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란 Aug 10. 2023

한 글자씩 써 내려간 글이 만든 길

12 포기하지 않은 국문학 공부와 글쓰기

드디어 막내 모유 수유가 끝났다. 여기까지 오기는 왔는데 아이들을 먹이는 일, 입히는 일,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고 살아오는 동안 내 마음은 자꾸 한쪽으로만 기울어졌다. 기운 마음에 쉬이 고이던 우울은 자책을 불러왔다. 우울과 자책과 나는 매일 밤 함께 모여 강강술래를 해온 사이지만 이제는 손을 뿌리치고 나오리라. 지금이 바로, 긴 어둠에서 벗어날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애쓰지 말라는 말이나, 엄마가 행복해야 육아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이 비로소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나를 위한 시간과 일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던 일상과,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위태로운 마음은 잠시 제쳐두고 무엇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봐야겠지.


이왕이면 혼자 경제활동을 하느라 고생하는 남편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좋을 것 같아서 일자리를 먼저 알아보았다. 아직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 할 만한 일은 드물었다. 나이 제한에도 걸렸다. 공공기관에서 경력 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재택근무자를 모집하기도 했지만, 자꾸 탈락했다. 육아 말고 다른 일도 해보면서 가계에 도움도 되고 싶다는 심산이었으나 잘되지 않았다. 다시 일하기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 당장 돈을 버는 사람이 되기는 어렵구나. 큰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졸업, 취업, 결혼, 출산, 육아. 그저 흐르는 대로만 살아온 나를 돌아보니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도대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파악하기 어려워 혼란스러웠다. 어이쿠, 설마 마흔 넘어서 사춘기인가?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역시, 꺾이지 않는 마음이겠지.



상투적인 말이 진리에 가까울 때도 있다. 그러니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책 속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마침 도서관에 갔다가 홀린 듯 빌려온 책이 바로 배지영 작가님의 책,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이다. 제목을 보고 글 한 번 써봐라 하시던 국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책을 읽는 중에 <1인1책 쓰기 프로젝트> 참가자를 모집하는 중앙도서관 공고가 나왔다. 배지영 작가님이 선생님으로 오신다고? 나는 책 표지와 공고문 속의 작가님 이름을 몇 번이고 대조해 보며 하늘의 뜻이 과연 여기 있는가 생각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1인1책 쓰기 사전 특강'도 신청했으나 특강 며칠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15년 전 교통사고를 낸 차와 같은 차종의 차였다. 이런 우연은 얄궂고 불길하다. 다시 사고 때문에 발목이 잡히나 싶어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이제 나를 위해 뭐 좀 해보려니 또 다치는구나!


그러나 이번만큼은 포기하지 말고 나를 위해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너무 아프면 중간에 나오더라도 일단 가보자. 씩씩하게 가 본 사전 특강에는 글쓰기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반갑고도 놀라웠다.


모집 마감일까지 프로젝트 지원서를 충분히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에세이 주제도 정하지 못하고 오래 헤맸다. 겁쟁이 모드가 즉각 발동했다. 그냥 지원하지 말까? 쓸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고, 내 이야기를 써내면 마음의 무거움을 덜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걸까. 고민 끝에 나의 서투르고 못난 모습도 숨기려고 하지 않아야 글도 써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꺾이지 않는 마음과 함께 필요한 것은 바로, 정면 돌파할 용기였다.



나는 좀처럼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을 때는 무척 기뻐서 남편과 여동생에게 자랑했다. 그러니 이제는 쓰자, 쓰자! 나를 위해 시간도 써보고 글도 써보자!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의 생체리듬에 맞추어 살아왔기 때문에 내 할 일을 하기 위한 시간을 따로 만드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숙제였다. 매일의 변화무쌍한 상황에 휩쓸려 내 글쓰기 과제는 뒤로 미룰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가지 작전을 세웠다.


첫 번째로, 건강하지 않으면 뭐든 끝까지 해내기 어려우니까 교통사고 후유증 치료를 부지런히 받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병원이 멀어 귀찮아서라도 치료를 포기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므로 도서관 1인1책 글쓰기 과제는 ‘매일’ 한두 문장이라도 써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세 번째로, 내친김에 글쓰기와 국문학 공부를 같이 해보기로 했다. 본디 계획적이지 않은 나에게 약간의 제약을 주기 위해 학교에 입학하기로 한 것이다. 방송통신대학교라 입학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국어나 문학과 닿았던 연이라고는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던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를 앞에 두고 나는 몹시 긴장하였다. 이렇게 나를 위한 글 쓰는 시간과 공부 시간이 갑작스레 만들어졌다.


