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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Sep 20. 2021

방 한 칸, 혼자 사는 집

소설 시간의 궤적을 읽다 떠올린 나의첫 번째원룸


내가 진행하는 모임 <디어 마이 뮤직>의 세 번째 시간, 우리는 영화 <브루클린>과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에 실린 단편 '시간의 궤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이 두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혼자 사는 외로움을 위로해 준 음악에 대해 이 외로운 서울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 무렵 , 나는 서울에 있을 때의 나를 종종 떠올렸다. 
그저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몸을 사리던 나. 
회식 자리에서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관심도 없는 가십을 주고받고 재미있지도 않은 농담에 크게 웃다가도 심야 버스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널  때면 마음을 박탈당한 사람처럼 공허해지던 나.
하지만 나는 파리에 왔고,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을 작정이었다.  
백수린 -  시간의 궤적 


서울을 떠나 파리에 온 주인공의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문득 내가 고향인 부산을 떠나와 처음으로 구했던 원룸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때 그 방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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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중개인의 안내와 함께 아빠의 팔 뒤에 몸을 숨긴 체 걸어 들어간 그 집은 공간을 가득 채운 퀸사이즈 침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침대가 커서 그렇지, 침대 빠지면 절대 작은 사이즈 방이 아니에요.” 

나긋한 부동산 중개인의 말에 아빠는 “그렇죠”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아빠가 원망스러웠지만 하루 종일 집을 보다 지쳐버린 나는 아무런 불만도 내뱉지 못하고 이주 후 이 집으로 이사했다. 

다닥다닥 몸이 붙은 원룸 건물들과 식당들 사이, 빛바랜 붉은 벽돌로 감싸진 오래된 건물의 2층. 복도에선 각 방의 화장실에서 흘러나온 미적지근하고 무거운 습기, 그리고 코끝을 찡그리게 하는 곰팡이 냄새가 미약하게 피어오르는 원룸 빌라. 

방 한 칸, 작은 화장실 그리고 베란다 겸 주방, 창문은 단 1개. 손을 뻗으면 맞은편 벽에 손끝이 닿을 것 같은 북향의 창문은 야속하게도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았다. 

한 가지 색 크레파스로 대충 그린 듯 삐뚤빼뚤 단출한 이 집에서 나는 혼자 사는 삶을 시작했다. 

서울에서의 삶, 아니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이란 생전 처음 듣는 주소지에서 혼자만의 삶을 시작하기에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5만 원, 관리비 2만 원이 필요했다.

월세와 관리비, 그리고 생활비를 벌어줄 회사까지는 걸어서 35분, 혹은 도보로 8분을 걷고 5분 동안 버스를 타고 다시 6분을 걸으면 회사에 도착한다. 지하철 역까지 10분이라던 친절한 부동산 중개인의 말과 달리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걸어서 15분이 걸렸다.  

그 밖의 옵션으로 쿰쿰한 냄새와 세월의 누런 빛이 덧씌워진 에어컨, 80리터의 작은 냉장고, 화장실 안에 비치된 낡은 통돌이 세탁기. 그리고 벗겨진 칠과 찐득한 기름때가 잔뜩 묻어 만지고 싶지 않은 가스레인지가 오래전부터 이 집과 함께 했다며 나에게 텃세를 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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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푸른 하늘과 꽃망울의 색이 짙은 봄날, 나는 칙칙하고 봄의 빛을 느낄 수 없는 이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날은 딸의 부동산 계약과 이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온 아빠, 엄마 그리고 나를 1개월간 보살펴준 삼촌과 숙모가 함께했다. 우리는 오후 1시경, 전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는 시간에 맞춰 청소도구를 들고 그 집에 도착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전 세입자가 남긴 먼지와 손때들, 기름때를 샅샅이 닦아내며 “아이고 우리 딸내미”를 연신 내뱉는 엄마. “이만하면 괜찮네. 우리 집이랑도 멀지 않네요.”라며 엄마의 한숨을 주워 담는 숙모의 만담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삼촌과 아빠는 삼촌의 차로 실어온 나의 몇 없는 짐과 캐리어를 옮긴 후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작은 커피포트와 전자레인지, 휴지, 그리고 1쌍의 수저를 사 왔다. 

“아빠 선물이다. 잘 해묵고 잘 살아야 한다.” 

