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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May 09. 2022

하얀 리본

BBC 선정 21세기 100대 영화 18위

BBC 선정 21세기 100대 영화 18위. 2009년 칸 영화제 황금종료상.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ㅡ 흑백 영화다. ㅡ 독일 태생 거장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포스터에서 묵직함과 깊이가 느껴진다. ㅡ 예술영화 느낌보다는 동심의 악마성이 짙게 느껴질 듯한 ㅡ 흑백 영화를 본지 제법 오래됐다. 아마 마지막 영화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어쩌면 루이스 부뉴엘의 단편 <안달루시아의 개> 둘 중 하나일 거다. ㅡ 두 편의 무성영화. ㅡ 하지만 하얀 리본은 목소리가 들린다. 각종 영화적 소리가 들린다. ㅡ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ㅡ 사설이 길었다. 시작한다. "딸깍, 딸깍"


"영화란, 진리를 위한, 혹은 진리를 찾기 위한 초당 24개의 거짓들이다." ― 미카엘 하네케



01.

영화의 배경은 1차 대전 발발 1년 전(1913년) 독일 북부의 작은 마을, 경찰로 상징되는 국가권력보다 남작(대지주)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곳. 이 마을에서 중심 가족인 남작, 목사, 의사 가족은 유기적으로 얽혀 생활했고, 이야기는 진행됐다. 묘한 교집합이 있다. 아이들. 남작 가족을 제외한 가족들은 가족당 최소 5명에서 9명에 이르는 아이들을 키운다. 마을 선생님(관찰자)은 중간중간 내레이션을 통해 회상을 말한다. ㅡ 나는 나약한 방관자라 부르고 싶다. ㅡ 영화 후반에 이르면 권위적인 독일 중년 남성의 억압된 훈육에 지쳐 생긴 피로감으로 호흡이 팍팍해졌다.



02.

영화를 보는 내내 폐쇄성에 숨 막혔다. 유일한 숨구멍이었던 선생님은 한 발자국 물러나 관찰만 한다. ㅡ 특별할 것 없는 그의 연애를 포함해. ㅡ 마을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알려준 선생님. 그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아이들은 어른과 대화하려 하지 않았고, 침묵 혹은 또래의 아이들과 뭉쳐 다녔다. 때때로 어른들은 아이들을 체벌한다. ㅡ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회초리 소리에 등골이 서늘했다. 아마도 나의 어린 시절 체벌이 떠올랐을지도 ... ㅡ 어느 날 목사는 두 자식에게 하얀 리본을 매라고 명령한다. 여자아이는 머리카락에 남자아이는 팔뚝에 묶었다. ㅡ 잘 못을 저지른 아이들의 죄를 반성시키고자 함일까? 아니면 죄는 지었어도 본성은 순결하니 죄만 미워하라는 의미일까? 모르겠다 ㅡ


*하얀 리본 - 순결함과 순수의 상징.



#또다른 #생각

영화는 초반부터 '견진성사'란 대사가 자주 나온다. '견진성사'? 무슨 뜻일까.


카톨릭 교회의 일곱 성사 가운데 하나, 세례성사를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을 성숙시키고 나아가 자기 신앙을 증언하게 하는 성사. 사리 분별할 수 있는 나이(우리나라 나이로는 만 12세 이상)에 이른, 세례 받은 신자가 받을 수 있다. _네이버


신교(루터교)에서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겸해 입교식을 치른다고 한다. 어린이도 아닌, 성인도 아닌, 완전한 기독교인이 되기 전. *미생의 상태를 말하는 걸까?


* 미생 - 완생의 최소 조건인 독립된 두 눈이 없는 상태를 이른다.



03.

의사의 낙마사고, 산파와 의사의 불륜, 장애인 자식, 소작농 부인의 의문의 죽음, 의사는 부인을 학대하고 딸을 추행한다. 산파의 장애인 아들은 갑작스레 죽음을 당하지만 경찰은 끝끝내 범인을 밝히지 못한다. ㅡ 흐지부지 ㅡ 사건은 연속되지만 어른들은 갈피를 못 잡고 아이들은 더 똘똘 뭉친다. 영화는 설명하지 않고, 관찰자 선생님은 의혹만 갖는다.


카메라는 때때로 아이들의 얼굴을 줌인, 줌아웃, 단독 샷을 잡는다. 흑백의 영상 너머 아이들의 눈에 서린 절망, 분노, 억압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카메라를 향해 있는 힘껏 소리 지른다. 하지만 스피커에선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어느새 모골이 송연해진 나는 혈관의 요동이 심장박동보다 빠르게 날뛰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대단하단 생각만 들었다. 엄청난 연출력은 가히 압도적이다. 서사의 힘이 아닌 관찰과 인간의 심연. 본성을 특정하지 않은 의문. 어른이 본 아이들, 아이들이 본 어른, 어른과 아이라는 관계를 벗어난 선생님 혹은 관객의 시선까지 계산한 ... 흑백의 영상은 마치 빛(선)과 그림자(악)에 대한 *선문답 같았다.


* 선문답 - 불교) 참선하는 사람들끼리 진리를 찾기 위하여 주고받는 대화.


공동체의 억압과 통제, 아이들에 무관심한 사회와 어른들, 그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과연 선善해질 수 있는걸까? 좀 더 근원적으로 질문하면 인간은 선善한 걸까?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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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영화 생각

1. 영화는 시詩라 생각합니다.
2. 평점을 매기지 않습니다.
3. 감상은 미니멀을 추구합니다.




*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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