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말고, 근교] 4. 도쿄의 남쪽 섬 이즈오시마
이곳은 모래가 아닌 화산재와 스코리아로 뒤덮인 검은 사막으로, 화산재와 화산가스의 배출로 식물이 자라기 힘든 환경이다. 이로 인해 마치 달의 표면에 올라선 듯한 신비한 풍경을 연출한다.
도쿄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입니다. 그만큼 각종 정보가 넘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관광지를 이미 방문했다면 이번엔 '도쿄 말고, 근교'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이 연재에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도쿄 도내와 도쿄 근교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색다른 일본 여행지를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도쿄를 생각하면 먼저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가 떠오른다. 높은 빌딩을 배경으로 수백 명의 인파가 동시에 길을 건너는 장면은 1,400만 명이 사는 거대 도시의 풍경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도쿄에도 한적한 섬이 있다. 이즈 제도의 이즈오시마라는 섬이다.
올여름, 도쿄 남쪽의 한적한 섬으로 향했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푸른 바다와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이 섬에 얽힌 옛날이야기도 궁금했다. 1933년, 이 섬에서는 공식적으로 129명, 언론 보도로는 944명이 자살했다고 한다. 과연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도쿄에서 약 120km 떨어진 이즈오시마는 해저 분화로 형성된 섬이다. 섬 전체가 활화산으로, 이즈오시마 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섬으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도쿄 다케시바항에서 제트선을 타는 것이다. 푸른 물살을 가르며 출발한 제트선은 1시간 45분 후에 이즈오시마에 도착한다.
이즈오시마의 면적은 91제곱미터로, 섬을 자동차로 일주하는 데는 약 한 시간이 소요된다. 섬의 중심에 우뚝 선 거대한 활화산 미하라산 정상에는 큰 분화구가 있으며, 탐방객은 아직도 활동 중인 활화산의 분화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미하라산뿐 아니라 섬 곳곳에는 화산 활동이 만들어낸 독특한 지형이 많다. 미하라 산의 북동쪽에는 일본 유일의 사막 지형인 우라사바쿠(裏砂漠)가 있다. 이곳은 모래가 아닌 화산재와 스코리아로 뒤덮인 검은 사막으로, 화산재와 화산가스의 배출로 식물이 자라기 힘든 환경이다. 이로 인해 마치 달의 표면에 올라선 듯한 신비한 풍경을 연출한다.
섬의 남서쪽에는 18,000년 동안 화산 분출물이 쌓여 만들어진 센바 지층절단면(千波地層切断面)이 있다. 1953년 도로 공사 중에 발견된 이 줄무늬 지형은 그 겹겹이 쌓인 모양 때문에 바훔쿠엔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섬의 남동쪽 오타이네 해변에는 붓 모양의 후데시마(筆島)가 우뚝 서 있다. 이는 과거의 화산이었으나 오랜 시간 비바람을 견디며 현재처럼 뾰족한 모습으로 변했다.
섬의 남부 하브(波浮)는 작은 항구 마을로, 마그마가 지하수와 만나 형성된 둥근 분화구에서 시작된 곳이다. 1703년 쓰나미로 일부 지형이 무너지면서 현재의 바다와 연결된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곳은 조용하지만, 한때 어선과 관광으로 번성한 곳이다. 옛 미나토야 여관에서 과거의 영화를 엿볼 수 있다. 당시에는 찾기 힘든 3층 짜리 대저택으로, 현재는 '이즈의 무희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이즈의 무희>에 등장하는 유랑극단의 고향이 하부항이었기 때문이다.
섬의 동쪽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오시마 동물원과 삼나무 숲속에 자리 잡은 신비로운 하지카마 신사(波治加麻神社), 그리고 거대한 나무뿌리 사이로 통로가 있는 지형인 이즈미의 키리도오시(泉津の切り通し)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이 섬은 약 300만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년 겨울과 초봄에는 동백 축제가 열린다. 동백은 화산재와 스코리아로 뒤덮인 땅에서도 잘 자라며, 화산가스에도 저항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백은 섬 주민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동백나무를 집 근처에 심으면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되었고, 나뭇가지는 땔감으로, 동백나무 씨앗은 기름으로 사용됐다. 기름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는 돼지를 먹여, 그렇게 길러진 돼지는 '카멜리아 돼지'라고 불린다.
