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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영 Oct 10. 2022

xoxo

보스턴 1

  너무 들뜬 나머지 잊었던 걸까. 저녁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에 와서 티켓팅 할 때 알게 됐다. 나에겐 비자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그 비자를. 전자 비자를 신청하면 빠르면 몇 시간 안에도 나오지만 일요일인 관계로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월요일까지 난 출국할 수가 없었다. 일단 비행기표를 구매한 여행사에 전화해서 내 상황을 알려 비행을 월요일로 미루고 공항에서 하룻밤 보내기로 했다. 집을 열흘 동안 비울 계획으로 이미 청소를 다 하고 나온 데다 어차피 일찍부터 다시 공항으로 나오려면 집 가서 몇 시간 못 자고 다시 나와야 했기에. 그냥 공항에서 하룻밤을 노숙하는 게 더 편하겠다 싶었다.

 

  이전에도 공항에서 하룻밤 노숙한 적이 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를 앞둔 상황에서 일주일 만에 여행을 결심해 마지막 학기 시작과 동시에 휴학계를 내고 런던으로 떠났다. 그 당시 런던과 아일랜드에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친구가 둘이나 있어서 런던에서 2주의 시간을 보내고 아일랜드로 넘어가서 또 일주일을 보낸 후 스위스를 거쳐서 파리로 가는 계획을 두루뭉술하게 잡고 일단 떠났었다. 최고의 봄을 보낸 후 최악의 여름을 보내면서 생긴 많은 문제들을 뒤로하고 떠났었다. 풀어야 할 친구 문제도 있었고, 그냥 놓아버리고 싶은 관계도 있었고, 나의 그런 문제적 상황에 많이 질리고 마음이 많이 복잡한 상태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개인적인 일로 힘들어서 대화와 위로가 필요해 날 여러 번 찾던 친구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 친구도 한 번을 못 만나줬다. 만나면 내 마음을 털어놓게 될 상황이 올 텐데, 그러기도 지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 도움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그런 친구도 외면하고 떠났었다. 몇 년을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 동안 내 안에는 다가올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쓸데없는 감정들이 쌓여 가득 찬 기분이었다. 잠시 멈출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비우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돌아왔을 때 그런 시간도 못 견디고 더 꼬여버려서 해결이 안 될 문제라면 그러든지 하는 마음으로 떠났었다.

 

  그렇게 떠난 런던의 상황은 더 춥고 차가웠고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날 런던을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에 저녁부터 공항으로 가서 하룻밤 노숙했었다. 거기 공항에 의자는 거의 없었고 나처럼 하룻밤 노숙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사람들은 큰 배낭 하나씩과 함께 바닥 여기저기에 다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나도 내가 체크인해야 하는 곳 근처 바닥에 자리 잡고는 시린 바닥에는 겉옷을 깔고 앉았다. 처음엔 핸드폰 좀 들여다보다가 슬슬 잠이 몰려올 때 주위를 둘러보니 배낭을 베고 누워서 자는 사람들이 보이더라. 나도 배낭을 기대기 좋은 각도로 놓고는 바닥에 깔아놓은 겉옷으로 나를 감싸며 움츠려 누웠다. 그 순간이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심지어 여행 처음 떠나왔을 때만큼 설레기도 했던 거 같다. 그런 날까지 추억하며 인천공항에서는 쿠션으로 된 3인용 의자에 누워서 푹신하게 한 숨 잤다.


  비자 발급 기다린다고 인천공항에서 25시간, 10시간 반 바다를 건너 샌프란시스코에서 경유 2시간, 또 대륙을 건너 5시간 반. 꼬박 하루를 새고 총 17시간 이동 끝에 보스턴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이미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여행 시작도 전에 더 이상 힘을 뺄 수가 없어 망설이지 않고 택시를 타고 일정 동안 묶기로 한 호텔로 갔다. 택시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데, 여기를 떠났던 날이 떠올랐다. 16년이 지난 그날. 9년을 살았던 벽돌 아파트를 뒤로 하고 공항으로 가던 차 안에서, 여기를 이제 떠난다는 게 실감 나지 않으면서도 눈물이 날 거 같아 하염없이 밖만 내다보며 아무 말 없이 공항까지 갔던 게 선명하게 기억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스턴을 떠났던 날은 아니다. 내 첫 돌이 지났을 때 아빠 유학생활로 아빠, 엄마 나 우리 세 식구는 미국으로 넘어와 매사추세츠 주의 로웰(Lowell)이라는 도시에서 살게 됐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미국 어디서 살다 왔냐고 물으면 보스턴이라고 말해왔다. 그 당시에는, 아니 사실 지금까지도 동부 쪽의 대표적인 도시 뉴욕이나 보스턴, 시카고, 워싱턴이 아니면 들어는 봤어도 어디에 있는지 거의 모른다. 로웰이라고 하면 그게 어디냐고, 그러면 보스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 설명을 하다가 언젠가부터는 그냥 보스턴이라고 답해왔다. 보스턴 옆동네로 유명한 로웰이니까. 미국에 있었던 사실을 언급할 상황이 오면 그렇게 10년 넘게 동안 난 보스턴에서 살았었다고 말해서인지 어느새 보스턴은 나에게 너무나 친근한 곳이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 중 제일 행복했던 시간을 두고 온, 마음속 고향이 돼버린 것이다.

 

  힘들게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여기가 로웰이든 보스턴이던, 어쨌든 여기가 이렇게나 오기 어려운 곳이었나, 그래서 이제야 다시 와보나 싶다가도. 어떻게 보면 제일 오고 싶던 곳인 만큼 쉽게 올 수 없던 건 아니었나 싶었다. 분명 날짜가 12월로 넘어간 걸 봤는데 도착하니 다시 11월 30일로 돌아가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왔는데 날짜는 하루가 되돌아가 있었다. 보스턴이 이렇게나 먼 곳이었다니.

 

 며칠 미리 오신 아빠가 묶고 있는 호텔로 오니, 아빠가 룸서비스로 시켜놓은 클램차우더가 나보다 먼저  있었다. 한국에서 파는 곳이 많지 않아서 항상 그리운 음식  하나다. 해외여행 갔다 와서 인천공항 도착하면 지하 식당가로 내려가 김치찌개를 시켜먹는 것보다  반가웠다. (그렇게 생각나지 않았어도 여행 후엔  김치찌개를 시키게 되더라) 가방만 내려놓고 아직 따뜻한 스프로 속부터 녹였다. 클램차우더와 함께 오는 크래커는 살짝 뿌셔서 스프에 뿌려서 같이 먹어줘야 한다.    했는데 과자랑 그렇게 같이 먹으니 간이  맞았다. 속을 채운  씻고 누우니 바로 잠들었다. 이틀 만에 누워서 청한 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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