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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Mar 26. 2024

강아지 낱말 사전

반려견을 키우면서 주워 담고 매만진 단어들


"우리 집에 강아지가 있다니...! 아직도 신기해."


어젯밤 남편이 마루를 쓰다듬으며 한 말이다. 나도 그렇다. 마루가 우리 집에 온 지 반년이 다되어 가건만 이 녀석과 함께 하는 익숙한 듯 새롭다. 소녀시대의 명곡 <다시 만난 세계>가 아니라 <새로 만난 세계>라고나 할까? 6개월 전에는 알지도 못했고 관심조차 없었던 한 세계가 나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에 하나가 '강아지와 관련된 단어'다.


말과 글을 다루는 사람인지라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면 바닷가에서 조약돌 줍듯 하나씩 주워 담았다. 그간 동글동글 매만지다가 <강아지라는 세계> 연재 마지막에 내어놓는다. 이미 강아지를 키우시는 분들에겐 익숙하겠지만 나 같은 초보 반려인에겐 신기하고 웃기고 기발한 강아지 단어 모음집이다. 이름하여 강아지 낱말 사전!



1. ㄱ: 개모차, 개르가즘, 개리야스, 개따뜨텍 등


일상에서 많이 쓰는 단어에 '개'를 더하면 새로운 단어가 된다. 유모차(요즘은 '유모차' 대신 성별 구분 없는 '유아차'라고 하지요) 대신 강아지를 태우는 '개모차', 강아지가 좋아하는 부분을 긁어주면 녹아내리는 모습은 오르가슴(오르가즘이 아니고 오르가슴이 표준어라고 합니다) 대신 '개르가즘'이라 쓴다. 강아지용 빨간 내복을 광고하는 웹페이지에서는 메리야스가 아닌 '개리야스' 쓰여있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강아지용 방한 패딩을 파는 브랜드의 이름은 무려 '개따뜨텍'이었다! 아니, 역시 드립의 민족. 이런 센스는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유머학과라도 전공하셨나?!


2. ㄱ: 기호성


'기호성'은 반려견/반려묘 영양제를 파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워 담은 단어다. 반려동물이 영양제를 잘 먹으면 '기호성이 좋다' / 잘 안 먹으면 '기호성이 좋지 않다'라고 표현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음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기호성이 좋다'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데, 동물에게는 이런 특정 단어를 쓰는 것이 신기했다. <강아지 낱말 사전> 편을 기획하게 만든 단어인 '기호성', 참고로 우리 마루는 기호성이 다소 좋지 않다고 하는 영양제도 잘 먹는 식탐 많은 강아지라는 사실!


3. ㄸ: 똥꼬스키


'강아지가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질질 끄는 것 같은 모습'을 '똥꼬스키를 탄다'라고 표현한다.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마루가 이 행동을 한 적이 있어서 뭔지 검색했다가 알게 되었다. '똥꼬스키'라니 너무나 직관적이고 기발한 표현이라 가족들과 박장대소하면서 웃었다. 우리가 보기엔 웃기지만, 이건 사실 좋지 않은 신호다. 강아지에게는 항문낭이라는 주머니가 있는데 항문낭액이 차 있거나 주위에 염증이 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 강아지가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에 보호자가 항문낭을 짜주거나 동물병원에 가서 기본관리를 받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


4. ㅂ: 반려동물


이제 많이 상용화된 단어지만 부러 써둔다. 예전에는 강아지, 고양이 등 집에서 기르는 동물을 '애완동물'이라고 주로 불렀다. '애완'은 '사랑 애, 놀 완(즐길 완)'을 인간이 즐거움을 위해 기르는 동물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동물이 장난감(완구) 같은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반려, companion) 존재라는 뜻을 담아 요즘에는 '반려동물, 반려견, 반려묘' 같은 단어를 더 많이 쓴다. 사소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쓰는 단어 하나가 달라진 인식을 반영하고, 더 나아가 강화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 반려견 마루에게 좋은 반려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


5. ㅂ: 발사탕


아, 이것도 너무 귀여운 표현이다.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자기 발을 정성스레 핥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을 '발사탕을 먹는다'라고 표현한다. 요즘은 가수 비비의 <밤양갱>이라는 노래가 인기를 얻으면서 발사탕 대신 '발양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발사탕 역시 정상적인 강아지의 행동이긴 하나 너무 자주 빠는 것은 발에 염증이 생겨서 나타나는 증상일 수도 있으니 잘 살펴보아야 한다. 산책 후 깨끗이 닦아주고 잘 말려주는 등 관리가 필요!


