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원 Sep 15. 2023

<러스트 앤 본(재와 뼈)> : 결여와 결여가 껴안다

영화 속 그녀에게 배운 결핍을 껴안는 법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영화 <러스트 앤 본(재와 뼈)>에 대한 글에서 '사랑은 결여와 결여의 만남.'이라 썼다. 내가 그 문장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생 때였다. 그때 내가 가장 오래, 가까이에서 본 사랑의 형태는 엄마, 아빠밖에 없었는데 그 둘은 ‘충만과 결핍’의 만남으로 보였다. 마음이 추웠던 아빠를 구김 없고 따듯한 엄마가 품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내게 사랑이란 일방적인 구원이었다. 그런데 <러스트 앤 본>에는 서로를 구원하는, 나약한 두 명의 인간이 등장했다. 결핍과 결핍이 만나면 완전한 구덩이 아닌가, 더 추워지는 거 아닌가,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10년이 흐른 뒤에, 한 남자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가장 쓸쓸했을 때 해사하게 웃으며 마음에 걸어 들어온 남자. 그때 나는 쉽게 외롭고 불안해지는 한 여자였다. 처음에는 남자가 여자를 구원했다고 생각했지만, 알면 알수록 서로에게 구원이었다. 여자가 울면 남자가 다독이고, 남자가 울음을 애써 참고 있을 땐 여자가 마음 놓고 울게 해 주었다. 나는 이제야 이 영화를, 신형철의 글을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은 결여와 결여의 만남이라는 것. 수식에서 –1에 –1을 더하면 -2가 되지만, 사랑에서 결여와 결여가 만났을 때, 그 답은 1 이상이 된다는 것을.   

   

<아픔을 위로하는 무심함

  <러스트 앤 본>의 여자 주인공 스테파니의 결여는 아름답고 탄탄했던 다리다. 고래가 좋아 범고래 조련사가 되었지만, 사고가 일어나고 범고래는 그녀의 다리를 앗아간다. 가장 사랑하던 것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긴 끔찍한 운명. 삽시간에 그녀의 삶은 잿빛이 되어버리지만, 이내 ‘알리’라는 남자를 만나고, 천천히 자신의 생을 구원하게 된다. 그녀가 다시 일어서게(물리적으로도 의족을 차고, 마음으로도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되는 것은 알리 때문만도, 오롯이 스스로의 의지 때문만도 아니다. 알리가 무심하게 도왔고, 스테파니가 그 마음에 의지해 애를 썼기 때문이다.      


  알리는 단순하고 무심한 남자다. 그 태도가 스테파니를 살게 한다. 사람이 아플 때, 갑자기 털썩 주저앉았을 때,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결코 동정심이 아니다. 내가 아프다는 것, 내가 지금 주저앉아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그런 사람에게 '괜찮니?' 하고 물어오는 것이나, '빨리 일어나 봐' 하고 내미는 손은, 그 사람을 더욱 비참하게 할 뿐이다. 알리는 스테파니를 '다리 잃은 가여운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단순한 그에게 그녀는 이전과 같이 아름다운 여자였을 뿐이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니까 곁에 있어주면 그만이었다. 그 '동정 없음'이 스테파니를 움직였다. 그토록 좋아하던 물에서 사고가 났기에 다시 헤엄칠 용기가 없었던 스테파니. 알리는 그녀를 독려하거나 안쓰럽게 여기는 대신에, '(나는 수영이 하고 싶으니까) 나는 바다로 갈게'. 하고 혼자 풍덩 뛰어들어버린다. 즐겁게 수영하는 그를 바라보던 스테파니는, 다시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면서, 수영을 다시 해보고 싶어 졌을 것이고, 그렇게 한다.      


  다리를 잃은 뒤의 첫 수영. 그렇게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아걸었던 스테파니가 처음 환기를 한다. 알리의 동정 없는 태도에 기대어 스테파니는 조금씩 살아보려 애쓴다. 잃은 다리가 되돌아올 수는 없지만, 잃은 채로 살아가는 법을 익히려 노력한다. 알리의 건강한 몸에서 욕망을 느끼고, 그와 몸을 섞으며 생기를 얻는다. 알아주는 이 없는 복서로 살아왔던 알리는 거리의 싸움꾼으로 생계를 잇는데, 스테파니는 그 건강한 몸과, 넘치는 에너지를 보며 환희를 느낀다.      


  그렇게, 모두 포기하고 누워만 있으려 했던 그녀가 서서히 움직인다. 의족을 하고, 걸음마 연습을 시작한다. 어느 날은 휠체어에 앉아 고래들을 조련했던 동작을 연습해 본다. 다시 직장에 찾아가 범고래와 인사하고, 동료들과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날은 알리와 클럽에 갔다가, 다리를 잃은 이후로 처음 ‘질투심’이란 강렬한 생의 감정을 느끼며 알리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잃고 나서야 깨달은 사랑>

  하지만 알리는 '아직은'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알리에게는 갑자기 나타난 다섯 살 아들이 있다. 그동안은 맨주먹으로 살아갔지만, 친누나 밑에서 아들을 키우며 이일 저 일을 하게 되고, 마트에서 사측이 노조를 감시하는 일에 동조했다가 캐셔로 일하던 친누나를 해고당하게 만들고야 만다. 그리고 그는 그 충격으로 자학하며 아이와 스테파니의 곁을 떠난다. 남겨진 스테파니에게 알리와의 만남은 또 한 번의 크나큰 결여를 안겨주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때 알리도 결핍을 겪게 된다.      


  겨울, 알리를 만나러 왔던 아이와 놀다 한눈을 판 새, 아이가 얼음 구멍에 빠진다. 알리는 맨손으로 얼음을 깨어 아이를 구한다. 결국 그는 복서로서 소중한 손을 잃는다. (손가락 뼈는 다른 부위와 달리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 아이는 3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회복하고, 알리는 그제야 스테파니의 부재를 실감한다. 알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스테파니와 통화를 하고, 그는 처음으로 말한다. '아이를 잃을까 봐 두려웠어. 나를 버리지 마. 사랑해.'      


  스테파니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부정할 정도의 결핍을 겪어본 사람이었으나, 알리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강인함을 믿었고, 맨주먹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가 죽음의 세계로 넘어갔던 3시간 동안 생이 모두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알리는 그때서야 비로소 결핍을 깨닫게 된다. 삶에서 소중한 것들이 잠시 한눈 판 사이 얼음 사이로 사라져 버릴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스테파니를 붙잡게 된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한다고 해서, 스테파니에게 다시 다리가 생기거나, 알리의 손이 아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은, 잃은 상태 그대로를 ‘나’로써 느끼게 한다. 결핍된 상태의 '나'를 그대로 '나'로 사랑할 수 있게 하고, 그것이 계속 살아갈 힘이 된다. 


글 도상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