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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할 성은 Sep 20. 2024

불편함과 불안함 사이

운전면허 따는 중


브런치를 켜놓고 멍 때리면서 커피 한 잔을 다 마셨다. 한 글자도 못 쓴 채로 말이다. 머릿속에 다른 것이 꽉 차서인지 글감이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쓰고자 하는 것이 에세이라 다행이다.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으면 되니까. 오늘 나의 이야기는 운전이다.



오늘부터 운전면허 기능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추석 연휴 전에 필기시험은 81점으로 합격해 놓고 장내 기능 수업 첫날을 기다렸다. 오후 1시 50분에 시작한 첫 장내 교육. 차에 타기 전 간단한 이론 설명을 들었다. 교본을 통해서 이것저것 설명해 주셨지만 무조건 한 번에 합격하고 싶은 나의 귀에는 9분 50초 내에 도착 지점으로 들어와야만 합격이라는 말만 맴돌았다. 오늘 내가 배정받은 차는 19호차다. 장내 기능 수업용으로 많이 쓰이는 소형차인 엑센트, 막상 운전석에 타보니 부담스럽게도 새삼스럽게도 크게만 느껴졌다.


1. 의자와 등 받침대를 조절한 다음 안전벨트를 매고, 브레이크를 밟은 채로 시동 켜기.

2. 사이드 브레이크를 해제한 후, 기어를 D에 두고 천천히 출발하기.

3. 깜빡이, 와이퍼, 전조등 작동해 보기.

4. 오르막길 올라가서 잠깐 멈췄다가 브레이크 살짝 밟으면서 내려오기.

5. 핸들을 적당히 잘 돌리면서 좌회전하기. 신호 보면서 정지선에 정지하기.

6. 대망의 T자 주차하기.

7. 가속 구간에서 시속 20km 이상으로 속도 내기. 돌발 상황 시 급 브레이크 잡고 비상등 켜기.

8. 뒷바퀴까지 완벽하게 도착선에 들어오기.


오늘 배운 것은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기능 시험의 전반적인 것을 훑었다. 쉬는 시간 포함해서 2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것을 배우다니 최근 들어 가장 긴장한 시간이었다. 머리도 몸도 빠릿빠릿했던 20대와 다르게 모든 것이 조금씩 느려진 것 같은 30대.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빠르게 따라주지를 않으니, 강사님의 지시를 듣고도 몇 번의 버벅거림이 있었다. 핸들을 잡은 손과 브레이크 위에 둔 발과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강사님은 힘 빼고 가볍게 하라고 하지만 내 몸의 힘은 안 빠지고 마음속 불안함만 더 커져갔다. 핸들을 잡은 지 1시간 차, 연습장 중앙선도 한 번 삐끗 넘어보고, 핸들을 돌리는 것도 헷갈려버리는 35살의 나는 정말 면허를 딸 수 있을까.


장내 교육장을 5~6바퀴는 돌은 것 같은데 어떤 정신으로 연습을 한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어~하다가 2시간이 지나갔다. 집으로 가는 학원 셔틀버스를 탈 때가 돼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꿈인지 생시인지 허공에 붕 떠있는 것 같았던 2시간. 내일도 2시간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마음이 영 불편하다. 강사님이 알려주신 운전 방법, 꿀팁, 주차 공식까지 모두 잊어버린 듯한 허무한 기분과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한 번에 면허를 딸 수 있을까 하는 자기 의심이 하루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불편함이 아닌 불안함일 것이다. 정지해야 할 때 어디쯤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지, 좌회전 또는 우회전할 때 어디쯤에서 핸들을 꺾어야 하는지,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어느 강도로 밟아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이 수치로 알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숫자로 보고 내가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것이면 이렇게 불편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나의 보이지 않는 감과 경험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에서 운전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잘하고 싶은 욕심에 완벽주의적 성향 한 스푼이 더해져 완성된 불안. 한 술 뜨고 배부를 수 있을 소냐. 두 시간 배우고 잘할 수 있을 소냐. 못하니까 초보 운전이지.


20대 때 운전면허를 딸 수 있었던 시간이 충분히 있었지만 따지 못했던 것은 유독 운전에 대한 겁이 많았다. 내가 사고를 당하는 것보다 사고를 낼까 봐 두려웠다. 또 운전면허의 필요성을 못 느낀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도전도 안 해보는 것은 어리석은 것 같아서 용기를 냈다. 수능 봐서 대학교도 갔고, 어려운 취업도 해봤고, 정신없는 결혼식까지 완벽하게 올린 30대 아니겠는가. 운전면허 따보자 한 번.


내일은 나의 머리와 손과 발이 완벽한 협응을 이뤄 실력이 향상되었으면 좋겠다. 운전 연습이 은근히 체력 소모가 크다. 불안한 마음을 토닥이며 잠들어봐야겠다. 내일은 자신감 있게 에너지바 하나 물고 학원에 가야겠다. 곧 기능 시험에 합격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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