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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란 Oct 16. 2023

에필로그

13 비밀을 지켜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손에 쥐는 전화기가 카메라도 되고 녹음기도 되는 신기한 세상이 너무 늦게 온 것 같다. 아니면 할머니의 얼굴, 할머니의 목소리, 할머니의 심정을 손쉽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을 텐데. 늦게 철이 든 내 탓이 더 크겠지. 할머니와 영원히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미리 깨달았거나, 예상보다 빨리 휘발되는 기억의 속성을 진작 알아챘다면 할머니께 부지런히 여쭈어서라도 기록할 수 있었을 텐데 내내 아쉽다.


할머니와 나눈 이야기는 대부분 어렴풋하게 기억날 뿐이지만, 유독 선명하게 남은 이야기가 있다. 할머니의 엄마는 마흔두 살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할머니의 여동생 중 한 분, 즉 나에게 이모할머니가 되는 그 분은 어릴 때부터, 나도 엄마처럼 마흔두 살에 세상을 떠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모할머니는 정말 마흔두 살에 병환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지금은 세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나야 했던 이모할머니의 심정이 어땠을까 싶지만, 신비한 전설 같은 이야기에 매료된 나는 나도 할머니가 사신 만큼만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할머니보다 내가 더 나이가 들면 다시 천국에서 만날 때 곤란할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초등학교 졸업생도 배출 못 해본, 갈 길이 먼 초보 엄마이다. 그런데도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 짓는 것을 볼 때 ‘할머니의 마음’이 내게 싹튼 것을 퍼뜩 깨닫는다. 아, 나도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우리 할머니처럼. 정말 할머니만큼만 살 수 있다고 가정해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 수만큼은 더 살아가야 한다. 날 수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나도 좋은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뛰어놀 아이들이 많을 테니까 우선 마당이 있는 집이 있어야 하겠다. 마당에는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천리향과 동백나무를 심을 것이다. 나무 사이에는 내가 앉을 작고 아늑한 의자를 놓아두고 싶다.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이 온다고 하면 나는 그 의자에 앉아서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멀리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리면 나는 급히 집으로 들어가서, 한 번도 기다리지 않았던 것처럼 책 읽는 척을 하며 시치미를 뗄지도 모른다.


나와 가장 오래 살았던 혜린아, 엄마를 사랑한다는 글과 그림과 몸짓에 충분히 답해주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하구나. 나중에 하자고 하지 말고 좀 귀 기울여 줄 것을 그랬지. 그때 네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이제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네. 초보 부모의 서투른 보살핌은 너에게 어떤 빛깔의 어린 시절을 남겼을까.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느껴졌을지라도 우리가 너를 사랑했던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제 너의 세상으로 가려는 문 앞에 네가 다다른 것을 안다. 앞으로는 너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더 많이 봐야 할지도 모르지만, 씩씩하게 걸어갈 네 모습과 네가 지어 갈 너의 세계를 응원한단다.


집으로 들어간 나는, 요리에 도무지 자신이 없더라도, 우선 밥을 짓고 국을 끓일 것이다. 커다란 솥을 불에 올리고 감자나 옥수수를 찌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심심한 감자와 옥수수의 기억이 아이들에게 알알이 빛나는 무엇인가로 남기를 바라면서 맛있어지라고 감자와 옥수수에게 여러 번 속삭일 것이다.