양손 가득 살림살이를 마련해온 아빠가 건네는 봉투 속 수저 1쌍은 이제 정말 혼자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딸이 살 낯선 집에 본인의 손길을 모두 남기고 싶은 엄마 아빠의 욕심 덕에 길어진 청소는 4시간이나 걸려 끝이 났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집 앞, 아직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가게에서 매운 해물찜을 먹었다. 미더덕의 뜨거운 육즙과 알싸한 양념, 딱딱한 게 껍데기가 입안을 긁어 얼얼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졌다. 눈물을 글썽이며 입술을 움찔거리는 나의 밥 위에 아빠는 콩나물을 가득 올려주었고 엄마는 내 컵에 차가운 물을 따라주며 혼잣말 같은 잔소리를 했다.

 “이 집 맛이 없네. 맵기만 하고. 조미료를 많이 넣은 거 같다. 니는 많이 사 먹지 말고 점심엔 회사에서 주는 밥 먹고 저녁은 무조건 집에서 해 먹어라. 아침엔 바빠도 우유라도 하나 사 묵고.” 

이 식사가 끝나며 혼자 타지에 남겨질 딸을 향해 엄마가 자신의 불안과 걱정, 아쉬움을 숨기기 위해 내뱉는 잔소리였다. 


-


퇴근 후 익숙하지 않은 회사에서 긴장했던 몸을 침대까지 끌고 가지 못하고 신발장 앞에 누워 집 안을 찬찬히 바라본다. 싱글 사이즈 조립식 침대와 행거, 2만 원짜리 하얀 조립식 테이블, 각각의 색이 달라 조화롭지 못한 수납 박스들이 눈앞에 보인다. 높지 않은 천장이 오늘따라 내 코끝까지 내려온 듯한 기분에 고개를 돌려 바닥에 귀를 댔다. 누군가 1층 현관을 열고 들어와 계단을 오른다. ‘쿵’ 하는 문 소리가 들린다. 치직… 하하하하하하 텔레비전 속 연예인들의 즐거움을 가장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진흙처럼 질척이는 몸을 끌어 겨우 침대에 누웠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소리,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옆집 타인의 숨소리와 기침소리, TV 소리를 들으며 천장을 바라본다. 낯섦으로 가득한 조그마한 집은 내가 이 집을 받아들이는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나에게 낯을 가렸다. 이상스레 이 집은 나의 냄새조차 빨리 베지 않았고 나의 소리만을 집어삼켜 그 어느 장소보다 나의 존재를 침묵 속에 숨겨 드러내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노트북으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래를 틀었고, 한참 베스트셀러로 인기가 좋았던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읽었다.


집과 내가 서로 낯을 가리는 동안 나는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늦은 시간이라도 가족에게 전화를 했다. 친한 친구는 물론 평소 연락하지 않던 애매한 거리감을 둔 친구들에게도 문자를 보내 괜스레 안부를 물었다. 그 누구도 먼저 나의 안부를 묻지 않았지만 나의 하루를 알리지 않으면 언제라도 밟혀 사라져 버릴 들꽃 같은 시간들이 나를 고독경에 빠트렸다. 기억할 것 없는 밤과 낮이 뉘엿뉘엿 지나갔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길어지자 일부러 재미없을 것 같은 제목의 두꺼운 고전 문학을 구입해 읽었으나 그 책과의 싸움에서 잠을 빼앗긴 나는 늘 활자 속에서 새벽을 맞이했다. 

작고 정적이지만 치열한 체스판의 싸움처럼 나는 매일 회사 책상 위에서, 5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이어갔다. 더운 여름날의 힘든 전투 후 노획물처럼 한 권 한 권 집어온 지루한 책이 집 한켠에 높이 쌓여갔다. 나는 이 작은 방, 한 칸의 집에서의 삶에 조금씩 익숙해졌고 이 좁고 한정된 공간이 줄 수 있는 소소한 설렘과 기쁨을 찾기 시작했다. 사내 아나운서 출신인 팀 동료는 나의 사투리 중 일부 된소리를 바꿔주려 노력했고 얼마 후 나는 일료일, 월료일을 이료일, 워료일로 잊지 않고 발음할 수 있게 됐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던 나는 애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려 노력했다. 서울 사람들의 말투를 듣고 사투리가 서울말로 고쳐질수록 나는 부산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서울과 경기도에 아는 사람이 늘어났다. 출근 길목에 만난 초등학생들이 구사하던 까탈스럽고 냉정한 서울 말투가 상냥하고 명랑한, 익숙한 지저귐으로 들리기 시작한 건 그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집에는 옷과 신발이 차곡차곡 늘었고, 책과 가전제품이 좁다란 공간에 쌓여갔다. 내 손길이 닿은 물건이 늘어난 집은 드디어 나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그래도 집이 제일 편하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건 그때 즈음부터였을 것이다.


