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권태를 만났을 때, 리스본
시간은 벌써 10월에 끝자락에 와있고 우리는 리스본까지 와있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거쳐 이베리아 반도로 넘어온 것도 2주가 흘렀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서히 사진기를 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아침 7시면 더 이상 침대에 누워있지 못하는 내가 침대에 누워 밥도 먹지 않고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고 싶은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힘겹게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왔다. 나에게는 인생영화라 할 수 있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풍경이 된 이곳을 꼭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오자마자 낡고 허름한 골목들과 거리의 부랑자들, 마약냄새가 진동하는 광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예약한 에어비앤비는 오래된 아파트들이 그러하듯 시설은 깔끔했지만 빛이 적고 습한 한기가 가득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아침, 누군가는 살면서 한번도 오지 못할 이베리아 반도 여행을 한 달간 계획했으면서도 우리의 마음엔 우울함과 게으름이 가득했다.
리스본은 영화의 모습보다 더 낡아 있었다. 스페인과 같은 적당히 이국적이어서 색다른 느낌이 아니라 부식되고 관리되지 않은 공간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나마도 다행이었던 건 알파마 지구에 간 날, 날씨가 좋아서 아름다운 바다와 노란색 트램, 주황색 지붕이 가득한 리스본스러운 이곳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180년이 넘은 에그타르트의 원조 베이커리에 가도 디즈니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신트라를 가도 자꾸 숙소로 돌아가 눕고만 싶었다. 마로는 컴퓨터로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자기 일쑤였고 그런 나른함을 참지 못하는 나도 블로그에 여행이야기를 포스팅 하다가 낮잠을 자기 일쑤였다. 사람의 간사함이 이런 걸까? 유럽문화에 두 달 이상 노출 되어 있다 보니 다시는 만나기 힘든 이국 적인 풍경들을 그저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역시 비가 오던 리스본의 오후, 또 라면을 끓여먹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190년이나 된 빵집에 가보기로 했다. 나가서 앉아있기라도 하면 괜찮을 것 같아 블루레이를 비롯한 달달한 포르투갈 빵을 시켜놓고 마로와 이야기를 했다.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무기력 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마로도 나도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보통은 이럴 때 누군가의 명언과 경험을 떠올리며 권태로움이 사라지고 여행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올 법도 한데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냥 비오는 창가를 쳐다보면 이 여행에 권태로움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 했다.
한때는 떠나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아니어도 모든게 더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새로운 곳을 보고 다른 경험들로 나를 채우면 갑자기 다른 기회가 내 앞에 펼쳐질 줄 알았었다. 답답한 한국 사회만이 문제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었다. 하지만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와도 고민의 모양은 다를지언정 크기는 같았고 나를 버리고 갈 수 없는 한 아무리 멀리 간다 한들 고민에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노교수처럼 일상을 뒤로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 열정이 뜨겁다 하여 모든 순간이 꿈처럼 아름다운 건 아니었다. 떠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던 20대를 지나 30대에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리스본에 와있다. 지금 우린 여기서 괜찮은 걸까?
포르투갈 여행의 대표여행지는 리스본과 포르투갈 두곳으로 나뉠 수 있는데요. 보통 두군데 모두를 다녀 온 분들은 꼭 한 도시를 더 좋아하게 된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포르토가 더 좋았지만 역사의 깊이와 무게는 리스본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리스본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트램이나 광장의 타일모양, 에그타르트와 전통음악 파두 등은 정말 매력적인 것들이죠. 리스본에 '신트라(SINTRA)'라는 근교 여행지가 있는데 이곳에는 여러모양의 고성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디즈니에 나오는 모습처럼 알록달록하고 기존의 유럽 건축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꼭 한번 방문할 가치가 있어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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