섬 곳곳에 활화산이 데워주는 따끈한 온천이 몇 군데 있는데, 모토마치항의 하마노유는 바다를 바라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노천탕이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일몰 시간에 가면 좋다.
이즈 오시마는 그외에도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많다. 야외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버기카를 타고 우라사바쿠를 달려볼 수 있다. 수온이 따뜻하고 산호와 열대어가 많아서 스노클링, 다이빙, 그리고 낚시도 인기다. 숙소에서 만난 낚시꾼은 배를 타고 2시간만 오면 도쿄 근교의 바다보다 훨씬 더 좋은 물고기를 낚을 수 있어서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그가 소개한 요리법은 섬의 특산물인 고추 간장(唐辛子醤油)에 생선을 절여 먹는 것이다. 이 섬의 고추는 크기가 작고 두꺼운 데다 매우 맵다. 이렇게 매운 고추 간장에 절인 생산으로 만든 스시를 벳코 스시라고 하는데, 살짝 매운 맛이 있어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활화산을 체험할 수 있는 미하라산 탐방
이 섬사람들에게 미하라산은 미하라 다이묘진(三原大明神) 또는 고진카사마(御神火様)로 신격화 되며 숭배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화산이 분화되며 섬 전체가 흔들리거나 산 정상에 붉은 불이 번쩍이는 모습에 옛사람들은 신이 강림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하라산은 1986년 11월의 대분화로도 유명한 곳이다. 처음 분화가 시작되었을 땐, 그 모습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이 섬으로 밀려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분화 6일째, 지진이 발생되며 분화구가 아닌 균열에서 용암이 솟구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용암이 고도 1,500m까지 치솟는 대분화가 시작됐다.
결국 대피령이 떨어져 도민과 관광객을 포함한 1만여 명이 하루 만에 섬을 탈출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당시 모토마치항 인근 민가까지 용암이 흘러와서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같았다고 한다.
미하라산 트레킹을 위해 우선 미하라산 입구를 찾았다.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본 미하라산은 보통의 산처럼 정상부가 뾰족하지 않고, 푸딩 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편편하다. 지름 4km 정도의 이 함몰된 지형이 바로 칼데라다. 미하라산 입구에서 정상의 분화구까지는 가벼운 트레킹으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좀 더 미하라산을 둘러보고 싶다면 분화구 전체를 돌아 본 후 오시마 온천 호 쪽으로 내려가는 루트가 있다. 분화구를 한 바퀴 도는 데는 약 50분이 걸린다.
이즈오시마 지오파크 공인 가이드 캇친씨와 함께 산을 오르면서 다양한 시대에 걸쳐 생긴 용암의 흔적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에도 시대의 대분화 때 만들어진 파호이호이 용암은 용암이 빠르게 흘렀기 때문에 겹겹이 겹쳐진 줄무늬를 하고 있다.
1986년 분화 때 생긴 울퉁불퉁한 용암류 선단에도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용암이 식으면서 느릿느릿 흐르다가 이곳에서 멈춘 흔적이라고 한다. 미하라 산 표면에는 검은 줄무늬가 여러 개 있는데 이는 1986년 분화로 흐른 용암류의 흔적이다.
산을 오르는 길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동그란 동굴 같은 것이 있는데, 갑작스러운 분화가 시작됐을 경우를 대비한 대피소였다. 지금도 미하라산의 마그마 축적은 진행중이고, 현재 일본 기상청에서 실시간으로 관측 중이다. 보통 분화 전에는 지진과 같은 전조 증상이 있고, 기상청에서 예보를 한다고 한다.
미하라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미하라 신사가 있다. 날씨가 좋으면 신사의 도리이 너머로 후지산이 보인다. 산 정상에는 고질라 모양의 바위도 있는데, 실제로 이곳은 영화 <고질라>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1984년의 고질라는 이 산의 분화구에 떨어져 최후를 맞았고 1989년 고질라는 이곳에서 다시 부활해, 식물 괴수 비질란테와 장렬하게 싸웠다.
분화구 바로 근처에는 전망대가 있었다. 분화구의 크기는 직경 300미터, 깊이 200 미터다. 불과 40년 전, 마그마가 이 큰 구멍을 가득 채우고도 넘쳐흘렀다고 생각해 보니, 새삼 자연의 거대함이 느껴진다. 주변에는 하얀 김이 오르는 곳들이 있는데, 마그마로 데워진 수증기가 올라오는 거라고 한다.
