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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Aug 14. 2023

<벌새> : 여자, 어둠 속에 손을 마주 잡다

영화 속 그녀에게 배운 결핍을 껴안는 법

  쪼그려 앉아 종이를 태우던 엄마의 뒷모습을 봤다. 그때 나는 열네 살이었고, 모르는 여자처럼 선득한 엄마가 두려웠다. 보면 안 될 것을 본 사람처럼. 타오르는 불을 빤히 바라보던 낯선 사람, 엄마가 태우던 건 뭐였을까. 아빠에게 보내려던 편지였을까. 이혼서류였을까. 화, 회한, 상념 그런 것들이었을까. 내가 부르자 그녀는 그 얼굴을 깨고 다시 엄마가 되어 나를 꼭 안아 줬다. 잉걸불 냄새가 났다. 나중에 엄마는 불을 보고 있으면 속이 개운해져서 그랬다고 했다. 성실한 아버지는 폭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딸은 모르는 어떤 이유로 푸른 멍이 엄마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벌새>의 은희가 혼이 나간 듯 선 엄마의 뒷모습을 소리쳐 부를 때, 거기엔 엄마 아닌 한 여자, 지난 생을 돌아보는 한 여자가 서 있다. 그 얼굴이 엄마의 얼굴과 겹쳤다. 그때 엄마는 사랑을 받고 싶었을까. 아니면 온전히 자신을 사랑해보고 싶었을까. 먼 데서 엄마의 마음을 가늠하며 사랑해 주는 사람 없이도 오롯해지는 일과 간절히 애정에 매달리는 일을 오가던 가을, <벌새>의 여자들을 만났다. 가족에게서, 누구에게서든 사랑을 갈구하던 열네 살 은희. 마음 둘 곳 찾지 못해 허공에 떠 있던 은희에게 우롱차를 내어준 영지 선생님. 그들이 맞잡은 손의 온기를 전해 받았다.     


                                    

[추락하지 않으려 수천 번 날갯짓하는 벌새처럼]

  은희는 불안하다. 심부름을 다녀와 집 문을 두드렸는데 엄마가 나오지 않는다. 미친 사람처럼 엄마를 부르며 문을 두드린다. 그러다 문득, 아파트 층수를 잘못 찾아온 걸 깨닫는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마음은 늘 불안에 떤다.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내가 뭔가를 망칠까 봐, 뭔가 나도 모르게 망쳐지고 있을까 봐. 끝없이 다른 모양의 사랑을 찾아 갈증을 채운다. 아버지는 아들의 반찬 하나까지 걱정하며 온 식구가 그의 공부를 도와야 한다고 이르지만, 은희가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쳤을 땐 주인에게 그냥 경찰서에 데려가라며 무심하다. 친오빠는 은희를 때려 귀를 다치게 한다. 엄마는 방패가 되어주기엔 너무 지쳐있다. 그런 은희가 교문 앞에서 자신만을 기다리는 남자친구를 만날 때, 어떻게 가장 환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


  은희는 남자친구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려 입을 맞추자고 제안한다. 자신에게 관심을 주던 후배가 개강 후 모르는 척을 하자, 은희는 사랑의 증발을 예감하며 뛰어가 황망하게 묻는다. “너.. 나를 좋아한다고 했잖아?” 부모님의 관심을 독차지할 생각에 귀의 염증조차 반갑다. 아버지가 귀 수술 흉터를 걱정하며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것을, 어머니가 드디어 반찬을 자기 숟가락에 놓아주는 것을 보며 기뻐하고, 언제 거둬질지 모를 사랑에 두려워한다. 사랑을 확인하려는 끝없는 흔들림들 속에, 은희는 한문 학원에서 자신을 단단하게 붙잡아 줄 김영지 선생님을 만난다.     



[너 이제 맞지 마, 어떻게든 맞서 싸워]

  먼 곳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선생님. 그 뒷모습에서 은희는 그녀를 자신만의 자장 안에서 고요히 헤엄치는 사람처럼 느낀다. “선생님도 자신이 싫을 때가 있으세요?” 물어보게 되는, 타인에게 빛을 구하지 않아도 홀로 생존할 심해어 같은 사람으로. 첫 수업 시간, 선생님은 은희에게 “좋아하는 게 뭐예요?” 질문을 건넨다. 학교 성적이나 부모가 하는 일, 장래 희망 같은 게 아니라 은희 자신을 물어보는 사람, 그전에도 있었을까. 친구는 곁에서 “너 김지환 좋아하잖아. 김지환이요!” 놀리지만, 은희는 “저는 만화 그리는 거 좋아해요” 하고 작지만 분명히 말한다. 사랑을 주는 이름에 매달리는 여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가진 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순간. 그 순간부터 은희에게 선생님은 최초의 연대를 느낀, 자신을 존중해 주는 존재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은희는 울고 싶을 때 선생님을 찾아들게 된다. 우는 은희에게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저 우롱차 한 잔을 우려낸다. 가만한 얼굴로, 기대도 속단도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 어느 날 오빠의 잦은 구타에 은희의 귀에 염증이 생겼을 때, 병문안 온 선생님은 말한다. "은희야, 너 이제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마."



[모든 것이 무너져도, 그런 온기 하나 있다면]

  이것은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의 이야기다. 시대는 폭우 때의 강물처럼 흘러가고 그 속에서 엄마가 아빠에게 맞고, 은희는 오빠에게 맞는 집안의 일은 가랑비다. 일상적 폭력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멈춰지지도 않는다. 그때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마'라고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은희 곁에 존재했다. 선생님이 혼자서도 오롯한 사람이어서, 강인한 사람이어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은희에게 남긴 편지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라고 고백하기에. 1994년은 선생님에게도 은희에게도 무참한 시간이었다. 그럼 에도 암흑 속을 헤매며 그녀는 은희의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삶에 발 디디고 설 수 있다. 자기 마음의 멍을 바라보다가도, 내가 부르자 돌아서 나를 안아주었던 그때의 내 엄마 같은, 은희의 김영지 선생님 같은, 그런 사람이.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그 사람마저 세상에서 사라져도, 은희는 앞으로도 죽지 않고 살아낼 것이다. 선생님이 심어준 온기를 지켜내고, 다시 피워낼 것이다. 살면서 만날 또 다른 은희들에게, 맞고 주저앉은 여자들에게 우롱차 한 잔을 내어주려고.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마'라고,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다리 하나를 마음에 세우라는 말을 건네주려고.



[글] 도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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