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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Nov 03. 2024

베티

게르하르트 리히터

1988년에 제작한 ‘베티’를 보자. 이 역시 10년 전에 찍은 딸의 사진을 베껴 그린 것이다. 그림을 완성한 후 그는 이를 다시 사진으로 찍어두었다고 한다. 이로써 사진과 그림 사이의 경계는 유동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첫째 딸을 그린 ‘베티(Betty, 1988년)’ 고개를 돌린 아이의 뒷모습을 포착한 스냅샷 사진처럼 너무도 생생하다. _진중권의 현대미술 이야기 中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Gerhard Richter <Betty>, (1988) 출처: Wiki



+ 하루키 감상

제2차 세계대전 중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57년 (25세) 에마 유핑거Ema Eufinger와 결혼합니다. 1961년 (29세) 동독 생활을 정리하고 서독으로 이주합니다. 뒤셀도르프 예술대학교를 다니면서 다양한 예술가와 교류하면서 1966년 베티 리히터Betty Richter와 엘리자베스 리히터Elisabeth Richter 쌍둥이 자매가 생깁니다. 


리히터는 기뻤습니다. 전쟁과 나치를 겪고, 동독에서 가난한 예술가로 살다 에마 유핑거와 서독으로 이주해 자유를 얻고, 다양한 예술을 접해 폭발적 성장과 함께 쌍둥이 딸까지 얻었기에. 사진 찍기를 좋아한 리히터는 사진 회화라는 실험적 작업으로 성공과 명성을 얻습니다.


1988년, 베티 리히터Betty Richter와 엘리자베스 리히터Elisabeth Richter가 12살이 되던 해. 미국에서 전시회를 마치고 돌아온 리히터는 쌍둥이 자매가 보고 싶어 에마 유핑거 집을 바로 찾아갑니다. ㅡ 에마 유핑거와는 1982년 이혼, 5년 만에 베티와 엘리자베스를 보러 가는 것입니다. ㅡ


"띵동" 벨을 누르자 베티인지 엘리자베스인지 모를 딸이 문을 엽니다. 리히터와 눈을 마주친 순간. 베티는 고개를 돌려 엄마를 부릅니다. 베티인지 엘리자베스인지 모를, 리히터의 눈엔 기억과 현재가 겹쳐 보입니다.

  
기억. 태어날 때부터 12세가 된 베티와 엘리자베스의 성장과정

현재. 문이 열리자 문 안쪽 어둠과 옅은 조명을 받은 딸. 자신의 등 뒤로 쏟아지는 햇살  


리히터는 이름을 불렀습니다. "엘리자베스?" "..." "베티?" " ... " 포옹을 하고, 뒤늦게 나온 에마 유핑거와 엘리자베스와 함께 산책과 대화, 저녁을 먹었습니다. 밤이 되자 리히터는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딸들과 헤어진 리히터는 집을 향해 홀로 걷습니다. 텅 빈 집에 도착하자 불을 켜고 사진 한 장을 책상 위에 놓습니다. 슥슥 삭삭 베티를 그립니다.



&



1. 리히터는 일기장을 꺼냈습니다. 19XX 년 XX 월 10일


절대적 옳음과

절대적 진실 같은 것은 없다.


2. 일기장 밑에 자신의 글에 해석을 달았습니다.


사실적인 방식, 학교에서 가르치는 미술, 미술 권위자의 말이나, 매체에서 주도하는 해석들. 전쟁터에서 서로가 정의라 주장하는 힘의 각축전같이 느껴졌다. 죽음과 폐허 위에 얻은 승리는 승자의 주장이 맞는다는 정의가 될 뿐. 나(리히터)의 눈에는 헤게모니*를 쥔 쪽이 현재의 예술계가 말하는 올바름이고 미(아름다움)의 기준 아닐까.


* 일반적으로 한 집단·국가·문화가 다른 집단·국가·문화를 지배하는 것


3. 이어서 이런 글도 적혀 있었습니다.


자연은 마음이 없다.

우연하게도 나는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작업을 하고, 

마음 없이 움직이는

자연처럼 일하고 싶다.


4. 자연은 규정하지 않고, 제한하지 않고, 이름을 남기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다. 베티와의 만남, 손에 들린 어렸을 적 사진. 객관성, 사실성. 하지만 내(리히터)가 느낀 푼크툼*이 없었다. 사진의 객관성에 주관성을 덧입힌. 미술계는 사진과 회화를 구분하고, 뒷모습을 그리면 안 된다 말한다. 나(리히터)는 '나'다. 기억과 지금 이 순간, 현실과 재현에 대한 나만의 '그것'을 그린다.


* 푼크툼punctum - 라틴어 푹 찔리는 것, 감정을 촉발시키는 것

* 화가 -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 ~ 독일) 

+ 전기(1932-1960)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1932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시대를 경험합니다. 그는 정치적, 사회적 격변 속에서 성장하였고, 이 시기 그의 경험은 예술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리히터는 1951년 드레스덴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 이 시기 사실주의적이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향을 받습니다. 당시 동독 예술 정책에 부합하는 작품을 작업합니다.


