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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Sep 19. 2021

아주 오랜만에 만난, 산

낯선 산 캐나다를 오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나에게 산은 그저 거대한 햇빛 가림막일 뿐이었다. 하루 있던 휴무는 밀린 집안일과 장을 보면 하루가 다 갔고 조금 쉬다 보면 다시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날들이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채우기만 했다. 찌뿌둥한 일상에 치여도 이따금 산이 생각났다. 다시 토요 휴무를 되찾은 날 산으로 갔다.


산은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늘 도망 다녔던 것은 나였다. 현실이라는 문제 뒤로 숨어 도망치기 바빴다.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다시 돌아온 나를 따스한 햇빛으로 밝혀주며 반겨주었다. 비 예보가 잡혀있었던 터라 더 감동이었다. BC 산악회에 처음으로 나갔던 날, 그날의 산도 오늘 오른 산이었다. 오르막이 많이 없던 그 산이었다. 오랜만에 나가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코스였다.


처음 갔었던 방향 말고 이번은 다른 방향으로 코스를 정하셨다. 지난번 왔을 때 NORVAN FALLS 방향으로 갔지만 이번엔 Fisherman's Trail 방향으로 발길을 정했다. 가는 길 내내 옆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어제 내린 비의 영향으로 강물이 많이 불어나 있었다. 이 산을 5번 정도 오셨던 어느 대장님께서 오늘이 가장 강물이 센 날이라고 하셨다. 물의 흐름이 센 만큼 돌과 부딪혀 생기는 소리 또한 컸다. 청각이 예민해졌다.


흐르는 강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강물이, 왼쪽으로 돌리면 자전거들이 지나다녔다. 마운틴 바이크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곳도 많고, 평지가 많다 보니 초보자들에게도 적합한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우리는 종종 바이크가 온다는 신호를 목소리로 전했다. 자전거!라고 외치면 우린 우측으로 밀착해 지나가는 자전거를 보내줬다. 어떤 외국인은 자전거! 비슷하게 말을 하며 지나가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다. 


화창했던 햇빛이 잠시 고개를 숙이고 먹구름이 잠시 우리 위에 있었다. 어김없이 약한 비가 내렸다. 비들은 나뭇잎에 부딪혔다. 나뭇잎과 부딪히면서 빚어낸 빗소리는 우리의 배경음악이 되어주었다. 오른쪽엔 강물이, 왼쪽엔 자전거 소리, 위쪽엔 빗방울 소리 등이 어우러진 산행이었다. 이번 산행을 먼 훗날 떠올렸을 때, 자극되는 부분은 시각이 아니라 청각이 될 것 같다. 



깊숙이 들어가다 보니 나무들이 빽빽이 솟아있는 숲 속에 들어왔다. 마치 넷플릭스의 이름 모를 미드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곳은 조용했고, 차분했다. 그곳을 조금 더 걷고 싶었지만 그러면 밥 먹을 시간이 애매해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조금 올라가니 정자가 있었다. 앉아서 밥 먹기 좋은 평상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앉아 옹기종기 밥을 먹고 하산했다. 


내려가면서 지나쳤던 다리 위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회색 구름과 파아란 공간이 공존하는 하늘 아래 잠시 고여있는 물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이윽고 위에서 내려오는 흐르는 물에 의해 고였던 물은 아래쪽으로 흘러간다. 잠시 흘러가는 것에 생각을 했다. 다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흐르지 않은 것들을 생각했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니 돌이 보였다. 돌은 무심했고 물은 사색을 부추겼다. 안에 채워진 것들을 흘려보냈다.




아름다운 산의 소리를 알려주고, 우리 삶엔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산 Fisherman's Trail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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