전망대에서 분화구를 바라보며 캇친씨에게 이 분화구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이 섬은 도쿄와 가깝다 보니 메이지 시대부터 대학생들의 수학 여행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섬은 자살 명소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 시작은 1933년 이 분화구에서 투신한 21세의 마츠모토 키요코(松本清子)라는 여자 대학생이었다. 그녀는 동창인 토미타 마사코(富田昌子)와 함께 산을 올랐는데, 마츠모토 키요코만 분화구에 몸을 던지고 토미타 마사코는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고 한다. 당시 언론은 미모의 마츠모토 키요코의 얼굴 사진과 함께 동성 간의 동반자살 시도라는 추측성 보도를 내보냈고, 취재 경쟁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결국 과열 보도는 베르테르 효과를 불러일으켜 미하라산으로 가는 자살 희망자들이 늘어나기에 이르렀고, 이를 구경하기 위한 구경꾼들도 늘어났다. 자살을 막기 위해 경비원과 경찰을 세웠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섬의 구치소에는 자살하려다가 실패한 사람들로 넘쳐났고, 언론에서는 이를 미하라병(三原病)이라고 불렀다.
당시 분화구에 몸을 던진 사람만 944명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었는데, 도쿄 오시마 공식 사이트상으로는 129명이 투신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섬 출신인 캇친씨 말로는 450명이라고 한다. 어느 숫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모두 한 장소에서 죽은 인원이라고 생각하기엔 지나치게 많다.
1933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사실 미하라산 사건 이전에도, 일본에는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1903년 후지무라 미사오(藤村操)라는 대학생이 닛코의 켄코 폭포에서 나무에 시 한 편을 새기고 투신했고, 그 후 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그를 따라 투신한 사건이다.
근대의 일본 젊은이들에겐 삶에 연연해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마치 순결하고 아름다운 일인 양, 쿨(cool) 하게 여겨지는 분위기가 만연했던 것이다. 이는 갑자기 생겨난 풍토라기보다, 예부터 무사의 자살을 추앙하던 사무라이 문화와 불교의 윤회관, 그리고 '모든 사람은 죽으면 신이 된다'는 일본 신도의 생사관이 근대의 염세주의 풍조와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
1933년은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킨 지 2년 후였고, 사회적으로 불안한 분위기가 만연할 때였다. 미하라산의 투신 자살이 줄어든 건 2~3년 후 태평양 전쟁이 본격화되었을 때라고 한다. 캇친씨에게 "전쟁에 내몰리자 사람들은 오히려 살고 싶어졌던 걸까요?"라고 물어보자, 그는 간단히 "아니, 전쟁 때문에 수학여행이 금지 당했거든"이라고 답했다. 이 섬에 여행을 올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지니 당연히 투신자살도 줄어든 것이다.
미하라산는 아주 젊은 화산섬이다. 100~200년 주기로 대분화가, 40년 주기로 중규모 분화가 있다고 한다. 분화가 있을 때마다 용암이 모든 것을 쓸고 가지만, 그 검은 흔적을 뚫고 다시 초록의 수목이 자리 잡는다. 그래서 이 산에서는 작은 식물의 군락부터 관목림, 낙엽수와 상록수까지 다양한 생태계를 볼 수 있다.
캇친씨는 '이런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녀석들이야말로 정말 독한 녀석들'이라고 말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산에서 자라는 생명들은 더욱 소중하다. 관목림이 있는 길의 이름은 '언젠가 숲이 되는 길(いつか森になる道)'이고, 나무가 우거져 터널이 된 곳의 이름은 '나뭇잎 사이가 빛나는 터널(こもれびトンネル)'이었는데, 이 이름들이 꽤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함께 한 가이드 캇친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50대인 지금까지 이 섬에서 살고 있다. 1986년 분화 때는 고등학생이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도쿄에서 살아본 적도 있지만 결국 섬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그의 아들과 딸도 장성하여 이 섬의 다른 마을에서 살고 있다.
캇친씨는 곧 있을 여름 축제를 준비 중이었다. 그는 지역 아이들이나 관광객들에게 이 섬의 전통 춤을 가르치며 섬의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지역 축제에서 추는 봉오도리를 설명하는 그의 표정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미하라산 탐방을 끝내고 다시 모토마치로 돌아오는 길에 캇친씨는 한 곳에 차를 세웠다. 산 중턱에서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1km가 넘는 거대한 제방이었다. 이 오미야사와 용암제방(大宮沢溶岩導流堤)은 화산이 폭발 했을 경우 용암의 이동 경로를 분석해, 용암이 마을에 도달하지 않고 제방에 부딪혀 바다로 흘러가도록 만들어졌다.