유독 감기가 자주 유행했던 만만치 않은 첫 학기였다. 아이들이 아플 때는 연필 쥘 짬이 없었다. 조급할수록 마감 시간은 더 빨리 돌아오는 것 같았다. 강의를 들을 시간도 부족해서 마음이 타들어 갔다. 시간만 부족하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이해력, 집중력, 체력 모든 것이 달렸다. 그래서 어른들이 다 때가 있다고 하셨나 보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내용이 어려워 수십 번은 반복해서 읽어야 했지만 내 공부였고, 나를 위한 시간이었으므로.


내 공부를 하게 되면서 아이들과 함께 놀거나 공부를 봐 줄 시간은 줄어들게 되었고, 집안일도 바로바로 못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몸이 하나라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도, 맡은 일을 다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과 좀 더 실용적인(?) 학과를 선택하지 않은 미안함이 얽혀 마음속은 어지러웠다. 그래도 친구들과 가족들은 걱정만 부지런히 모으는 나를 연필과 노트와 컵으로 응원해 주었다.


엄마가 주야장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아이들은 뭐 재미있는 게 있나 하고 왔다가 유튜브가 아닌 것을 보고, 문을 닫고 나갔다. 중간고사 때쯤 되니 엄마 공부 시간이라고 하면 문을 열지 않고 방문 앞에서 재잘거렸다. 기말고사 기간에는 너희들도 엄마랑 같이 열심히 공부해 보자고 말해 보았다.


내 이름이 붙은 목표를 위해서 달려가는 시간은 꿈결 같아, 몸은 힘들어도 신이 났다. 쉬려고 누웠다가도 아이 키우면서 겪은 이런저런 설움들이 떠오르면 다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너무 소중한 기회라 순전한 마음으로만 공부하고 싶었는데 악도 한 숟갈, 깡도 한 숟갈씩 들어있었다. 그 덕분인지 글쓰기 과제도 지금까지 빼먹지 않고 제출했고, 한 학기만 버텨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학교 공부도 중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쳤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왜인지 미래가 희망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글쓰기 수업을 같이 듣는 분들이 쓴 생생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세상 넓은 것을 ‘실제로’ 알게 되었다. 글 속에 펼쳐진 삶을 속속들이 전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주 따뜻하고도 강렬한 경험이었다. 각자 고유한 존재들이 삶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선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단하지 않은 삶도 없고, 귀하지 않은 삶도 없었다. 내 삶도 그중에 하나이리라. 그러니 보희야, 자책할 것 없다. 스스로를 볶아대면서 지내왔기에 힘든 기억이 먼저 떠오르지만, 아이들이 훌쩍 자란 것을 보면 뭉클해지기도 하고, 그동안의 시간이 의미 없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 때도 분명히 있다. 그런 때가 바로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은 나에게 새로운 길로 가는 문이 되어주었다. 내가 쓰고 있는 어둡고 지루한 글이 무슨 소용일까 싶을 때도 있지만, 이 이야기를 다 하고 나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글쓰기 선생님의 말씀을 믿는다. 그래서 끓는 찌개 위로 떠오르는 거품을 걷어내는 마음으로 오늘도 쓰고 있다. 빛깔도 곱고 맛도 좋은 찌개를 상상하면서. 다음번에는 다른 찌개도 거뜬히 끓여내는 내 모습을 기대하면서.


학교 공부를 하고 글쓰기 수업을 받으면서 나의 내면이 이전보다 튼튼해진 것을 느낀다. 부지런히 지은 글로 내 마음을 단단히 세우면, 나쁜 말들에 지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제는 밥만 짓지 않고 글도 짓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자책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 ‘행복한 사람’이 먼저 되면 ‘행복한 엄마’도 될 수 있을까? 타고난 천성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내 마음속의 커다란 구멍이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라 시원한 그늘이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우울의 터널과 상실의 바다를 또다시 만날지라도 매일 한 문장씩 쓸 수 있다면 어떻게든 건너갈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렇게 걸어가면 길이 되겠지. 갇혀있다고 느꼈던 삶 속에서 걸어 나와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보라는 것이 삶이 나에게 주는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이전 12화 섬 같은 '소도시 외곽지역 아파트'에서 키우는 네 아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