-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집은 계절과 상관없이 끊임없는 관리를 해야 했다. 언제나 화장실과 부엌의 습기를 경계하며 벽과 문 틈 사이로 곰팡이나 녹이 슬지 않도록 환기를 해야 한다. 집이 작아 금방 음식 냄새로 가득 차고 이불과 옷에 베기 때문에 향초를 피워 씻지 않는 프랑스 귀족처럼 새로운 향을 덧 씌워야 한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화장실의 창은 씻을 때를 제외하곤 항상 환기를 위해 열려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 락스 냄새를 레이어링 하여 검은 물때를 지워야 했다. 어느덧 집안을 바라보니 집은 온갖 물건으로 가득 차 비좁기 그지없었다. 이 집에서 남은 계약기간 동안 쾌적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내 존재보다 커진 집안의 물건들을 버려야 했다. 한 권의 새책을 집에 들이기 위해 2~3권의 읽은 책을 중고 서점에 팔았다. 찬장의 시간은 나의 시간과 달리 더 빠르게 흘러가는지 순식간에 날짜가 지난 식재료들은 주기적으로 꺼내 버렸다. 냉장고가 작아 많은 식품을 담지 못하기 때문에 늘 오래된 것과 새 것을 빠르게 교체하거나 먹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먹어 없애야 한다. 살아가기 위해 먹음의 ‘즐거움’이 아닌 ‘행위’를 반복해야 하는 날들이 많았다. 


반복의 행위 속에 시간은 흘렀고 2년이 채 되지 않아 야속하게 부러지거나 고장 난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끼던 물건이든 추억의 물건이든 버리고 새것으로 교체하거나 존재하지 않음에 적응해야 했다. 이 집과 물건처럼 나의 사랑도 그러했다. 낯선 곳에서 처음 시작한 사랑은 2년도 되지 않아 닳고 변해버렸다. 숙성이 잘못돼 맛을 잃어 실패한 술처럼 더 이상 회복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돼 폐기되고 말았다. 나의 사랑은 상한 음식처럼 부패한 냄새가 났다. 타버린 음식처럼 몸에 끈적하게 눌어붙어 잘 때어지지 않는 그 잔해를 지우기 위해 스스로 자해하듯 마음에 스크래치만 내야 했다. 집 짓기를 실패하거나 방해받은 동물은 맹수의 시선과 자신의 체취를 지우기 위해 혹은 더 따뜻하고 아늑한 곳에서 새끼를 기르기 위해 같은 곳에 집을 짓지 않는다. 나는 실패한 사랑을 다시 재건하길 포기하고, 나의 끔찍한 고독의 체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 떠나길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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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사를 왔을 때 계약서에 적힌 2년은 지독히도 무거운 족쇄 같았는데 사랑을 잃고 돌아본 2년은 하룻밤만에 다 읽어버린 두꺼운 책처럼 의외적으로 빠르게 소모됐다. 처음 이사 올 때와 같은 계절인 봄날. 2년 전 햇살도 이토록 뜨거웠는지, 그때보다 빨리 핀 꽃들이 만들어낸 꽃가루가 이사를 하는 내내 코를 간지렀다. 두 번째 집은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남향의 창이 있고 지금보다 한평 정도 더 크지만 역시나 방 한 칸의 집이었다. 그래도 그때 즈음 나는 타지 출신인걸 한 번에 알아차리기 못할 만큼 사투리를 고쳤고 실패한 사랑 후 한동안 서울 온 것을 후회하며 엉엉 울던 마음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로 다독인 상태였다.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하던 날, 나는 혼자 지내는 법, 아니 혼자 행복해지는 방법을 좀 더 많이 깨달은 것 같았다. 이사한 새 집에서의 첫날밤은 낮에 친구와 먹은 짜장면과 탕수육의 냄새로 코와 입가에 달콤한 향과 맛이 났다. 두 번째 집에선 회사를 가기 위해 걷거나 버스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새로운 방법을 택했다. 이번 역시 좁은 집이지만 첫 집과 달리 타지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을 자주 초대했다. 이 방 한 칸, 혼자 사는 집의 외로운 소리와 쓸쓸한 냄새가 가까이 느껴지지 않도록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계속해서 온 집안에 틀어놓았다. 타지 생활 2년 만에 집 안을 매일 방문하는 사랑스러운 햇살처럼 새로운 사랑 역시 새 집을 찾아와 집안 가득 따뜻하게 쏟아질 것이라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내가 타지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 혹은 한밤에 외로움을 느낄 때 듣는 노래 리스트 

- 오지은 - 서울살이는

- 새소년 - 난춘

- Charles Aznavour - La Bohème 

- John Denver - Take me home contry road

- Sting - Englishman In New York

- Billy Joel - Vienna

- Ray Charles - Georgia On My Mind

- Radio Head - high and dry

- Amy Winehouse 의 여러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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