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올리바
‘초록 요정’이라고 불리는 압생트(Absinthe)입니다. 초록 요정 압생트가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 다른 별명은 ‘에메랄드 지옥’ 이것은 압생트에 의지한 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비극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_데일리 뮤지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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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 하루키 감상
1888년, 프랑스 파리에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화가, 시인, 문학가, 음악가 등이 세계각지에서 모여 활발히 활동하였습니다. 몽마르트에는 주로 화가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27세의 올리바는 예술가로서 큰 꿈을 안고 체코 프라하를 나와 파리에 도착합니다. 몽마르트에 자리를 잡았고, 보헤미안 그룹*과 어울립니다.
* 보헤미안 그룹은 파리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전통적인 규범을 벗어나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과 삶의 방식을 추구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 반 고흐, 폴 고갱, 에드가 드가, 모딜리아니, 에밀 졸라, 기욤 아폴리네르 등 단순한 예술가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문학가, 시인, 음악가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전통적인 규범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과 혁신을 추구합니다. _나무위키
올리바는 파리 생활을 시작한 지 삼개월도 채 되지 않은 날 (보헤미안 그룹) 친구들을 따라 화려한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다 길을 잃고 (파리) 교외로 나오게 됩니다. 충격적인 장면들. 거리가 부랑자와 매춘부로 가득했습니다. 거리의 바닥은 쓰레기, 동물과 인간의 배설물도 곳곳에 보였습니다. 파리의 권력자들과 지식인, 자본가들이 외면한 현실. 기이하게도 파리 이외의 프랑스 지방 도시, 타국에서는 프랑스 파리를 벨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이란 뜻)*라 부르며 칭송합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예술.
* 벨 에포크 시대(1800~1914년)는 부의 불평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1900년대 기준 프랑스 상위 1%가 전체 부의 점유율은 55%에 근접했고 파리의 경우는 1%의 점유율이 1910년 기준 68%에 근접했었습니다. 1789~1914년까지 상위 10%에게 평균적으로 국부의 80~90%가 집중되었다고 합니다. 예술과 돈이라는 상관관계를 객관적 통계로 보여준 좋은 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벨 에포크 시대 ㅡ 한편으론 계몽과 자본주의가 정착하던 시기 ㅡ 는 과연 아름다운 시대였을까요? 만약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예술의 가치가 오늘날처럼 인정 받았을까요? _나무위키
올리바는 체코가 가난한 나라지만 파리보다 살기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몽마르트에 돌아와 (한 살 위) 친구 알폰스 무하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무하는 말합니다. ㅡ 알폰스 무하는 체코 출신 유명한 아르누보 스타일 화가 ㅡ
"무하. '파리'는 무대 위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연기를 하는 배우 같아. 무대 뒤 '파리'는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어."
알폰스 무하는 고개를 격하게 끄떡입니다. 갑자기 씨익 웃는 무하. "올리바! 압생트 마셔봤어?"
올리바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습니다.
"올리바! 파리의 (가난한) 시민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이 뭔지 알아? 압생트야! 압생트는 부자들의 구두를 닦아주거나, 심부름, 구걸했을 때 던져준 동전으로 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술이지. 그러데 이 술의 신비함이 뭔 줄 알아? 술에 취하면 초록 페어리(요정)*가 나타나. 눈빛은 다정하고, 나체의 몸에서는 향기가 나, 육감적이지.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말이 없어. 가끔 입술을 오물거리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 어때 마셔보겠어?"
* 당시 정제 기술이 부족해 (도수가) 70도가 넘었던 압생트는 심각한 중독과 환각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은유한 표현
갑자기 등장한 기욤 아폴리네르(시인)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한마디 거듭니다.
"파리의 예술가들은 압생트를 마시지. 압생트를 마시지 않으면 부르주아야! 파리의 예술가라 부를 수 없어. 하하하"
초록 페어리(요정). 만나고 싶다!
&
1. 압생트는 향쑥*을 주로 포함한 허브를 증류해 만든 술이야.
2. 보통 도수가 70도를 넘기 때문에 그냥 마시지 않아. 스푼 위에 각설탕을 놓고 '더치커피'처럼 물을 내려 녹여 마셔.
