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40년을 살 때까지 운동을 꾸준히 해본 적이 없었다. 꼭 해내야 하는 공부나 업무 등 일상생활만 해도 이미 하루치의 체력 이상을 써버린 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 자체가 모자랐다. 늘 골골대던 나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던 구 남친은 어느 날 “한 달에 헬스장에 10번 가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했다. 내가 운동하는 게 자기 소원이라며. (아아, 그는 정말 나를 사랑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무슨 선물을 받았냐고? 겨우겨우 9번은 채웠는데 나머지 한 번을 못 가는 바람에 결국 아무것도 못 받았다. 기껏 끊어놓고 이용은 하지 않는 헬스장 기부 천사에게 한 달에 10번 출석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것. 그리고 그 구 남친은 현 남편이 되어 두고두고 이 이야기를 우려먹곤 한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가니 어떤 위기감이 왔다.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눈이 말똥말똥 떠지고 잠들기가 어려웠다. 자는 시간이 늦어지고 얕은 잠을 자니 낮에는 너무 피곤했다. 낮에 활동량이 떨어지다 보니 밤잠에 다시 문제가 생기는 나쁜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고질병이었던 소화불량과 두통, 수족냉증도 더 심해졌다. 약한 체질을 타고 태어나 원래도 절전모드로 살긴 했지만, 앞으로는 급속하게 나빠질 것 같다는 강력한 위기감이 들었다. 더는 미룰 수 없는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늘 운동하라는 남편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들었는데, 이제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게 큰 변화다. 그런데 뭘 하지?
그간 다양한 운동을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문제는 시도에 그쳤다는 것. 핑계 없는 무덤 없다지만 내가 운동을 그만둔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마음에 안 들었다. (하아, 까다로운 나여!) 어차피 운동가는 길이 즐거웠던 적은 한 번도 없으니 지속가능한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것을 찾기보다 싫은 것을 골라내는 ‘소거법’을 택하기로 했다. 일단 헬스장은 들어갈 때 느껴지는 시큰한 땀 냄새가 싫었다. 우락부락한 남자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다음으로 선택한 요가는 명상과 느린 템포 탓인지 늘 지루했다. 수련이 끝나고 가만히 누워있는 사바아사나(일명 시체 자세)를 할 때가 유일하게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수영은 수영복을 입고 벗고 샤워를 하는 과정이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집에서 멀고, 운전해야 갈 수 있는 것도 단점. 재즈댄스는 재미있고 흥겨웠지만 몇 달이 지나자 밥 먹으러 가자, 선생님 선물 사드리자 등 원치 않는 제안이 들어오기에 그만뒀다. 둘째 출산 후 생긴 요실금으로 달리기는 애초에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그때 예전에 다니던 요가원에서 새로 오픈한 필라테스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이 생겼다. 주위에서 나처럼 자세가 안 좋은 사람들이 교정 및 재활로 효과를 봤다는 후기에 한번 해보자 싶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센터 문을 열고 들어가 강사님의 소개로 흡사 고문 기계(?)를 닮은 낯선 기구들과 첫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햇수로 3년째 일주일에 두 번씩 꾸준히 필라테스를 하는 ‘필테인’이 되었다. 심지어 이번 달부터는 자발적으로 횟수를 늘려 일주일에 3회 등록을 하기도 했으니 이만하면 내 반려 운동이라 할 수 있겠다. 다른 건 다 그만뒀는데 왜 필라테스는 꾸준히 하고 있을까? 필라테스는 무슨 매력이 있길래 ‘운알못’인 나를 사로잡은 것일까?
필라테스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첫째, 집에서 걸어서 5분, 가깝기 때문이다. 다년간의 실패 경험으로 보아 집에서 멀면 안 가고 싶은 마음이 두 배, 세 배 커진다. 피곤해서, 몸이 아파서, 할 일이 많아서 등등 온갖 이유를 대며 뭉그적대기 마련. 설사 지각이 임박했더라도 마음을 고쳐먹으면 바로 뛰어갈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에 지금껏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었다. 둘째로는 소규모 레슨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매트를 깔 때마다 알게 모르게 눈치싸움을 해야 하는 요가에 비해 기구를 이용하는 필라테스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게 마음이 편했다. 내가 다니는 센터는 강사 대 회원 수가 1:3이라 선생님이 자세를 꼼꼼히 봐주실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물론 결제할 때마다 적지 않은 금액에 손이 덜덜 떨리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른 지출은 줄이더라도 운동에는 돈을 쓰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병원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눈을 딱 감고 카드를 내민다.
허나 중간에 어떻게 위기가 없었으랴. 워낙 근육량이 없고 뻣뻣해서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 분명히 나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회원이나 나보다 열 살은 나이가 많은 분들이 해내는 동작을 못 하고 쳐다만 볼 때, 수업 시간 내내 칭찬 한번 못 받고 계속 지적을 받을 때 마음속 깊이 자괴감이 밀려왔다. 어느 날은 속상함에 집에 오는 길에 눈물을 훔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나는 안 되나 봐. 돈만 버리고 도통 늘지가 않네. 이번 수강권이 끝나면 그만해야지.’ 그렇지만 필라테스는 내게 어떤 운동인가. 길고 긴 소거법을 거쳐 남은 거의 유일한 대안이 아닌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함은 다시금 발걸음을 돌려 센터로 향하게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일주일에 두 번, 고작 50분이라 몸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미세하게나마 근력이 생기고 힘이 붙은 게 느껴진다. 처음엔 무슨 얘기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던, 알아는 들었으나 해낼 수 없었던 선생님의 큐잉 - 척추를 하나씩 분절하면서 내려가세요. 요추부터 하나씩 벽돌 쌓듯이 올라오세요. 배꼽을 등 뒤로 붙이세요. 엄지발가락은 들어 올리고 나머지 발가락은 바닥에 붙여주세요 등등 (아니, 딴 사람은 이게 된다고?) - 을 이해하고 해낼 수 있게 되었다. 필라테스는 근육을 섬세하게 쓰는 운동이기에 몸은 그저 통으로 몸인 줄만 알았던 내가 장요근, 내전근, 내·외복사근, 승모근 등 근육의 이름과 쓰임새를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도통 안 되던 동작을 성공했을 때 나보다 더 기뻐해 주시는 강사님들을 볼 때, 허벅지에 힘이 생기고, 말린 어깨가 펴지고, 휘어진 O자 다리가 딱 붙을 때 그래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필라테스를 갈 때마다 예전처럼 내적 갈등을 겪지 않는다. 레깅스를 입고 미끄럼방지 양말을 챙겨 신고 센터로 씩씩하게 달려가는 나를 보면 드디어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나 싶다. 땀을 흘리고 근육통을 느끼고 나면 “적어도 오늘 한 가지는 해냈구나!” 싶어 성취감도 느껴진다. 자주 나를 짓누르던 우울감과 불안감도 많이 사라진다. 운동이 신체 능력을 키우는 것뿐 아니라 마음의 근육도 키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십 대 중반을 바라보는 요즘, 앞으로 닥칠 노화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발전하는 부분도 있기에 조금은 더 의연하게 맞이해보려고 한다. 평생 운동과 거리 두기를 하던 나를 운동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필라테스, 나의 반려 운동에게 고맙다. 앞으로도 꾸준히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