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되어간다
나의 육아우울증 극복기 19
아이를 만난 지도 어느 새 1년이 다 됐다.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엄마젖만 먹던 아기가 이제는 사람처럼 밥도 스스로 먹고, 집 안을 누비며 어설프게 엄마아빠를 부르기도 한다. 신생아를 유아로 만드는 1년간 내 머릿속에는 수 많은 고민이 머리를 스쳐갔지만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이렇게 모성애가 없어서 어떡하지'였다. 자칭타칭 '드라이'한 성격인 우리 엄마를 닮아서 나 역시 잔정이 없고, 나 자신이 제일 중요한 성격이었다. 원래는 결혼조차 계획에 없었는데 너무 착한 남편을 만나서 처음으로 안정적이고 평범한 가정이 갖고 싶어져서 결혼을 결심했고, 행복하려던 찰나 아이가 생겨서 엄마 노릇까지 하게 됐다. 드라이한 엄마 때문에 나 역시 자라면서 이런저런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나만큼은 아이에게 헌신적이고 사랑 넘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굳게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조언해준 것처럼 모성애는 아이를 낳는다고 '뿅'하고 생겨나지 않았다. 기른 정이냐, 낳은 정이냐를 두고 논쟁한다는데 나는 대체 낳은 정이라는게 뭔지도 모를 정도였다. 물론 처음으로 모유수유를 한 날에는 아이가 무척 예뻐 보였고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집에 돌아와서 혼자 아이를 보며 기본적인 생활도 못 하는 날에는 수명이 깎여가는 고통을 감당하며 내 팔자를 원망했다. 아이가 150일쯤이 되면서부터 나를 명확히 알아보고 따르기 시작했는데 나도 이때부터 아이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전에는 솔직히 말해 책임감이 더 컸다.
물론 아직도 1년밖에 안 된 초보 엄마지만, 누군가가 내게 모성애에 대해 묻는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마법같이 뿅'하고 생겨나는 게 아니라 마치 근력운동을 통해 서서히 쌓이고 자라나는 근육 같은 것이라고 설명할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근력운동은 참 고통스럽고 재미가 없다. 심지어 초반에는 엄청난 근육통과 몸살을 동반하기도 한다. 당장 근육이 생겨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지루하고 아픈 시간이 이어질 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견뎌내다 보면 상처입은 근육이 회복을 하며 새로운 근육을 키워낸다. 나 역시 모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엄마가 됐고, 때로는 아이를 끌어안고 울기도 하고 엄마가 됨을 후회하기도 했다. 근력운동보다 몇 배는 고통스러운 날들을 지속하면서 그래도 육아휴직 기간이 끝날 때까진 내가 주양육자로서 의무를 다하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약을 먹으며 버티고 버텼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나보다 내 아이를 먼저 챙기는 삶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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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 입에 들어갈 것보다 오늘 아이에게 어떤 반찬을 해 줄지를 먼저 고민하고 있고, 때로는 훌쩍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다가도 역시 나 혼자만 가면 아이가 눈에 밟혀서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인생 목표보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를 고민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만약 육아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조기 복직을 했다면, 혹은 잠깐이라도 내 시간을 찾겠다며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겼다면?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엄마 역할을 충실히 해 내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냥 내 경우에 한정지어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 정을 붙이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로서의 삶이 더 우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한때는 괜히 무리하게 눈치를 봐 가며 육아휴직을 있는대로 길게 내서 고생을 자처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잘했다 싶다. 아이의 첫 1년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하면서, 아이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내가 제일 먼저 목격하고 아이에 대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나'라는 사실은 부족했던 육아 자신감을 키워주기도 했다. 할머니 품에서는 울고 보채던 아기가 내 품에서는 바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본 날은 내가 이 아이에게도 엄마로서 자리잡았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아, 물론 여전히 고민거리는 남아 있다. 내가 이렇게나 고생을 하며 아이를 키웠는데 막상 생각보다 아이가 잘(?) 크지 못했을 때, 그 회한을 어떻게 처리하냐는 것이다. 아이에게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하며 보답을 바라고 싶진 않지만, 내가 목표로 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는 꼭 되어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육아는 노력이 반드시 결과로 나오지 않는 게 아닌가. 그 점이 가장 힘빠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이 얘기를 남편에게 하자, 남편이 이렇게 말해 줬다. "여보는 나나(고양이)가 아플 때 비싼 돈 들여서 치료 받고 키워주잖아. 근데 그게 나나한테 뭘 바라고 하는거야? 그냥 사랑해서 해 주는 거지." 아, 아무래도 나의 모성애는 아직도 먼 것 같다. 뭐가 어쨌든 아기가 행복하면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