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그녀에게 배운 결핍을 껴안는 법
다큐멘터리 만드는 일을 하면서 가족 잃은 사람들을 잠시 바라본 적이 있다. 2017년, 세월호 유가족 합창단을 만났다. 공통된 일을 겪고난 뒤 어떤 이는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어떤 이는 아이가 먹다 남긴 사탕 껍질마저 버리지 못했다. 매일 같은 옷만 입고 같은 표정만 지으면서 그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매일 밥 대신 믹스커피만 먹으면서 겨우 생을 부지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아이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겠어서, 누가 뭐라든 아랑곳 않고 전보다 더 억척스레 장사하며 살겠다고 했다. 전국을 누비며 다른 아픔이 있는 곳에 가서 노래로 타인을 위로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보며 오래 궁금했다. 인터뷰를 하고 답을 들어도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어떻게 상상도 못 할 고통 속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세상을 원망하고 스스로를 탓하며 죽어가는 대신에 다시 살기로 선택했을까? 그저 개인의 정신력이 강해서일까? 그 질문을 잊고 살다가 <환상의 빛>을 우연히 다시 봤다. 한 가지가 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주인공 유미코의 어부 남편같은,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의 힘이었다.
영화 <환상의 빛>은 남겨진 아내, 유미코가 삶을 다시 살아나가는 이야기다. 유미코는 남편과 갓난 아이와 소소한 살림을 꾸리며 살고 있었다. 행복의 정점에서 그 일이 일어난다. 어릴 때부터 친했던 사이인 남편,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어느날 문득 스스로 열차에 치여 세상을 떠난다. 역무원은 사고가 아닌 자살로 보이는 정황을 이야기 해 준다. 유미코 스스로 해석할 수 없고, 납득하기 어려운 죽음. 자신에게 그 어떤 죽음의 전조도 알려주지 않은 남편을 원망하기도, 그리워하기도 하며 세월이 흐른다.
표정없이 살던 유미코. 몇 년이 지나 아이가 7살 즈음이 됐을 때, 어머니와 이웃들의 소개로 한 어부를 만난다. 멀고 먼 바닷가 마을, 아내와 사별한 어부 남자와 살림을 차리고 다시 살아간다. 남자는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노동력을 사 왔다고 생각하거나, 쩔쩔매거나 하는 태도 없이 적당한 다정함으로 스며든다. 유미코는 천천히 바다와, 남자에게 익숙해져 간다. 표정을 되찾는다. 그러나 죽은 남편의 기억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어느 날 유미코는 마음에 부는 바람을 잠재우려 바닷가를 걷다가, 우연히 만난 마을 장례 행렬을 홀린 듯 따라간다.
# 바다.
모르는 이의 장례 행렬을 홀린듯 따라갔던 유미코.
바닷가에서 태워지는 남의 관을 멍하니 보고 있다.
유미코가 걱정돼 돌아다니다 여자를 찾은 남자.
유미코가 남자에게 말한다.
"나 있지, 정말 모르겠어.
그 사람이 왜 자살을 했고
왜 철로 위를 걷고 있었는지
그런 거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게 돼
그 사람이 왜 그랬을 것 같아?"
남자가 답한다.
"바다가 부르는 것 같았대.
아버지가 전에는 배를 탔었는데,
홀로 배 위에 있으면
저 멀리 아름다운 빛이 보였대.
아버지를 끌어당겼대,
반짝반짝 빛나면서.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무심하게, 하지만 오래 생각해왔을 말을 아내에게 해주는 남자. 대화를 나누는 동안 유미코는 관(죽음) 쪽에서 남자(삶) 쪽으로 서서히 걸어간다. 당신의 전 남편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징조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은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 이라는 남자. 어떤 말 한마디는 한 사람의 일생을 구원하기도 한다. 남자의 저 말이 그렇다. '너 때문이 아니다. 누구 때문이 아니다. 어떤 불행은 일어나고야 만다. 그리고 그 불행은 우리가 먹고 자고 웃고 우는 이 지척에서, 저 아름답고 익숙한 바다에서도, 철길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건 우리가 어찌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닌데, 그 말이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우리도 그 '누구'일 수 있으니까, 지금 여기를 살자.'
그런 이야기를 남자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남겨진 사람에게 달렸지만, 유미코는 받아들였던 것 같다. 저 장면이 지나가고, 유미코는 어두운 옷 대신 하얀 셔츠를 처음으로 입고 등장한다. 두꺼운 검은 코트를 입던 겨울이 지나 봄이 온 것이다. 계절이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그럼에도 다시 봄이 오는 것처럼, 당신의 상처도 사계절 내내 품어야만 할 것은 아니라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영화는 말해주는 것 같다.
글 도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