3. 내가 만들어 볼게
4. 알폰스 무하(화가), 기욤 아폴리네르(시인), 에밀 졸라(소설가)와 함께 잔을 높이 올려 썽떼Santé !(건강)를 외치며 잔을 부딪쳤다. (건배란 의미의 프랑스어) 압생트를 마신 올리바. 너무 쓰고, 독하고, 어지러웠다. 꾹 참고, 두 잔, 세 잔 이어 갔다 ... ... 눈을 떴다. 혼자인 텅 빈 방.
캔버스를 꺼내 붓에 초록 물감을 묻혔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다. 올리바는 붓을 멈추고 방 밖으로 나갔다. 하얀 캔버스에는 초록 페어리가 그려져 있었다.
* 화가 - 빅토르 올리바Viktor Oliva (1861 – 1928, 체코)
+ 전기((1861-1887)
빅토르 올리바는 1861년 체코 슬라니Slaný에서 태어납니다. 그의 부모는 예술을 사랑하였고,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올리바는 일찍부터 가족과 친구들에게 인정받습니다.
그는 슬라니에서 기본 교육을 마친 후, 1879년 프라하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해 정식으로 교육을 받습니다. 올리바는 체코의 풍부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자랐고, 프라하에서 공부하며 체코의 전통과 역사를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이는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 중기(1888-1914)
1888년 올리바는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파리로 떠납니다. 당시 파리는 예술의 중심지로 다양한 예술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올리바는 이곳에서 새로운 예술적 기법과 사조를 배우고 경험합니다.
파리에서 가장 크게 영향받은 사조는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였습니다. 그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발전시킵니다. 빛과 색채를 활용하여 감정과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능숙했으며, 상징적인 이미지와 주제를 통해 깊이 있는 메시지를 만듭니다. 파리에서 여러 작품을 발표하였고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주로 일상생활의 장면을 포착했으며, 감정과 분위기를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올리바는 파리에서 보헤미안 예술가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합니다. 이 그룹은 전통적인 규범을 벗어나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을 추구하며,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경향을 보입니다.
+ 후기(1915-1928)
올리바는 후기에 많은 전시회를 열고 참가해 자신의 작품을 알립니다. 그는 체코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습니다. 올리바의 작품은 예술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현대 체코 미술의 선구자가 됩니다. 1920년대 초반, 올리바는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지만,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더욱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며, 예술적으로 성숙해집니다. 1928년 프라하에서 사망합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올리바의 보헤미안 라이프스타일이 그의 작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합니다. 예술적 탐구보다는 향락적인 생활이 그의 예술적 깊이를 약화시켰다 말합니다. 이는 그의 작품이 때로는 피상적이고 감각적 자극에 치중되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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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특징
1. 전통적 아카데미즘과 낭만주의
초기 올리바는 프라하 예술 아카데미에서 철저한 기술 훈련을 받았고, 그의 초기 작품은 인체 해부학적 정확성과 섬세한 디테일이 특징입니다. 그는 고전적 주제와 역사적 장면을 자주 그렸고, 엄격한 구도와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였습니다. 올리바는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드라마틱한 조명과 강렬한 감정 표현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2. 인상주의와 상징주의
올리바는 파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빛과 색채의 변화에 관심을 갖습니다. 중기 작품은 밝고 생동감 있는 색채, 빠른 붓놀림, 일상생활의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자연의 순간적인 인상을 담으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또한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아 더 깊은 의미와 상징을 담으려 했고, 이미지와 주제를 통해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3. 표현주의
후기 작품에는 표현주의적 경향이 나타났으며, 감정의 강렬한 표현과 왜곡된 형태, 어두운 색채가 특징입니다. 이는 올리바가 인간의 내면적 고통과 불안을 표현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기법을 실험해 예술적 표현을 확장합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올리바의 그림들은 독창적이라기 보단 당시 주류 예술계의 영향을 받아 자기만의 스타일로 발전시킨 것 같습니다.
"쿠프랭 이전의 피아노 연주자들은 건반을 연주할 때
엄지손가락을 빼고 여덟 개만 사용했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는 이 곡은 기법상의 혁명을 담고 있다." _1일 1클래식
+ 출처
[1] 위키피디아: Viktor_Oliva
[2] Wikiart: Viktor_Oli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