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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Jul 03. 2018

불면과 불안의 밤 -4

불면증은 방안에 단어를 채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잠이 오지 않아 결국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이것저것 기록한다. 단어 수집벽이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가끔 공허함과 외로움을 활자로 메꾸는 벽이 있다. 그건 내가 다 끝내지 못한 책들을 쌓아두고도 또다시 책을 사 모으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책 선물을 한다. 생일, 퇴사, 무언가를 축하하고 싶을 때, 고백할 때, 사람들은 나에게 책을 건네곤 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친한 언니는 "사실 나는 책보다는 맛있는걸 더 좋아해!"라고 주변에 알리고 책보단 맛있는 걸 선물로 받으라고 말하며 웃었다.  


오랜만에 불면증을 길게 겪으며 떠올렸던 생각들을 한번 적어보자고 어젯밤 생각했다.  


어느 날은 퇴근길 별빛이 너무 아름다워 별 속에 나를 그려본다. 작은 별 하나하나에 나를 그리다 보면 어느덧 내 시야 속 밤과 우주는 내가 생각하는 나로 가득 차 두 눈으로 다시 들어온다. 그것은 깊은 생각이 되고 늦은 밤이 되면 단어가 된다.  단어가 많은 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불면증은 방안에 단어를 채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릿속에는 잠 대신 단어로 가득 차고 그 단어 하나하나 방안에 떠오르면 그 단어들은 다시 별처럼 빛을 밝히고 환해진 불빛에 나는 더욱 잠을 이루지 못한다.  


크게 슬펐던 시간들이 지난 간다. 폭우 같던 슬픔은 가랑비가 되고 천천히 소멸한다. 하지만 비가 하늘 속으로 말라가는 동안에도 앞선 슬픔이 군데군데 깊고 큰 자국으로 남아 마르지도 않는다. 축축한 마음을 안고 불면으로 혼자 남겨진 방은 혼자 남겨진 세상이다. 침대 위에 널브러져 시체처럼 혼이 없는 나를 오늘 밤 누가 안아주고 토닥토닥해 주었으면 좋겠다.  




 오래전 불면증을 처음 얻었을 땐 단순히 밤이 길어진 김에 책이나 더 많이 읽자고 생각했다. 간혹 감옥 같은 곳에 갇혀 책만 원 없이 읽으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상상을 했던 어린 시절이 있다. 20대의 어느 날 나에게 찾아온 불면의 밤 속에는 하루에 2권 이상의 책을 한 밤에 읽어 내리며 밤을 지새운 기억들이 많다.   

그때의 밤 중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밤이 있는데, 아멜리 보통의 '두려움과 떨림', 배수아 작가의 '철수', '나는 이제 네가 지겨워'를 연달아 읽은 밤이었다. 아마 회사 스트레스로 인해 '두려움과 떨림'을 보며 통쾌해했을 것이고, 우울함과 불안함, 슬픔이 배수아 작가의 작품에 이입됐을 것이다. 


30대에 찾아온 불면의 밤에는 최대한 활자를 읽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 밤을 지새우기보다는 어떠한 식으로라도 잠이 들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나는 몇 권의 책을 꺼내어 본다. 책장을 바라보며 최대한 재미없는 책을 읽어 잠들어야지!라고 생각했으나 내가 집에 재미없는 책을 사 모았을 리가 없다. 책장을 뒤지다 보니 선물 받은 책들이 꽤 된다. 그리곤 책을 선물해준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하나하나 추억해본다.  




갑작스레 집으로 20권의 책과 2장의 영화표를 보냈던 대학교 앞 카페 바리스타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으나 차가운 커피가 나와 "커피 잘못 나온 것 같아요. 그런데 강의 시간이라 그냥 갈게요."란 말에 내 수업이 끝날 무렵 뜨거운 커피를 들고 교문 앞에 서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카페에 무언가를 응모하기 위해 적어둔 내 전화번호와 주소로 내가 카페에서 늘 읽던 작가들의 책을 집으로 보내왔다. 그가 나를 좋아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책을 보내고 오래지 않아 그는 카페를 그만뒀다. 너무 슬프게도 나는 그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때 카페의 소파와 음악소리, 카운터, 커피 냄새, 햇빛이 쏟아지던 교문이 보이는 창가를 떠올려본다. 


가장 최근, 잠시 알았던 사람에게 선물 받았던 함민복 시인의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를 꺼내 들어 본다. 

'집에 책 두 권은 호사인 것 같아 한 권을 보낸다'는 글귀가 뭉클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귀퉁이를 접어둔 시들이 너무 슬퍼 한밤중에 엉엉 울고 말았다.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란 구절에서 나는 선물한 사람이 아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소리 내서 운다. 달과 지구가 매년 조금씩 멀어지듯, 조금씩 아주 천천히 잊혀가던 것들이 떠올라 소파에 앉아 울다 물 한 컵을 마시려 부엌을 간다. 어두운 부엌에서 냉장고 문을 열다 환해진 차가운 공기 속에 주저앉아 고개를 파묻고 펑펑 운다. 무릎 위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 사이로 잠들지 못하던 밤 나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다독여주던 사람들의 얼굴이 비껴 흐른다. 


여행지에서 잠 못 들던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엄마의 촉감이 생각난다. 엄마는 여행지에서 내가 잠이 들지 못할 때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손가락을 주물주물 주물러줬다. 

불면의 밤이 깊어져 빛이 조금씩 떠오르는 새벽이 되면 잠에서 깬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옛 애인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 가사가 너무 또렷이 떠올라 내가 잔인하게 끝냈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네가 나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어도 좋아. 나는 그저 너를 목석처럼 꼭 껴안고 사랑한다고만 말할 거야. 너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영원히.'와 같은 쓸모없는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다시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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