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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Sep 26. 2021

그리움이 묻어 있는 산 1

Life in Canada

언젠가는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 블랙콤 마운틴이었다. 2019년 캐나다 워킹 홀리데 했을 당시 휘슬러에서 지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동화 같았다. 얼마만인지 모르겠지만 순간을 사는 느낌이 무엇인지 내게 가르쳐주었다.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돌아갈 계획이었던 나에게 이곳을 조금 더 머물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해 준 곳이다.


그곳을 코로나가 퍼진 후 떠나게 되었다. 그곳에 조금 더 오래 머물기 위해 계획했던 일들이 무산됐다. 비자가 만료되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선택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그랬듯 나도 떠났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 준비를 했다. 아직 오지도 않을 내일을 위해 살았다. 오늘은 늘 뒷전이었고, 순간을 잃었다. 순간을 살았을 시절이 그리웠고 코로나가 안정되어 다시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살았다. 어쩌면 기다림의 동의어는 그리움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날이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좋은 분들을 알게 되어 캐나다에 다시 올 수 있게 되었다. 우연히 BC 산악회에 가입하고 블랙콤 마운틴이 일정에 잡힌 것을 보고는 한참을 보았던 것 같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솟구쳤다. 산행 전 날, 잠을 설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뜻함과 뜨거움 중간의 더위를 지닌 선선한 아침 햇살이 떠오른 날이었다. 휘슬러 초입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는 못 올 것 같았던 곳을 오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자주 지나다녔던 주차장.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대로였다. 멤버들은 다 모였고, 산행을 시작했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던 곳을 오늘은 두발로 걸어서 올라갔다.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것도 가파르던 곳을 걸어 올라가니 숨이 턱까지 찼다. 그래도 계속 올라갔다. 올라가며 주위를 둘러보며 갔다. 눈 없는 산이 어색했지만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경사가 생각보다 가팔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치고 올라갔다. 쌓인 눈 위에서 새긴 우리의 추억들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대신 그 위에 노란 꽃들이 놓여있다. 새로운 이야기가 쌓이고 있었다.


스키를 타고 지나갔던 구간


가파름이 심해지는 구간부터 멤버들은 두 개의 조로 나뉘어 올라갔다. 의사소통을 위해 무전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각 조에 배치됐다. 우린 만남이라는 뜻을 가진 랑데부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곳은 음식과 음료를 판매한다. 깊은 숲 속에 달콤한 옹달샘 같은 곳이다.


계속 치고 올라갔다. 숨이 차다 보니 고개를 숙이고 걷게 되었다. 고개를 들고 뒤를 바라봤다. 휘슬러 빌리지가 훤히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트레일과 호수들. 자주 가던 햄버거 가게, 마트 그리고 내가 살았던 집까지 보였다. 같이 살던 룸메들은 이미 다 떠나고 없는 집이지만 산에서 보니 괜히 뭉클했다. 그곳에 있었던 지나간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드디어 랑데부에 도착했다. 겨울 스키를 탔을 때는 곤돌라에서 내리 던 곳이었다. 오전에 스키를 타고 다시 올라와 이곳에서 라면과 맥주를 먹었었다. 라면은 싸왔고, 맥주는 거기서 샀다. 추위를 달래주기에 안성맞춤인 조합이었다. 그때가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배가 고팠다.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있었다. 나는 선두였기 때문에 후미에서 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여름의 랑데부를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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