어이없게 만든다.

어쩜 이리 당당한 것인가. 만난 개복치들 중에 단 한명도 돈이 없음을 사과하는 개복치는 없었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낸다. 아니면 화를 내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시비를 건다.      

대체로 상습범인 이들은 알고 있다. 자신이 여기서 저지른 짓이 경미한 사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어차피 그 대가가 그리 크지 않음을. 이들은 경찰서에 가더라도 대체로 훈방조치 되며, 어떨 때는 경찰조차 부르지 않고, 모든 것이 귀찮고 상황이 짜증스러운 업주로부터 소금세례와 함께 쫓겨날 뿐이다.

그저 잠깐의 수치를 참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개복치도 먹튀도, 어쨌든 사람을 필요로 하여 바에 오는 것이고 긴 시간 우리와 대화하는 것일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서. 타인과 교감하고 그 자신의 생각과 삶을 인정받고 공유하고 싶어서.

‘이제 계산해주세요’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들은 모두 너무도 멀쩡한 한명의 사회인이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러하다면...... 그 사회 안에서, 내가 지금 속한 그 시간과 사람들 안에서 나 자신의 명예와 존엄을 버리는 그런 행동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그 모순적인 행동은 뭐란 말인가?     


나는 그것이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정말 인연인가 싶게  다섯 번이나 마주쳤던 한 무전취주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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