아이들의 아이들은 끊임없이 재잘거릴 테니까 나는 특히 잘 들어주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 슬쩍슬쩍 아이들 키울 때의 이야기나 책에서 본 재미난 이야기를 흘리기도 하면서. 이야기의 꼬리를 물고 이야기는 이어지고, 밤의 꼬리를 잡고 뒹굴다가 우리는 잠이 들겠지. 세상에서 마주친 괴로움이나 힘겨움을 꺼내는 날이면 아이들의 아이들과 나만 아는 비밀이 생길지도 모른다. 말없이 손을 먼저 잡아주어야지. 적당히 모른 척하고 비밀을 지켜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꼭 안아주면 마음이 풀린다는 혜강아, 아들은 키우기 어렵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나는 너를 만나기도 전에 겁부터 났었지. “축하해요, 남자 아기도 예뻐요." 딱 한 사람이 해 준 그 말은 그때부터 마음의 달이 된 것인지, 유독 지친 날엔 그 말이 꼭 떠오르곤 해. 주변도 보면서 천천히 뛰라는 말은 아마 네 귀에 들리지 않을 것 같아. 뛰어야 하는 어린이에게 뛰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마음껏 뛸 수 있는 운동장을 찾아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세상이 너무 좁았지? 네가 세상 속으로 달려 나가서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았으면 좋겠어. 자기 자신도 챙기면서 다른 사람도 돌볼 줄 아는 지혜롭고 선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가끔 집에 올 때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오렴. 달이 뜨는 밤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가 더 좋을 것 같구나.


'가성비'와 ‘효율’과 ‘스펙’을 재고 따지는, 도무지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세상을 살아갈 나의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때로는 쉬어가거나 돌아가도 괜찮다고 말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정말 괜찮으니까. 그리고 나는 언제나 아이들의 편일 것이니까. '더 열심히 해라,’ ‘포기하지 말라’는 외침들 속에서 애쓰느라 지친 아이들이 누운 머리맡에서, 너희들은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속삭여 주고 싶다.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힘들 때 돌아올 수 있는 곳을 남겨둘 수 있으니까. 우리는 모두 고향이 필요하니까. 


혜준아, 전래 동화<선녀와 나무꾼>에서는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선녀에게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고 하거든? 아마 아이 셋을 낳으면 집으로 돌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아. 육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할 수가 없고, 어린 귀염둥이들이 눈에 밟혀서 가지도 못했을 것 같거든. 엄마도 혜준이가 귀여워서 여기 있어야 할 것 같네. 원하는 게 있어도 직접 말하지 않고 뒷짐을 지고 주변만 맴도는 모습이 상상 속의 ‘충청도 양반’과 똑같아서 너는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하고 엄마 혼자 상상을 해보곤 해. 너를 키울 때는 무릎에 앉혀 책 한 권 끝까지 읽어주지 못했고,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들을 다 알려 주지도 못했구나. 사는 일에 서투른 엄마에게 뭘 배울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그럴 때마다 걱정할 것 없이 똑 부러지게 잘하고 있다는 선생님들의 말을 떠올려 본다. 네가 마음속의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고 지켜내면서 살아가는 굳센 사람이 되면 좋겠어. 


혜건아, 엄마는 누나와 형들을 낳고 몸이 많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너를 만나고 싶었나 봐. 너를 낳고 눈은 더 침침해지고 이도 많이 약해졌지만 후회하지 않아. 아직은 너의 얼굴도 볼 수 있고 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까. 모유도 부족한데다 네가 입도 짧아서 걱정을 많이 했었지. 그렇지만 좀 더 젊었을 때 너를 만났으면 좋았겠다 싶을 만큼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활발한 너를 보며 안심이 되기도 해. 막내를 키울 때쯤에는 부모도 기운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덜 혼내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요즘엔 쫓아다니기를 포기하고 안 다치고 건강하면 됐다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기도 하거든. 늦게 낳은 탓에 너랑 함께 살아갈 날이 가장 짧겠다는 생각이 들면 코끝이 시큰하구나. 엄마, 아빠, 누나, 형들 모두 함께 너를 키워냈어. 아직 너무나 작은 네가, 계속 막내일 네가 어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 지쳤을 땐 집에 밥 먹으러 와. 카레 해줄게.


싹 튼 ‘할머니의 마음’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리저리 궁리해본다. 장고 끝에 ‘좋은 할머니’가 되려던 어깨의 힘을 빼고, 마당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는 ‘거기 있는 할머니’가 되기로 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서, 낳고 낳아서 생겨난 닮고 닮음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려면 나는 아주 건강하여야 하겠다. 아름다운 너희들을 오래오래 보고 싶기 때문에. 이렇게 욕심이 많으니, 나중에는 나의 할머니보다 조금 더 오래 살고 싶다고 바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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