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라는 세계> 에필로그
일주일 만에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졌다. 연분홍 진달래도 수줍게 피고, 화사한 기운을 뽐내는 노랑 개나리도, 하얀 드레스를 입은 것 같은 목련도, 모두가 기다리는 봄의 제왕 벚꽃도 폈다. 춥고 외롭다며 개 산책이 고행이라고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흐드러진 봄꽃과 함께 봄 나들이 마냥 집 밖을 나선다. 돌아보면 마루가 우리 집에 온 게 지난 10월 말,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때였다. 사각사각 찹찹찹 마른 낙엽 밟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던지. 강아지라는 낯선 세계에 들어온 지 어느새 세 계절이 지났다.
마루와 함께 지내며 쓴 열두 편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6개월가량 짧은 시간인데 몇몇 변화가 눈에 띈다.
가장 큰 건 마루 체형의 변화다. 마루가 우리 집에 왔을 때 4.7kg 정도였는데, 지금은 3.7kg로 1kg나 빠졌다. 치와와 적정 몸무게가 3kg라니 아직도 통통한 건 맞지만 체중의 20%를 감량했으니 강아지로서는 큰 변화다. 원래 사람 다이어트보다 개 다이어트가 더 어렵다고 한다. 사람이야 최소한 체중감량의 이유와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강아지가 주인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겠나. 밥양도 줄이고, 최대한 간식도 덜 주고, 우리가 먹는 브로콜리나 당근, 양배추, 파프리카를 데쳐서 작게 잘라 급여하는데 다행히 마루가 잘 먹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부작용은 늘 배고파한다는 것과 가끔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어휴, 제발 좀). 쓰레기통을 베란다에 두고 주방 문을 닫는 것으로 원만하게 합의를 보았다.
두 번째 변화는 마루를 우리 침대에 올려주게 된 것. 지난 6화 글에서는 마루가 아무리 우리 방 침대에 올라오고 싶어서 낑낑대도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마루를 데리고 거실 소파로 나갈지언정 내 이불과 베개는 사수했었다. (죄송합니다. 깔끔쟁이라서...) 그런데 겨울 아침 포근한 온수매트 위에 미적거리고 싶을 때, 마루를 안고 썰렁한 거실로 나가는 게 내키지 않는 날이 왔다. 어느 날 큰 아이가 내 침대에 올려놓은 마루를 못 본척 하는 걸로 타협했다. 지금 마루는 거실 자기 침대에서 자고 나면 다시 엄마 침대에서 짧은 아침잠을 즐긴다. 형아들이 학교 가고 난 뒤 빨리 엄마 침대로 올라가자고 보채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덕분에 느긋하게 시작하는 아침, 마루 덕분에 삶의 템포를 조금 늦추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연재 중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글은 '5화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였다. 초기엔 접종 등 병원비와 필요한 물품, 간식, 사료를 사느라 매달 20-30만 원가량 지출했다. 마루를 사랑하지만 이 돈으로 적금을 들어도 모자랄 텐데 싶어 마음 한 구석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행히 요즘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초기 정착기와 지름신이 물러간 지금은 매달 병원비와 사료값, 몇 달에 한번 미용값 정도만 지출해 월 10만 원 안쪽으로 지출한다. 그만큼 가계부에도 조금 더 여유가 생겼다. 알뜰살뜰 살아보세!
아이들의 변화도 기록해두고 싶다. 처음에 마루와 같이 살길 고민했을 때 의외로 아이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렇게 강아지 노래를 부르더니 막상 며칠 임시보호를 해보니 엄마아빠를 1순위로 따르는 녀석에게 좀 서운했나 보다. 아이들은 "마루는 가족 같기보다 친구 같은데, 친구랑 꼭 한 집에서 살 필요는 없잖아요. 가끔씩 만나는 건 좋지만."라고 했었다. 지금은? 두 달 전 마루를 친구 집에 맡기고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둘째 선우는 매일 아침마다 마루가 보고 싶다고 보챘다. 감정을 투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둘째에 비해 시크한 큰 아이조차 “마루 없이 지냈던 11년이 기억이 안 나요.”라고 하는 걸 듣고 놀랐다. 아이들이 마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마루가 우리 가족에게 큰 의미가 되었는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간 <강아지라는 세계>를 쓰면서 많은 격려와 응원을 받았다. 쓴 글이 다음 포털 메인 화면에 소개되어 조회수가 3만이 넘어갈 때 기분이 참 좋았다. 작가로서는 내가 쓴 글을 많이 읽어주는 게 최고의 행복 아닐까? ‘Today's Pick: 요즘 뜨는 브런치북’ 5위에 올라갔을 때도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신이 났더랬다. 무엇보다 작가로서 큰 수확은 글쓰기가 좀 더 편해졌다는 거다. 글쓰기가 원체 어렵고 힘든데 게다가 잘 쓰고 싶은 욕심에 힘이 많이 들어갔던 게 사실. 그런데 마루 이야기를 쓸 때는 큰 부담감 없이 즐겁게 쓸 수 있었다. 매번 성실히 마감을 지키지는 못 했지만 한 주에 한 편 올리겠다는 독자와의 약속은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 동물을 사랑하기 전까지
우리 영혼의 일부는 잠든 채로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아나톨 프랑스의 말이란다. 마루를 키우면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가슴깊이 알게 되었다. 사십이 넘어 이제야 알게 된 게 아쉬울 정도로, 깊은 교감을 나누는 친구가 된 너. 마루야, 네 덕분에 내 영혼의 일부가 깨어났다는 걸 아니? 사랑한다, 우리 강아지.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자.
* 그동안 우리 마루 이뻐해 주시고 초보 보호자의 좌충우돌 반려견 양육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하는 동안 서로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게요. 독자 여러분도 봄기운 만끽하시고, 몸과 마음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