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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y 30. 2018

불면과 불안의 밤 -1

잠이 많던 아이는 자라 불면증을 앓는다.


헨리 맨시니의 'Dear heart'를 틀어 놓고 어두운 방에 누워 안대를 낀다. 수십수백 번도 더 들은 이 곡의 가사가 입 속에서 낮고 낮게 읊조려진다.

"Dear heart, 당신이 여기 있었다면 오늘 밤이 따뜻했을 텐데. Dear heart 당신이 나를 떠난 지 일 년이 됐네요. 혼자를 위한 하나의 방, 하나의 테이블, 쓸쓸한 마을이지만 괜찮아요. 곧 나는 우리의 문 앞에서 당신에게 안녕? 하며 키스할 거예요."

Dear Heart를 처음 들은 건 어느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던 것 같은데, 아직은 밤공기가 선선한, 뜨거운 여름을 앞둔 초여름의 어느 날 밤에도 나는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다.


혼자를 위한 집, 두 개의 방, 하나의 테이블, 1인용 침대와 소파, 작은 냉장고. Dear heart 나는 괜찮아요. 고향을 떠나온 지 7년, 이제는 서울살이가 익숙해졌거든요. 하지만 종종 늦은 밤, 어스름한 푸른빛이 커튼 사이에 저며들 때까지 나는 잠이 오지 않아요. 가끔은 안대 사이로 눈물이 축축이 젖어들 때도 있고, 가끔은 혼자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리기도 해요. 하루를 회고하기도 하고 1년을, 혹은 지난 7년의 타향살이를, 30년 넘는 인생을 복기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 시름하고 밤을 지새우기도 하지요. 가끔, 아니 종종 외로움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기도 하고, 아직도 어렵고 낯선 서울 사람들의 벽이 오늘 버스에서 부딪힌 사람의 찌푸린 인상만큼 씁쓸하지요. 까만 밤이지만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탁한 하늘처럼 희망 없는 냉정한 경쟁사회, 우주의 먼지처럼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억지웃음을 지어가며 깨물던 입술. 사회 초년생 때는 이러한 고민과 걱정들이 댐 안의 물처럼 쌓여서 순환되지 못한 체 찌꺼기가 쌓이고 쌓여 고인물처럼 불면의 밤을 모아갔어요. 그러다 어느덧 바닷가의 파도처럼 가끔은 크게 몰아치고, 모래를 쓸고, 흘러가고, 어떤 날은 방파제와 싸우며 피곤에 휩쓸려 죽은 듯 잠든 날도 있었지요. Dear heart 나는 괜찮아요. 이젠 잠이 오면 잠이 오는 데로 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 데로 밤을 보내는 방법을 깨달아 가거든요. Dear heart 나는 괜찮아요. 불안한 마음도, 불면의 밤도 이제는 7년 전보다는 괜찮아요.


딱히 빛이 있으면 잠을 못 자는 타입은 아니지만 수면용 안대는 언제부턴가 잠들기 전 의식 같은 행동이 됐다. 잠이 올 때는 깊은 잠을, 잠이 오지 않을 땐 내가 일부로 내 시야를 가려 만들어낸 그 막막할 정도로 짙은 어둠이 위안이 됐다. 어릴 때, 특히 10대 땐 내가 훗날 자라 불면증을 겪게 될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늘 잠이 많은 아이였고, 버스 안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밥을 먹다가도 졸 정도로 잠이 많은 아이였다.

잠이 많던 아이가 자라 불면증을 앓는다. 참 아이러니하다. 어릴 땐 집안 어른들이 내가 아프다고 걱정할 정도로 잠을 많이 잤던 아이였는데, 그때 평생의 잠을 너무 소진해 버렸을까?


몇 년 전 첫 회사에서 심한 불면증을 얻어서 일주일에 두세 번 사내 출장을 오시던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한참 유명했던 [제너럴닥터]의 정혜진 선생님과 사내 상담을 신청하려면 1~2주 전 상담 진료 예약을 해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가정의학과지만 30분 동안 상담 위주로 진행됐던지라 큰 부담 없이 나는 나의 불면증을 토로했다. 선생님은 약간의 수면제와 함께 잠들기 30분 전에는 아무 생각을 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해주셨다. 조금은 무뚝뚝하지만 알 수 없는 미소가 늘 서려있던 선생님의 조언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게 너무 어려워요."라며 나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며 엄청난 양의 일과 상사의 괴롭힘을 당하던 어설프기 그지없었던 사회초년생은 잠들기 전 생각이 너무나도 많았다. 회사 생각에 잠을 자지 못하고, 회사에 오면 좀비처럼 커피를 퍼마시며 일을 했다. 불면증은 곧 식도염을 불렀고 위경련에 생에 처음으로 직접 119에 전화를 걸어 응급차를 타고 울며불며 응급실을 갔다. 그때를 생각하면 1~2시간 정도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다 겨우 잠드는 밤이 고마울 정도지만, 나의 잠은 어디로 달아난 걸까? 나는 오늘도 그 생각에 쉬이 잠들지 못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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