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허실 Jul 29. 2020

두 마리 늑대

내면의 힘, 몸과 마음의 조화

우연히 TV를 켜다가 디즈니에서 만든 투모로우랜드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딱 봐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만든 영화라는 것이 느껴져서 초반만 보다가 다른 채널로 넘기려고 했는데 그만 끝까지 보게 되었다. 우스운 것은 내가 감동을 받아버린 것이다. 요즘 내가 꿈과 희망이 부족했던가. 영화 내내 오글거리는 대사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 늙으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나에게도 그 시기가 온 것 같다.




영화 속에서 긍정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케이시라는 소녀는 로켓 발사기지의 철거를 막으려다가 경찰에 붙잡힌다. 그런 케이시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아빠와 약간의 언쟁을 하다가 케이시는 아빠에게 자기의 어린 시절에 아빠가 항상 들려주던 케로키 인디언의 두 마리 늑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 속에는 2-3줄의 대사로 간단하게 설명이 되지만 이야기 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내 안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단다. 두 늑대 사이에 벌어지는 끔찍한 싸움이지. 한 녀석은 악이야. 그 녀석은 화, 질투, 분노, 슬픔, 후회, 욕심, 오만, 자기 연민, 죄책감, 억울함, 열등감, 거짓말, 허세, 우월감이며.. 그리고 네 자아야. 다른 녀석은 선이야. 이 녀석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평온함, 겸손, 친절, 자비, 공감, 너그러움, 진실, 연민이며.. 그리고 믿음이지. 똑같은 싸움이 내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어.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도 일어나고 있지.
할아버지, 근데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네가 먹이를 주는 쪽


분명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였는데 케이시의 아빠가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던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위의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물론 어린이 대상의 영화답게 모범답안도 함께 제시한다. 하지만 모범답안과는 별개로 영화를 끝난 후 나의 머릿속에는 계속 질문이 맴돌았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늑대의 존재를 떠올리려고 하니 궁금함과 두려움이 함께 찾아왔다. 나는 그동안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던가. 내가 먹이를 주고 있는 늑대는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어렸을 때 성선설과 성악설이란 개념을 처음 알게 된 이후로 줄곧 성악설을 마음속으로 지지해왔다. 두 이론 모두 춘추전국시대의 서로 죽고 죽이는 지옥 같은 전쟁 상황 속에서 나온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 결과이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 속에서 모두 일리가 있는 이론들이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내가 성악설을 믿어온 것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이기적인 본능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케로키 인디언의 이야기 속에서도 악은 자아(ego)로, 선은 믿음(faith)으로 묘사되어 있다. 자아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믿음을 행사할 수 없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라는 말은 어찌 보면 선문답이다. 1차원적으로 해석을 하면 당연히 선에게 먹이를 주어야 할 것이다. 영화도 아마 이 해석을 토대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위에서 언급된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어느 한쪽만 먹이를 준다면 내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없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라는 질문이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내 입에서 튀어나오지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선이든 악이든 모두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무언가라는 사실이다.


`

그래도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내 안의 선한 녀석에게 먹이를 먼저 주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지금의 나에게는 자기 연민이나 열등감 같은 감정보다는 겸손과 친절 같은 기분 좋은 감정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을 준비하다 보니 재미와 초조함,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나에게도 지금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투모로우랜드'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초긍정의 마음으로 제트팩을 어깨에 달아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이나 실컷 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