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우울증 환자의 적, SNS 중독
나의 육아우울증 극복기 20
긴긴 코로나 유행에, 어린 아기 육아로 인해 근 1년 넘는 시간을 집 안에서 보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아기와 하루 종일 집에 갇혀있다 보니 자연스레 스마트폰 사용이 늘었다. 사실 출산 전에는 아기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나도 스마트폰을 멀리하겠다는 야무진 다짐을 한 바 있지만, 막상 육아생활을 하다 보니 안 그래도 하루하루 버티는 중인 육아생활에 스마트폰조차 못 보면 그야말로 생지옥이 열릴 것 같아서 애초에 포기했다. 다행히 아기에게는 아직 일체의 영상물을 일부러 보여준 적은 아직 없다.
그래도 아기가 볼 수 있으니 '동영상'은 아기가 깨어있는 한 못 보고, 아이를 돌보면서 잠깐잠깐 보기에는 역시 단문과 사진으로만 이뤄진 SNS나 커뮤니티 게시판 같은 것이 가장 적합하다. 처음에는 낯선 육아의 세계가 어려워 '맘카페'를 섭렵하며 이것저것 검색을 하고 질문을 올리는 게 주된 일과였다면, 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선 이제 맘카페 정보도 관심이 덜해졌다. 맘카페는 대부분 임산부나 100일 전후 신생아들을 위한 육아 정보가 주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100일이 지나니 아기마다 너무 편차가 커서 더 이상 전문가가 아닌 민간 육아 정보는 오히려 혼란이 더 가중될 뿐이었다.
그 대신에 같은 처지의 '육아맘'들이 하는 SNS 계정을 구경하거나 소통하는 게 더 재밌어졌다. 매일 전쟁과도 같은 육아 일상에 공감이 되기도 하고, 우리 아이보다 좀 더 큰 자녀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계정은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도움도 되고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좋은 점만 있었을까. 텍스트 몇 자로만 전해지는 온라인 상의 소통은 결국 원치않는 공격과 논쟁에 휘둘리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애엄마'로만 취급해 다짜고짜 무시하는 덧글을 남기기도 하고, 육아가 힘들다고 하면 '네가 선택해서 결정한 일인데 힘들다고 푸념이나 하니 니 자식이 불쌍하다'며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성장과정에서 이런저런 아픔을 겪은지라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닌데도, 일면식 없는 사람에게 인신공격을 받으니 어이가 없었다.
또 다른 스트레스거리는 나도 모르게 아이의 발달이나 육아 방식을 비교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아이는 집집마다 다르기 때문에 발달 수준도, 육아에 방점을 두는 부분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아무래도 SNS의 특성상 '좋은 점'만 강조해서 노출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부분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위축됐다. 그나마 아이 발달은 '어차피 아이마다 시기가 다르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인데, 육아를 잘 하는 프로 주부들의 모습을 보면 '어차피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니 신경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예를 들면 직장일로 바쁘면서도 아이에게 매 끼니 갓 지은 밥을 만들어 준다든지, 백일 아기에게 전집과 교구를 책장 하나 가득 채워 준다든지, 엄마표 영어 엄마표 장난감 등등... 개인적으로 전집은 아직 어린 아기에게 효과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안 사자는 주의였는데, 아이가 돌을 넘어서니 다른 집 아이들이 전집을 보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졌다.
게다가 SNS 특유의 확증편향이 심한 갖가지 자극적인 주장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까지 시끌벅적하게 이슈화가 되는 갖은 논쟁들까지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일쑤였다. 현실 세상은 훨씬 다양한 요인으로 복잡하게 돌아가지만 온라인은 항상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물론 선과 악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었고 근거도 불분명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우울과 분노에 찌든 사람들은 저마다 가상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내뱉고 있었고 마침 나처럼 심리가 취약해진 이들은 그 부정적 에너지를 오롯이 받아들였다.
그나마 내 마음이 굳건하고 건강하면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하든 크게 신경쓰이지 않을텐데, 나는 아직 치료중인 육아우울증인으로서 과연 SNS를 이용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SNS를 통한 소통에 크게 피로감이 들었을 때는 잠시 모든 계정을 탈퇴하고 쉴까 싶기도 했지만 안그래도 하루종일 집에서만 보내야 하는 육아 시간을 보내기가 너무 막막했다.
잠시 모든 SNS와 커뮤니티 이용을 줄이고 오롯이 육아에만 전념하기를 시도한 적도 있었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읽거나 전자책을 읽을까 여러 계획도 짰다. 처음에는 SNS를 하지 않으니 집안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아기 밥 차릴 시간도 많아진 듯해 좋았다. 왠지 마음이 평화로워진 느낌이었다. 이대로라면 쭉 온라인 사용을 최소화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잠시, 밤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장난을 치는 아기에게 짜증이 폭발하고 말았다. 나의 우울과 짜증은 애초에 스마트폰 사용과는 크게 관련이 없었던 걸까. 게다가 선잠을 자는 아기의 옆을 멀뚱멀뚱 지키면서 TV도 없이 시간을 때우기란 고역이었고, '가뜩이나 육아로 진이 빠지는데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라는 '현타'가 금방 찾아왔다.
여전히 나는 스마트폰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글을 기점으로 SNS 이용보다는 아기의 눈을 바라보며 놀아주는 시간을 늘려 보려고 한다. 아기가 돌이 지나며 슬슬 언어로 하는 상호작용이 필요해진만큼 나도 육아에 좀더 '몰두'해야한다는 생각도 들어서다. 휴직기간 동안 매일같이 아기와 함께 집에 있으면서 '같이 있으니 어쨌든 상호작용은 충분할 거야'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다. 물론 육아에는 양도 중요하지만, 질도 못지 않게 중요하니까. 스마트폰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간을 타인의 삶과 생각을 바라보기보다 내 아이와 나를 바라보는 시간으로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