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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oming Jane Oct 29. 2019

요제프 렌드바이와 헝가리 여행하기

더 늦어서 괜찮은 순간들 


 2014년 여름, 사람과 관계를 하는 데에는 얼마간의 시간과 적당한 여백이 필요하다고 믿는 나에게 열기에 녹아내릴 듯 가깝게 열정을 불태웠던 사람들이 있었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듣게 된 손미나 작가님의 ‘싹 여행연구소’라는 여행 동호회 이야기를 들었을 6월부터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까지도 여행이라는 바이러스가 온몸의 세포를 전염시킨 것처럼 뜨겁게 앓았다. 


 매주 진행되는 수업 이외에도 덜컥 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게 되어 여러 가지 친목모임에 중심에 있었고 일주일에 두 번씩 동호회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인냥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때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만큼 좋아해 주는 누군가를 만난 기쁨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새벽까지 모임을 하는 일이 잦았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는 늘 요제프 랜드바이의 음악을 들었다. 집시 바이올린 연주로 유명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2014년 여름,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그 열망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세계여행을 결심했을 때 헝가리 출신인 랜드바이를 따라 꼭 부다페스트에서 그의 음악을 듣고 싶었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세계여행은 ‘싹 여행연구소’와 ‘랜드바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가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가을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9월 말이었다. 여행에서 사람 다음에 날씨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나에게 내내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던 부다페스트 여행은 ‘그리 쉽지는 않겠구나.’라는 걱정이 앞섰다. 5일 내내 오다, 말다, 소나기를 퍼붓다가 하는 스산한 날씨가 이어졌지만 넓고 큰 창을 가진 숙소가 마음에 들었고, 그 창가 위로 쉼 없이 떨어지는 빗소리가 아름다웠다. 어부의 요새, 마차시 성당, 국회의사당과 같은 상징적인 건물 들을 걸으면서도 이어폰으로는 랜드바이의 ‘Moscow night’ 과 ‘Russian Gipsyswing’을 들었다. 그가 이곳 출신이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음악은 이 도시와 닮아있었고 도나우 강을 따라 걸을 때는 우리가 영화 속 장면에 들어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상에 폭 젖어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침략에 긴 역사 탓에 한이 많은 이 민족과 랜드바이의 심장을 찌르는 연주가 합해져 이 도시에서 비로소 ‘슬프지만 아름답다’라는 말의 의미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성 이슈트반 성당을 지나가던 그 날도 비가 왔다. 성당으로 가까이 갈수록 관광객이 아니라 멋지게 차려입은 현지 사람들이 성당에서 쏟아져 나오는 장관이 펼쳐졌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급하게 사진기를 들었는데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부모님과 벅찬 포옹을 했다. 많은 하객이 신랑과 악수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나라처럼 결혼식에 와준 사람들끼리 사진을 찍기 위해 정렬을 맞추고 있었다. 결혼식이 막 끝난 것이다. 더 어렸을 때 저 장면을 보았어도 좋았겠지만, 남편과 이곳에 와 있는 지금 그 순간의 감정이 고스란히 이해되어 훨씬 더 뭉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 많아진다. 슬프지만 아름답다’거나 ‘결혼식을 끝내고 딸을 보내야 하는 엄마의 떨림’ 같은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부다페스트의 그 순간, 더 어렸을 때 이곳에 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뭐든지 더 빠른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어쩌면 더 늦어서 괜찮은 순간들도 있다. 지금 이 순간처럼. 





*Today's Place: 헝가리, 부다페스트


동유럽에 대표적인 관광지인 프라하와 대조적인 멋을 가진 남성적인 느낌의 도시 입니다.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느낌은 없지만 웅장하고 어쩐지 슬픈 이 도시에는 몽골, 터키,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 지배를 받았던 한이 서려있습니다. 부다페스트 도시 자체도 야경을 비롯하여 볼거리가 많지만 한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갈 수 있는 '센텐드레'라는 근교 도시도 잠깐 방문해볼만 합니다. 헝가리는 다른 동유럽 국가에 비해서 수준 높은 공예품이 많은데 정말 예쁜 수공예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마을이 센텐드레이기도 해서 예쁜 기념품 사러 가볍게 다녀오시면 좋을것 같아요. 얼마전에 유람선 사고로 우리나라에게도 가슴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부다페스트는 꼭 랜드바이의 음악을 들으며 걸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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