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은 기억하려고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콘텐츠 중 하나가 사주에 관련된 것이다. 사주를 셀프로 볼 수 있는 강의도 있고, 명리학을 공부한 여러 선생님들이 재미있게 사주 풀이를 해주곤 한다. 나 역시 솔깃해하는 편이긴 한데, 굳이 철학관 같은 곳에 찾아가지는 않는다. 가끔 가볍게 인터넷 무료 사주를 본다. 사실 약간의 셀프 풀이가 가능할 정도로 방법과 뜻을 알고 있다.
내 대운은 숫자 4를 기준으로 바뀐다고 한다. 대운은 10년씩 바뀌는 운인데, 나의 경우, 4살, 14살, 24살 이런 식으로 대운이 바뀌는 것이다. 대운이 들어올 때, 결혼, 이혼, 이직, 이사, 이별 등 인생의 좋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 이벤트가 생긴다고 한다. 나 역시 시간을 돌이켜보니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졌다.
4살 때, 1편 < 신이 머물다 간 순간 >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대관령에서 큰 사고를 겪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10년이 지난 14살 때는 어땠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가장 힘든 순간을 기억에서 지운다고 한다. 그래서 나에게 14살 때의 기억은 거의 없다. 끄집어내 보자면 3가지 사건만 흐릿하게 기억에 있다.
14살이 되던 해 1월, 사랑하는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가족의 죽음을 처음으로 맞딱들였던 때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1년 정도 우리 집에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게 되었다. 이 무렵, 아빠의 두 번째 사업이 무너졌다. 열심히 내조를 하던 전업 주부인 엄마는 난생처음으로 액세서리를 끼우는 부업을 하게 되었다. 어렸던 내 눈에 엄마의 큰 우울감이 보였다. 하지만 14살의 나와 10살의 동생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학교와 학원에 다니는 것뿐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어려운 상황에도 나와 동생의 일상이 깨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힘든 일은 몰려오는 것일까. 중학교에 입학한 난 그 해 몇 달 동안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흔히 얘기하는 몇몇 노는 아이들에게 나는 은근히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었고, 교우 관계가 그리 좋지 못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평온하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학교를 가는 것이 하루하루 벅찼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나의 자아가 건강했고 강했다. 혼자 외롭게 다니던 학교 생활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다. 가뜩이나 어두웠던 그 해의 엄마, 아빠에게 나의 이 이야기는 자세하게 얘기할 수 없었다. 엄마와 아빠도 자신의 자리에서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14살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내가 지금 쓴 10줄이 끝이다. 기억해내려고 해도 누군가 싹 지워버린 것처럼 내 머릿속에 없다.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딱 이 정도로 밖에 표현이 되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이렇게 힘든 일들을 겪고 난 후 15살 때부터는 집안도 학교 생활도 평화로워졌다. 모든 것이 안정을 되찾았다.
24살 또 대운이 바뀌는 시기가 왔다. 대학생 시절 다들 한 번씩 하는 휴학을 마치고 4학년이 되었다. 광고인을 꿈꾸던 졸업반 시절이다. 이때의 나는 나가는 공모전이란 공모전은 모두 떨어지고, 진로를 바꿔야 하나 고민이 많았던 시기다. 스펙도 평균, 학점도 평균, 토익 점수도 평균 모든 것이 딱 평균치인 보통의 학생이었다. 그나마 승부를 봐야 할 것이 공모전이었는데, 매번 공모전 우승 확률은 0%였다. 그렇게 안 맞는다는 로또도 할 때마다 5천 원씩 되어서 본전은 뽑았는데, 내 노력이 들어간 공모전은 매번 탈락이라니. 마지막으로 해보자 했던 제일기획 공모전에서 탈락하고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울던 내 모습이 아직도 안쓰럽다. 티 안 나는 방황 끝에 나는 졸업 대신 졸업 유예를 선택했다. 1년 동안 다른 것도 배워보면서 내가 먹고살 길을 찾기로 했다. 혼자서 머리 싸매고 고군분투했던 24살이었다.
2023년은 34살 4번째 대운을 맞이한 해다. 이번 대운이 바뀌면서 나는 인생의 가장 큰 변화를 맞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혼자에서 둘이 되었고, 행복한 신혼집으로 이사를 했다. 2023년 1월부터 시작한 결혼 준비. 10개월 동안 발품 팔아 열심히 준비해서 2023년 10월 결혼식을 올렸다. 이제야 진짜 자립할 수 있는 어른이 된 것 같다. 가장 바빴지만 행복한 일이 더 많았던 해였다.
이렇게 돌이켜보면 정말 4라는 숫자를 기준으로 대운이 바뀌는 것만 같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사주는 통계학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사주팔자에서 내가 태어난 생일을 일주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나의 성격이나 성향 등이 정해진다고 한다. 내 일주를 살펴보면 사실 나랑 비슷한 것도 있지만 다른 부분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조용한 스타일이고, 묵묵히 꾸준하게 노력하는 것이 내 성격이라고 하는데 실제의 나는 다르다. 나는 말이 많고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인내심이 적다. 사주 속 성격과 성향은 나와 잘 맞지 않지만 대운은 맞아떨어졌던 것처럼 사주의 확률은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필연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다.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다.
나는 좋은 것은 기억해놓으려고 한다. 어떤 복이 많고, 어떤 재능이 있는지 말이다. 그것을 잘 활용해서 내가 더 성장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야. 앞으로 내 사주팔자랑 운세가 현실과 얼마나 같을지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한 일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좋은 일이 많기를. 서로가 서로의 귀인이 되기를.
여담으로, 내 기도발이 잘 듣는다고 한다. 직감, 영감도 발달했다고 하는데, 왠지 나도 구독자 분들에게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아니 내가 사주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