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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Jun 09. 2024

리도섬

모리스 프렌더개스트

캐나다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프렌더개스트는 상업 미술 화가 아래서 도제 수업을 하며, 화려한 색상, 단순한 형태에 장식성을 더하여 단번에 시선을 끄는 작업에 능숙해졌다. 그는 여행지에 몰려든 인파를 자주 그리곤 했는데, 이 그림은 영화제로 유명한 베네치아의 리도섬을 담은 것이다. _작품 해설, 『365일 모든 순간의 미술』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Maurice Prendergast <The Lido, Venice>, (1898-1899) 출처: Wikiart



+ 하루키 감상

1898년 프렌더개스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납니다. 마지막 유럽 여행 때 가장 인상 깊었던 휴양지 리도섬, (영국) 웨일스 스완지 브리스톨 해협이나,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본 지중해와 다른 아드리아해에 위치한 리도섬, 포근한 태양의 포옹, 요람 속, 죽은 산호 군락이 만든 에메랄드 빛, 라군(바다와 분리된 얕고 넓은 해양)이 형성한 고요, 해안선의 입맞춤.

리도섬 전경. 출처: 위키피디아


프렌더개스트는 베네치아 본섬에 도착 전 리도섬* 팸플릿을 봤습니다. 리도섬 라군 지역은 원시 인류의 정착지였으며, 로마 시대에는 인근 로마 도시 파타비움의 항구였고, 중세에는 십자군들의 모여 출전하는 항구였으며, 12세기에는 산 니콜로 요새가 세워져 베네치아 방어를 위한 중요 요충지였다는 설명. 


* 19세기말 리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변 휴양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휴양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귀족과 유럽 및 국제 부르주아들이 자주 찾았다 _위키피디아


3000년의 시간, 공기, 바다, 하늘이 동기화된 리도섬에 도착하자 프렌더개스트를 맞이한 관광객들의 표정이 다양합니다. 아이들은 장난기 가득, 연인들은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부부들은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 노인들은 평온한 죽음의 준비를 마친 안온함, 표정들.


리도섬, 어쩌면 프렌더개스트가 상상한 이상향일지 모릅니다. 그는 그늘이 짙게 깔린 한적한 곳에 이젤을 펴고 캔버스를 놓습니다. 붓털이 짧고, 끝이 뭉툭한 붓을 꺼내 투명한 물을 묻힙니다. 스케치를 시작합니다.



&



1. 8월의 리도섬. 매우 덥습니다. 습도가 낮고, 나무와 건물이 많아 그늘이 많습니다. 바람이 많이 붑니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를 토스트에 바른 잼처럼 듬뿍 묻힌 리도섬. 그림 속 관광객들은 더위를 신경 쓰지 않은 채 각자의 사연들로 소란스럽지만, 평화롭습니다. 


2. (바다 위) 드문드문 떠 있는 요트, 길게 열을 지어 걸어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관광객들, 그들 양옆에는 나무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많은 여성들이 양산을 썼으며, 양산의 색깔이 다양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다와 양산 사이에는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3. (수채화여서 그런지) 사실적이거나 정교해 보이지 않습니다. 사전에 연구한 구성과 스케치 위로 각각의 색을 분리해 칠을 한 후, 색 번짐을 고도로 컨트롤한 느낌. 추상적이지도, 표현주의 적이지도 않지만, 리도섬의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 간질간질합니다.


프렌더개스트의 무의식과 인식의 사이. 퍼즐 조각이 모인, 인상 속 인형들.

* 화가 - 모리스 프렌더개스트Maurice Prendergast (1858 – 1924, 미국)

+ 전기(1858-1889)


모리스 프렌더개스트는 1859년 미국 뉴펀들랜드에서 태어납니다. 1861년 아버지의 식료품 사업이 실패하자 가족은 보스턴으로 이주. 모리스와 그의 남동생 찰스는 각각 14살까지 정규 교육을 마칩니다.


1891년 파리로 건너가 아카데미 줄리안에서 장 폴 로랑과 함께 공부합니다. 3년 만에 빠르게 발전했고, 공원, 대로, 카페의 일상에 매료됩니다.


+ 중기(1890~1913)


1894년 미국으로 돌아온 프렌더개스트는 뛰어난 수채 화가로서 에두아르 마네, 제임스 맥닐 휘슬러, 에드가 드가, 툴루즈 로트렉, 피에르 보나르, 에두아르 뷔야르의 작품과 일본 판화 기법 등을 흡수합니다. 그는 폴 세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해한 선구적 미국 예술가였습니다. 1905년까지 프렌더개스트 형제는 매사추세츠주 윈체스터에서 함께 살았으며, 주요 생계 수단은 액자 제작이었습니다.


프렌더개스트는 1908년 국립 예술 아카데미의 보수 경향에 항의로 조직된 '8인' 전시회에 초대됩니다. 1913년 대형 전시회에 참가, 출품된 7점의 수채화를 통해 미국 화단에서 큰 명성을 얻습니다.


+ 후기(1915~1935)


프렌더개스트는 1914년 마지막으로 유럽을 방문했고, 그는 동생(화가이기도 한)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합니다. 워싱턴 스퀘어의 스튜디오에서 마지막 10년을 보냅니다. 뉴잉글랜드의 여름 동안 그는 해변과 공원에서 밝게 옷을 입은 인물을 유화와 수채화로 그렸습니다. 1924년 청각 장애가 생겨 점점 고립되다 1935년 뉴욕에서 사망합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종종 프렌더개스트의 작품이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본질적으로 미술보다는 디자인에 더 가깝다고 비판했습니다. 그의 화려한 색채와 패턴이 시각적으로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회화적인 깊이나 서사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 * *


+ 주요 특징


1. 후기 인상주의


초기 스타일은 주로 프랑스 파리에서의 학습과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인상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밝은 색채와 자연스러운 빛의 표현이 특징적입니다. 그는 주로 일상적인 장면과 인물들을 그렸으며, 붓질이 비교적 부드럽고 색채가 조화로운 것이 특징입니다.


2. 장식적인 스타일


프렌더개스트는 색채를 더욱 대담하게 사용하며, 화면을 채우는 다양한 패턴과 구성 요소를 통해 작품에 리듬감을 부여합니다. 그의 작품은 종종 도시의 공원이나 해변에서 사람들의 활동을 묘사한 것들이 많습니다.


3. 후기 스타일


추상적이고 실험적인 요소를 포함하게 됩니다. 후기에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베네치아의 풍경과 빛의 효과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의 작품은 더 자유롭고 장식적인 형태로 발전했으며, 색채와 형태의 실험을 통해 독창적 스타일을 확립해 갑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수채화로 그려진 베네치아. 수채화 된 세상. 꿈에서 본 불투명한 물, 도시, 사람의 세계

출처: Wiki





"관대하고 가식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던 모차르트는

궁극적으로 음악의 민주주의자였다.

이 곡의 찬란한 마디마디가 증거가 가득하다."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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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침에 일어나 무엇과 상호작용하는가? 햇살, 음악, 알람, 잔소리, 오늘은 특별히 모차르트와 함께 아침을 시작하려 한다. 콘체르탄테(concertante)* _하루키


* 고전 음악에서 사용되며, 특정한 방식으로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가 상호 작용하는 형태의 곡을 지칭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내림마장조 KV.364, 1악장 - 김봄소리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Maurice_Prendergast

[2] ARTSTORYMaurice_Prendergast

[3] BritannicaMaurice_Prenderg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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