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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란 Jul 28. 2023

섬 같은 '소도시 외곽지역 아파트'에서 키우는 네 아이

11 좋은 엄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엄마 없이 어린아이 혼자서 사람들 사이에 낄 수 없던 기억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혼자 어설프게 서 있는 경험이 반복되자 어른이 되어서도 모임이 생기면 그곳에 내 자리가 있을까 미리 걱정하게 되었다.


나는 왜 낯선 곳에 잘 적응하지 못할까, 어째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할까?


마음 한편에 웅크리고 있던 질문들은 기지개를 켜면, 나는 일어나 버스를 타고 일부러 모르는 동네의 정류장에 내려 낯선 간판들을 읽으며 걸었다. 석정갈비, 문화슈퍼, 갈매기 포차, 화신 맨션…이름 있는 것들 사이에서 이름 없이 걷는 자유가 무척 좋았다. 해 아래를 걸으며 내가 햇볕에 간을 말리는 토끼가 된 상상을 했다. 눅눅하고 불안한 내 마음도 뽀송뽀송해지기를 바라면서.


‘내가 엄마 역할을 잘하고 있는 건가? 어린 시절에 많은 것이 결정된다던데 뭔가 더 해줘야 아이들의 정서발달이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밥만 겨우 먹이고 있는데 어쩌지?’


내 안의 질문들이 상황에 따라 바뀌어도, 기질 탓인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금세 우울하고 불안해지는 것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로 고민해도 바뀌는 것은 없고 괴로울 뿐이니까, 이제는 우울해 질 낌새가 보이면 무조건 햇빛 아래로 나가 걷거나 뛴다. 뛸 때는 눈물이 수평으로 흘러서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전문가의 육아 정보가 넘쳐났다. 가이드를 제시해 주는 것은 도움이 되었지만, 아이가 늘어날수록 전문가의 충고와는 정반대로 보내는 날도 많아져서 잘 키우기가 더 어렵게 느껴졌다. 전문가가 말하는 좋은 부모의 기준에도 나는 한참 모자랐다. 그렇지 않아도 좌절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아이만 키운다는 말은 나를 먼지처럼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엄마로 사는 게 어때서? 선물 같은 아이들 끼니 안 굶기고 깜냥깜냥 키웠다는 항변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을 특별하게 포장하는 말 같아서 하지 못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할머니는 새로운 것을 나에게 보여주시려고 시내의 큰 시장에 나를 종종 데리고 가셨다. 주로 버스를 타고 갔지만 걸어서 가는 날이 더 재미있었다. 집에서 5km 정도의 거리로 어린이 걸음에는 제법 먼 거리였지만 그때는 모험을 떠나는 것 같아 힘들지 않았다. 할머니와 함께 철길을 따라 걷고, 육교도 건너보고, 길고 짧은 횡단보도 몇 개를 건너면 시장 입구에 금방 다다랐다. 시장 입구의 극장을 지나면 한복집, 장난감 가게, 꽃집, 책 방, 채소가게, 과일가게, 생선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사이를 오가는 리어카 상인들의 확성기 소리에 골목골목 활기가 넘쳤다. 어디를 보아도 볼거리가 많아 이쪽저쪽 고개를 돌리며 구경하기 바빴다. 친절한 상인들이 ‘할머니랑 시장 왔구나.’ 하며 손에 쥐여 주던 자두나 마른오징어 다리를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당시에는 희귀한 수입 과일이었던 바나나에 내가 눈을 떼지 못했던 것처럼, 할머니는 ‘진짜 트리’를 닮은 끝이 뾰족한 침엽수 모양의 인조 크리스마스트리를 한참 구경하셨다. 우리는 바나나도 트리도 사 오지 못했지만, 대신 집에 있던 가장 큰 화분에 반짝이 철사와 색색의 컬러 전구를 감고, 좋아하는 인형을 걸어 연말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시장에서 파는 ‘요즘 물건’들을 보고 와서, 집에 있는 것들을 활용해 직접 만들어 집안 분위기를 바꾸시곤 했다.


