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기능 시험 불합격 그 후
내 생일 아침에 본 운전면허 장내 기능 시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출발 구간에서 와이퍼를 제시간에 안 꺼서 5점 감점, T자 주차 때 탈선해서 나머지 점수를 까먹고 떨어졌다. T자 주차 빠져나오는 구간에서 들은 불합격 알림. 장내에 쩌렁쩌렁 울리는 '19번 차량 불합격입니다'라는 말. 내가 기능 시험에서 떨어지다니, 내가?
"교육생분 내려서 옆자리에 타세요. 이거 엉망이네."
시험 요원 선생님의 말에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는지 모른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멋쩍게 웃으며 조수석에 타고 종료 지점으로 들어갔다.
종료 지점에 장내 기능 교육 마지막 시간에 나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이 서계셨다. 나를 보자마자 와이퍼를 왜 안 껐냐고 잔소리를 하며 안타까워하셨다. 사실 선생님은 생일에 시험을 치르는 나를 위해 최대한 먼저 시험을 볼 수 있게 사무실에 얘기도 해주셨고, 핸들 조율이 잘 되어있고 제일 상태가 괜찮았던 19번 차를 배정해주시기도 했던 고마운 분이다. 불합격되고 나니 배려해 주신 선생님 보기가 민망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좌절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랜만에 겪어보는 좌절감이었다. 차라리 외국어 공부를 하고 외국어 시험을 보는 것이 쉬울 것 같았다. 좌절감과 창피함이 물 밀듯이 몰려왔지만 향상반을 수강하는 나는 장내 기능 시험 재시험을 공짜로 볼 수 있다. 어차피 떨어졌는데 어쩌나. 다시 봐야지. 괜찮다 괜찮아. 마음을 다잡으며 재시험을 예약했다.
'재시험에서 떨어지면 난 정말 멍청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유튜브를 보면서 독학에 들어갔다. '장내 기능 시험 이 언니처럼 하면 100점~', '좌회전, 우회전하는 요령', '장내 기능 시험 1인칭 시점' 등 내게 필요한 모든 유튜브 영상을 다 찾아봤다. 보고 또 보고 10번은 본 것 같다. 머리로는 이해가 쏙쏙 잘 되는데 핸들만 잡으면 왜 적용을 못 하는 것일까.
남편은 운전면허를 딴 지 20년이나 된 베스트 드라이버다. 취미로 대형 면허를 따볼까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 정도로 운전을 좋아하고 부드럽게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말하길, 내가 기능 시험에서 떨어질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나도 사실 내가 이렇게 운전 감각이 없는지 몰랐다. 운동 신경이 있는 지라 운전도 쉽게 가능하겠지라고 생각했던 내가 잘못. 운동 신경과 운전 신경은 관련이 없었다. 남편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직접 A4용지에 차선을 그리고 집에 있던 미니카로 시뮬레이션을 보여주며, 특강에 들어갔다. 핸들을 돌릴 때 바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시점에서 핸들을 돌려야 하고, 풀어야 하는지 등 내가 부족했던 부분을 꼼꼼히 설명해 줬다.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3일 동안 선생님이 매번 바뀌었다. 같은 것을 가르쳐주시지만 선생님마다 표현도 다르고 방법도 달라서 내가 갈피를 못 잡고 많이 헷갈렸었다. 수강생들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T자 주차를 중점적으로 가르쳐주시다 보니, 내가 미처 못 물어본 것들이 많았다. 선생님한테 자세히 배우지 못한 것을 일타 강사 남편한테 배우며 재시험을 준비했다.
장내 기능 시험 재시험날 아침, 남편의 설명이 담긴 A4용지를 부적처럼 가방에 넣고 남편과 함께 갔다. 남편의 응원을 받으며 들어간 응시자 대기실. 평일인데도 시험 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오래 걸리겠거니 했는데 웬걸, 내가 첫 번째 주자였다. 순간 외웠던 것들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머릿속이 하얘진 상태로 차에 탔다.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켜고 미션을 하나씩 해나갔다.
기능 작동, 경사 코스 모두 OK. 가장 긴장했던 첫 좌회전에서 핸들을 늦게 풀어 허둥댔지만 무사히 제자리를 찾았다. 차가 삐뚤게 갈 때 이렇게 해라~하고 가르쳐준 남편의 팁 덕분이었다. 정지선에 정지도 잘했고, 대망의 T자 주차도 선 안 밟고 성공했다. 우회전할 때 핸들을 늦게 풀어서 중앙선을 살짝 넘어가 자책했지만 가속 코스도 잘 통과해서 종료 지점으로 들어왔다. 운전면허 장내 기능 시험은 재시험 끝에 95점으로 합격했다.
합격하고 나니 풀려버린 긴장감. 신나는 것도 잠시 곧 있을 도로주행 교육이 걱정이 된다. 기능 교육이나 기능 시험 때는 시속 20킬로 이하, 엑셀 밟을 일도 거의 없고, 다른 차들과 겹치지 않아서 신경 쓸 것이 덜했지만 도로주행 수업은 실전이다. 학원에서도 배우고, 남편한테도 배우고, 공터에서 연습도 해보기로 했다.
올해 가장 큰 목표는 운전면허 합격이다. 도로주행 어려울 수도 있고, 시험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연습도 시험도 계속해보면 되는 거 아닌가. 모든 일이 계획대로 착착 잘 될 수는 없다.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일들을 이미 많이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지만 실패하고 노력해 보면서 또 다른 것들을 얻게 되지 않을까? 연습만이 살 길, 반복만이 살 길. 차에 친구들을 태우고 여유롭게 운전해서 파주 브런치를 먹으러 가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