6. ㅁ: 마킹(marking)


강아지를 산책시키면 강아지가 뒷 발 하나를 들고 오줌을 찔끔 싸고 지나가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이 행동을 마킹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오감 중에 시각에 주로 의존하는 반면 강아지에게는 후각이 중요하다. 마킹은 영역 표시이자, 다른 강아지에게 자신이 왔다 갔다는 걸 냄새로 알리는 인사기도 하다. 처음에 실내 카페나 친구 집에 데려갔을 때 아무 곳에나 마킹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는데 그건 기우였다. 다른 강아지 냄새가 나지 않는 곳에서는 마킹을 하지 않았다. 대신 산책할 땐 어찌나 킁킁거리시는지 원...!


7. ㅅ: 슬개골 탈구


강아지를 키우고 나서 소형 강아지에게 가장 흔한 질환이 '슬개골 탈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슨 뜻인지 몰라 바로 검색했다. 한자로 무릎 슬 자를 써서 무릎뼈, 즉 강아지 뒷다리에 있는 작은 뼈가 습관적으로 빠지는 상태를 말한다. 다소 증상이 가벼운 1기부터 걷기가 힘들어 당장 수술이 요구되는 4기까지 있다. 처음 동물병원에 갔을 때 마루는 3기로, 6살이 되기 전에 수술하는 것이 좋다는 소견을 들었다. ㅠㅠ 마음의 준비와 함께 적금 들 준비도 해야 한다.


8. ㅌ: 타견반응


1번 '기호성'과 함께 듣도 보도 못한 단어라 적어두었다. 타견반응은 산책 시 다른 강아지를 만났을 때 짖거나, 줄을 당기거나,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놀자는 요구가 심한 등의 반응을 나타내는 말이다. 주로 '타견반응이 심하다/심하지 않다'라고 쓴다. 타견반응이 심한 강아지는 반려견 훈련사에게 사회성 교육, 혹은 둔감화 교육을 받기도 한다. 마루는 타견반응이 거의 없는 편이라 다른 강아지를 만나면 인사도 잘하고, 인사가 끝났다 싶으면 쿨하게 제 갈길 가는 강아지다. (쓰고 보니 구구절절 팔불출 개엄마네?!)


9. ㅌ: 털 쪘다


'털 쪘다'는 미용한 지 오래되어 강아지 털이 길게 자란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몸무게가 는 '살쪘다'와 구분되는 말. 반대어로는 ‘털 빠졌다’가 있겠다. 이 단어도 '재미파' 남편(TMI: 세상을 둘로 나눈다면 '재미파'와 '의미파'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참고로 나는 '의미파'.)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어다. 용례로는 강아지 옷을 살 때 "요즘 저희 강아지가 털 쪄서 S사이즈는 안 맞을 것 같아 M사이즈로 샀어요." 등이 있다.


10. ㅍ: 펫팸족, 펫코노미 등


뉴스 기사에서 심심찮게 찾을 수 있는 신조어들이다. 영어로 반려동물을 뜻하는 pet을 붙여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을 펫팸족, 반려동물 관련 시장이나 사업을 이르는 말로 펫+이코노미를 붙여 펫코노미라 한다. 우리도 펫팸족이 될 줄 꿈에도 생각 못 했지만, 여하튼 반려동물 천만 시대를 맞아 펫코노미도 쑥쑥 성장하는 중!




이번 화에서는 새롭게 알게 된 10개 단어와 각각의 쓰임새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들은 몇 개나 익숙하신지 궁금합니다. 알고 있었던 단어, 몰랐던 단어, 새롭게 알게 된 단어, 혹은 내가 들은 새로운 단어들

댓글로 공유해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고양이는 더 귀엽고 신기한 단어가 많던데... 고양이 집사님들, 어디 계신가요?)


이제 곧 <강아지의 세계>는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많은 관심, 애정 감사하고요.

다음 주 '에필로그'로 찾아올게요!

 



털 찐 마루와 털 빠진 마루, 어느 쪽이 더 귀엽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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