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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의식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하나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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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Feb 04. 2024

나무 네 그루

에곤 실레

전쟁에 동원된 실레는 부대가 주둔하던 오스트리아 빈 남부 지역에서 늘 일기를 쓰며 스케치를 남기곤 했다. 그림은 그 스케치를 참고하여 유화로 작업한 것이다. 수직으로 선 네 그루의 나무가 누군가의 영혼처럼 서성인다. 수평으로 층을 이루는 구름 떼를 오선지 삼아 걸린 붉은 태양이 슬픔을 노래하라고 주문하는 음표 같다. _작품 해설, 『365일 모든 순간의 미술』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Egon Schiele <Four Trees>, (1917) 출처: Wiki

+ 하루키 감상

1916년 2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습니다. 100여 명의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살았던 작은 마을. 독일 포격부대의 한 달이 넘는 폭격으로 이제는 건물도, 사람도 사라진 이곳. 폐허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공허, 돌가루와 먼지만 보입니다.

이곳에 설치된 오스트리아 군 임시막사에 에곤 실레는 전방 지원 업무 및 전쟁 그림을 그렸습니다. 매일 총포소리와 함께 출근해 해가 질 때쯤 퇴근을 했습니다. 총포 소리는 가끔 잠잠해지기도 합니다.

에곤 실레는 6개월 넘게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총포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려 환청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에 들라 하면 독일군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과 가족을 끌고 가는 꿈을 반복해 꿉니다. 그렇게 몽롱한 상태에서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던 어느 날. 오늘따라 유독 서쪽 해가 진한 붉은빛으로 정지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일까? 환시일까? 자신의 뺨을 때리고, 꼬집고, 눈을 비비며 서쪽을 봤습니다. 세상은 멈춰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는 (평소 몸에 지니고 다니는) 메모장 겸 일기장인 작은 노트와 펜을 꺼냅니다. 스케치를 시작합니다. 태양이나 풍경을 보지 않고, 기억한 것을. 눈은 작은 노트, 펜, 펜이 그린 선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곧 스케치가 끝납니다. 고개를 들자 사방은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어둠은 태양과 풍경을 삼켰습니다.

1917년 에곤 실레는 1916년 스케치해 두었던 태양과 풍경을 바탕으로 《나무 네 그루》를 완성합니다.

1. 《나무 네 그루》를 보면서 나무의 숫자를 세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나무에는 강약도, 속도도, 리듬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붉은 잎. 나무줄기. 나뭇가지. 정지해 있는 음표 같았습니다. 살과 뼈를 발라 가죽으로 만든 음표.

2. 하늘과 땅은 곡선을 그립니다. 대지의 능선은 마치 파도와 같은 리듬감을 보여주고 피아노Piano(여리게)로 퍼집니다. 속도는 라르고Largo(느리고 넓게). 40–60 bpm 사이 어디쯤. 하늘에선 물결이 퍼지는 것 같습니다. 태양이 드러나자. 폭넓게 진동하는 리듬감. 메조포르테Mezzo forte(조금 세게)로 퍼지고, 속도는 안단테Andante(걷는 속도). 76–108 bpm의 사이 어디쯤.

3. 대지와 하늘의 지배자 태양. 세상을 태양은 색色으로 지배합니다. 색色 속에는 음音을 감춥니다. 격렬한 소리일수록 붉게. 차가운 소리일수록 파랗게. 한없이 느린 정지에 가까운 소리일수록 노랗게. 모든 소리의 기원(아르케arche)에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 네 그루의 나무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치 고목枯木*같은 음표. (죽음의) 우울의 징후 같습니다 ...

* 말라서 죽어 버린 나무

* 화가 - 에곤 실레Egon Schiele(1890 ~ 1918, 오스트리아)

+ 전기(1890 - 1908)

실레는 비엔나 근교의 툴른에서 철도 공무원 아버지와 보헤미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실레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미술 교사가 그의 그림에 대한 천부적 재능을 알아보고 정식 미술 교육받기를 권합니다.

1906년(16세) 빈 미술 아카데미에 지원하여 합격합니다. 그곳에서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재정적 지원을 한 구스타프 클림트와 만납니다. 또한 보수적인 학계에서 탈피한 진보적인 미술 운동인 비엔나 그룹에 합류합니다.

+ 중기(1909 - 1914)

실레는 1909년 아카데미를 떠나 불만을 품은 다른 학생들과 함께 노이쿤스트그루페(신미술 그룹)를 설립합니다. 그는 비엔나 근처의 작은 마을인 노이렝바흐로 이주하여 스튜디오를 차리고 모델이자 연인인 월리 노이질과 함께 삽니다.

이 시기 그의 유명한 작품을 많이 그립니다. 또한 판화와 수채화를 실험하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은 노골적인 성행위와 누드 묘사로 논란이 많았으며, 1912년에는 에로틱한 그림을 전시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합니다. 그는 24일 동안 감옥에 수감되어 '감옥 시리즈'로 알려진 일련의 스케치 작품을 제작합니다. 클림트는 실레를 위해 석방을 돕습니다.

+ 후기(1915-1918)

실레는 1915년 비엔나 출신의 중류층 여인 에디트 하르스와 결혼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군대에 입대했지만, 사무직에 배치되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습니다. 아내, 친구, 동료 군인들의 초상화에 집중하면서 그의 스타일은 더욱 세련되고 덜 도발적이 됩니다. 또한 전쟁 전선의 풍경과 여행의 영향을 받아 풍경화를 많이 그리게 됩니다.

1917년 비엔나로 돌아와 많은 인지도와 인기를 얻습니다. 1918년에는 비엔나에서 개인전을 열어 당대 최고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칭송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에 걸린 임신 6개월인 아내 에디트는 10월 28일 사망하였고, 실레는 3일 후 사망합니다. 그의 나이 28세,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쉴레의 작품을 외설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도발적 작품으로 비판합니다. 또한 자기 과시적이고 자기 연민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묘사하는 등 나르시시즘과 이기주의로 비난합니다. 한편, 전임자나 동시대 예술가들의 스타일을 모방하거나 과장하는 파생적이고 미성숙한 예술로도 치부합니다.

* * *

+ 주요 특징

1. 에로티시즘

실레는 그의 친구이자 스승인 클림트의 장식적인 스타일과 금박, 꽃 모티프 등의 상징적인 이미지의 사용에 영향을 받았고, 피사체는 대부분 여성 누드로, 에로틱한 포즈와 과장된 비율로 묘사합니다. 그의 그림은 여성의 신체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그의 매혹과 아름다움, 도덕에 대한 전통적인 규범에 도전하려는 그의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2. 표현주의

실레의 그림은 피사체의 심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보다 표현적이고 개인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줍니다. 실레의 피사체는 대부분 자신과 연인, 친구들이며, 종종 친밀하고 솔직하게 묘사합니다. 그의 그림에는 내면의 혼란, 외로움, 실존적 불안, 사회적 관습과 권위에 대한 반항이 표현됩니다.

3. 더 사실적, 더 조화로운

실레의 그림은 결혼 후 부드럽고 따뜻한 팔레트, 사실적이고 조화로운 구도, 낙관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로 성숙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 그의 그림에는 현실에 대한 수용, 자연과 삶에 대한 감사,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