용암의 이동 방향을 계산해서 제방을 만든 것은 이곳이 세계 최초라고 한다. 실제로 2013년 10월에는 태풍으로 인한 산사태가 있었는데 토사가 이 제방으로 쏟아져 마을이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네요", "그렇지, 정말 다행이었지" 라는 말을 주고 받으며, 나는 내가 어쩌다 이 섬까지 왔는지를 떠올려봤다. 시작은 염세주의에 빠져 너도 나도 분화구에 몸을 던진 90여 년 전 청년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였다. 하지만 이 섬에서 막상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척박한 자연환경에서도 자라나는 식물들과 거대한 자연재해에 맞서며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우리는 왜 이야기를 좋아할까. 우리 삶은 언제나 이야기와 이어져 있고, 우리는 운명에 맞서 분투하는 주인공에 공감하며 삶의 위안을 얻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고, 연민하고, 응원하게 된다. 이즈오시마의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분투의 이야기였다.
이 섬의 마그마는 언젠가 다시 분출할 것이다. 2024년 현재, 마지막 대규모 분화로부터 246년, 1986년의 분화로부터는 37년이 지났다. 차기 분화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전망이 있다. 다시 분화가 시작되면 애써 생명을 피워낸 식물들은 어쩌면 숲이 되기 전에 재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인간의 노력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맞서지만, 대자연 앞에 인간은 그저 미약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삶의 터전을 일구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리고 용암이 지나간 대지에는 작은 식물들이 다시 자리를 잡을 것이다. 언젠가는 숲이 되길 꿈꾸며.
우리가 사랑하는 이야기들은 이렇게 생겨난다.
1. 도쿄에서 이즈오시마 가는 법
도쿄의 조후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다(소요시간 25분). 도쿄 다케시바항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다(고속 제트선 1시간 45분. 대형여객선 6시간). 보통은 배편을 많이 이용한다. 티켓은 도쿄기선 홈페이지에서 미리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제트선 편도 10,090엔이다.
*주의 : 이즈오시마는 모토마치항과 오카다항의 2개의 항구를 사용한다. 풍향에 따라 그날의 항구가 달라진다. 당일 아침 도쿄기선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 https://www.tokaikisen.co.jp
2. 이즈오시마 액티비티 예약하기
이즈오시마에는 스쿠버다이빙, 낚시, 버기카, 미하라산 지오파크 탐방 등 다양한 액티비티가 가능하다. 아래 사이트에서 미리 예약할 수 있다.
[홈페이지] https://activityjapan.com/search/kanto/tokyo/102/
3. 이즈오시마 버스 패스
대다수의 여행객이 렌트나 오토바이, 자전거로 여행한다. 뚜벅이 여행자를 위한 버스도 있다. 의외로 교통비가 비싸다. 미리 패스를 끊어두면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다(1일권 2,050엔, 2일권 3,100엔).
*주의: 버스 대수가 적고 일찍 끊기기 때문에 반드시 마지막 버스 시간을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그날 배가 출항하는 항구가 모토마치항인지 오카다항인지에 따라 버스 노선도 달라지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홈페이지] http://www.oshima-bus.com/files/kokuchi94.pdf
4. 모토마치 하마노유 (元町 浜の湯)
모토마치항 근처에 있는 노천탕이다. 혼욕이기 때문에 수영복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빌리는 것도 가능하다(온천 요금 300엔).
【주소】 〒100-0101 東京都大島町元町字トンチ畑882
【개관시간】 13:00-19:00
【가는 법】 모토마치항에서 걸어서 3분
5. 이즈의 무희 자료관 (踊り子の里資料館, みなとや)
하부항을 바라보고 있는 메이지 시대에 건설된 3층짜리 대 저택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이즈의 무희> 속 유랑극단이 이곳 출신이기에, 현재 <이즈의 무희 자료관>으로 활용중이다. <이즈의 무희> 관련 자료와 함께 당대 번성했던 마을의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다. 입장료 무료.
【주소】 東京都大島町波浮港
【개관시간】 9:00〜16:00
【가는 법】 하부항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