구경도 실컷 한데다 한 손에는 핫도그, 다른 손에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쥐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내 발은 ‘솜 발바닥’이 된 듯 가벼워 둥실거렸다. 동생들이 태어난 후에는 더 이상 할머니와 둘이 하는 시장 구경은 못 하게 되었지만, 나는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종종 시장에 들러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어린 시절의 아이스크림 수레는 그 맛 그대로 같은 자리에 제법 오래 있었다. 인조 크리스마스트리도 매해 겨울 멋지게 반짝거렸지만, 차비를 아껴 모아도 트리를 사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대신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팥빵을 사 가면 몇 번이나 고맙다면서 맛있게 잡수셨다.



낯선 곳에 적응하기가 어려울 때마다 ‘솜 발바닥’은 물에 젖은 듯 몇 곱절은 더 무거워졌다. 더 걸을 수 없을 만큼 지친 날에는 할머니와 함께했던 순간들마저 희미해지는 것 같았지만, 할머니가 없는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법을 나는 몰랐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을 볼 때야 비로소 그리운 것은 항상 나와 함께 있음을 깨닫곤 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한 발짝씩 나갈 수 있었다.


나도 아이들과 보내는 알록달록한 하루를 꿈꾸었지만, 시골에서의 일상은 의외로 다채롭지 않았다. 뛰어놀 수 있는 시설도 도시보다 부족했고 구경거리도 적었다. 시골에 살면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내 땅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는 ‘소도시 외곽지역 아파트’라는 섬에 갇혔다.


그래도 아이들은 놀아야 했다. 계절마다 바뀌는 날씨와 나뭇잎의 빛깔만이 새로웠으므로 비가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우리는 무조건 아파트 놀이터로 나갔다. 민들레 홀씨를 불고, 물웅덩이에 구르고, 나무 열매를 줍고, 눈사람을 만들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에 손을 흔들었다. 늘 똑같은 심심한 하루가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형제가 많아 한 아이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은 것도, 체력이 부족해 쉽게 지치는 나의 모습도 모두 미안한 일이었다. 내가 낯을 가리고 삶의 반경이 좁은 사람이라 아이들의 세상도 좁아지는 것 같았다.


별것 없어. 좋은 엄마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야.


통달한 듯 말했지만 먹이고, 함께 놀고, 재우는 데 한정된 에너지를 모두 쏟고 나면 아이들에게 고운 말 한마디 하기가 어려웠다. 긴 세월 동안 바뀐 것은 아이가 울 때 ‘왜 그래, 왜 그래’ 하던 것을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게 된 것뿐이다. 체력이 부족한 것이 문제일까? 무뚝뚝한 내 성격이 문제일까?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도, 지속적으로 전달하지도 못하고 있는 중에도 아이들은 커갔다. 아이고, 좋은 엄마 되기도 전에 아이들 다 커버리겠네.


권정생 작가님의 <강아지똥>에 꽃 한 송이 피워내려면 흙이 부서져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내가 아프고 힘든 것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꽃을 피우기 위한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서투르고 좌충우돌하는 내 모습도 나쁘지만은 않아 보였다. 지금의 나는 ‘늘 곁에 있는 엄마’ 정도는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안달복달하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절전모드 엄마'도 되어 보려고 한다. 내가 먼저 사랑을 표현하지 못해도, 아이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반응해 주면 아이들도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어쩌면 좋은 엄마는 '이런 것'이라고 정해진 모습이 아니라 아이들이 ‘우리 엄마 좋다’고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조금 더 사셨으면 손녀 첫 월급으로 산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물로 받아 보실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정말로 멀리 가셨다. 나도 이제는 내 속에 남겨진 사랑을 가지고 아이들을 안고 살아가야 하니까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내야겠지. 사람도 데려가고 기억도 가져가 버리는 세월의 뒷모습이 다만, 야속하다. 그래도 흘러가는 순간을 건져 글로 써 두면 그 ‘순간’은 ‘영원’이 될 것 같아서, 거기서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글자, 한 글자 부지런히 써본다.


할머니의 사랑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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