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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병원 안 와도 된대!

나의 육아우울증 극복기 21

by 뚜벅초

우리 아기에겐 '100일의 기적'은 없었지만 '돌의 기적'은 어설프게나마 찾아왔다. 먼저 뭔 짓을 해도 끊지 못했던 밤중 수유를 돌이 지난 지 일주일 만에 거짓말처럼 끊게 됐다. 그렇다고해서 아예 안 깨는 건 아니고 한 번 정도 잠을 설칠 때도 있지만, 따로 분유를 주지 않아도 뒹굴거리다 다시 잠들거나 물을 줘도 마시고 잠이 들었다. 11개월까지도 비몽사몽의 상태로 많게는 두 번까지 분유를 타던 것과는 너무 달라진 모습이었다. 역시 아기들은 하루 하루가 다르다는 게 실감났다.


게다가 고작 20~30분으로 쪽잠을 자던 낮잠도 하루 한 번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 이상까지도 잠을 자 줘서 종일 혼자 육아를 하는 날에도 어느 정도 재충전이 가능해졌다. 물론 그래봤자 옆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하거나 깊이 잠들었다 싶으면 아기의 점심을 준비하며 보내야 했지만 하루종일 아기띠를 하고 모든 일과를 보내야 했던 반년 전과는 많이 달랐다.


비교적 사람같은 생활을 하게 되니 나의 기분도 시나브로 좋아졌다. 수시로 땅을 파고들던 우울감도 슬슬 사라졌고 이제는 아기가 잘 때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볼까 하는 계획이라는 것도 짜게 됐다. 물론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PMS(생리전증후군)용 약을 먹지 않는 날은 아주 소량의 취침약만 먹었는데도 딱히 우울이나 불안 증세가 올라오지 않은 지 2주 정도가 지났다.


shutterstock_165529670.jpg 출처: 셔터스톡


아, 이번에야말로 정말 단약을 시도해도 될 것 같았다. 한 달만에 찾아간 병원에서 나는 어떻게 지냈냐는 원장 선생님의 질문에 진심으로 잘 지냈고, 괜찮았고, 더이상 우울감이 들지 않는다고 답했다. PMS용 약도 효과가 좋았으며, 아기가 밤잠을 잘 자게 돼서 수면도 많이 안정적이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그렇다면 취침약을 더 소량으로 줄이되 3주 정도만 복용하고 마지막 한 주는 먹지 않고 지내 보라고 했다. PMS용 약도 여러 달치를 처방했으나 먹는 기간을 줄여 볼 것을 권했다. 이후 단약을 하고도 증상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이제 더 이상 진료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셨다. 아기가 돌이 지났으니 호르몬은 정상 범주로 들어왔을거라는 판단이었다.


처방을 내리던 선생님이 물었다. "그런데, 혹시 둘째 계획 있어요?" 둘째 계획이 있다면 처방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단호히 없다고 말했다. 아기를 낳기 전에도, 아니 결혼 전에도 나는 딱 한명만의 자녀를 원했다. 딩크를 하기엔 뭔가 아쉽고, 그렇다고 둘 이상을 낳자니 감당을 못 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도전한 육아는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으로 힘들고 어려운 나날이었고 나는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다시 출산과 육아를 반복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아주 넉넉하지는 않은 우리 집의 경제상황과 갈수록 치솟는 부동산 가격, 아이를 낳고 여기저기 안 좋아진 건강 상태까지 둘째를 낳지 않을 이유는 충분했다.


물론 나 역시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이 아기가 걸음마를 하고, 말을 하고, 스스로 밥을 먹는 어린이가 되면 다시 신생아가 그리워져서 둘째를 계획하게 될까. 나는 '기분파'와는 거리가 멀고 신중한 편이라고 자부했지만, 임신출산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경솔했음을 지난 1년간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람을 낳고 기르는 것은 단순히 환상만으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지금도 임신은, 그것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일단 '축복'으로 여겨야 한다고 강요되는 것 같다. '둘째 혹은 셋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도 했지만 막상 낳아보니 너무 예쁘고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차마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여전히 육아는 주양육자의 무한한 희생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지난 1년의 육아로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확신이 아니고서는 다시 임신출산을 결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육아는 비록 가치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는 그 끝없는 우울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게다가 그 터널 속에는 오로지 나와 아기만 있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동료들도 터널 밖에서 응원은 해줄 뿐 직접적으로 나를 터널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나를 터널 밖으로 나오게 해준 것은 오직 정신과 약과 위대한 '시간의 힘' 뿐이었다.


어쨌거나 드디어 단약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병원을 나서며 남편에게 기쁜 마음으로 메시지를 날렸다. "이번 약 먹어보고 괜찮으면 이제 병원 안 와도 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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