1950년대 중반, 리히터는 벽화와 무대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쌓았고, 초기 작품들은 정치적 메시지와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경향이었지만 점차 제한된 예술 표현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합니다.


+ 중기(1961-1980)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에 리히터는 서독으로 망명합니다. 그의 예술 경력에 큰 전환점이 됩니다. 리히터는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해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리히터는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영향을 받습니다.


1960년대 초반, 리히터는 사진을 바탕으로 한 회화를 실험합니다. 이 기법은 사진을 캔버스에 투사해 회화로 재현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그는 사진의 사실성과 회화의 주관성을 결합한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대표작으로는 "Aunt Marianne"와 "Uncle Rudi"가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그의 가족사진을 기반으로 하여 역사적, 개인적 기억을 탐구한 작품입니다.


1966년부터 시작된 "Color Chart" 시리즈는 그의 실험적이고 추상적인 접근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이 시리즈는 색상에 집중한 작품들로, 그가 색채와 형태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1970년대 중반에는 "Gray Paintings"라는 무채색 회화를 통해 예술의 본질을 탐구했습니다. 이는 그가 색채와 형태를 넘어서려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 후기(1981-현재)

1980년대 이후, 리히터는 국제적 명성을 얻어 주요 전시회에 참여하고 많은 상을 수상합니다. 뉴욕에서도 활동하며, 미국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의 작품은 더욱 다채롭고 실험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Abstrakte Bilder" 시리즈는 그의 추상화 경향을 잘 보여줍니다. 여러 층의 페인트를 긁어내고 덧칠하며 독특한 텍스처와 색감을 만들어내는 이 시리즈는 그의 후기 작품의 정수를 나타냅니다. 이 작품들은 그의 예술적 깊이와 기술적 숙련도를 잘 보여줍니다.


2006년에는 존 케이지John Cage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Cage" 시리즈를 발표합니다. 이 시리즈는 그의 후기 추상화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들로, 음악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작업입니다. 리히터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예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을 실험합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말합니다.


▶ 리히터의 작품은 매우 다양한 스타일과 기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는 추상화, 사진 회화, 색채 실험 등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을 시도했는데, 이는 일부 비평가들에게 혼란을 줍니다. 그들은 리히터의 작업이 일관성 없고 예술적 정체성이 불분명하다고 주장합니다.


▶ 리히터의 작품은 높은 가격에 거래되며, 이는 리히터의 예술적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비평가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이들은 그의 작품이 상업적 성공에 너무 치중한다고 주장합니다.



* * *


+ 주요 특징


1. 사진 회화

리히터의 사진 회화는 그가 서독으로 이주한 후 19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스타일은 사진의 사실성과 회화의 주관성을 결합한 독특한 기법으로, 사진을 캔버스에 투사한 후, 이를 기반으로 회화를 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진의 디테일과 명암을 살려내면서도 회화적 터치를 추가해 작품을 완성합니다.


2. 추상화

리히터는 1970년대 중반부터 추상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이는 그의 예술적 여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추상화는 그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요소로,  여러 층의 페인트를 캔버스에 쌓아 올린 후, 스퀴지(squeegee)라는 도구를 사용해 이를 긁어내고 다시 덧칠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연의 요소가 개입되어 독특한 텍스처와 색채 조합이 만들어집니다.


3. 색채 실험

색채 실험은 리히터의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이를 통해 색채의 본질과 시각적 효과를 탐구합니다. "Color Chart" 시리즈에서는 규칙적으로 배열된 색상 사각형을 사용하여 색채의 순수한 시각적 효과를 탐구한 반면, "Gray Paintings"에서는 무채색 회화를 통해 색채가 없는 상태에서의 시각적 경험을 실험합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사진, 추상주의, 미니멀리즘, 초현실주의, 풍경화 등 다양한 장르의 회화로 전 세계 컬렉터의 사랑을 받으며

생존 작가 중 최고가로 작품이 거래되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개인적으로 리히터의 사진 회화를 좋아합니다. 신선한 듯 전혀 새롭지 않은 듯

그렇지만 누군가는 생각만 했다면, 누군가는 예술로 실현해 인정받은,


리히터의 사진 회화 대표작 <Aunt Marianne>와 <Uncle Rudi>를 소개합니다.

(좌) <Aunt Marianne>, (1965) (우) <Uncle Rudy>, (1965) 출처: ©Gerhard Richter 2023

* 이곳에 소개된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모두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겨울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죠"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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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아일랜드가 생각났다. 적막함. 자연. 서늘한 바람. _하루키

Ólafur Arnalds - For Now I am Winter ft. Arnór Dan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Gerhard_Richter

[2] BritannicaGerhard_Richter

[3] Artnet: Gerhard_Ric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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