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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Jun 24. 2018

불면과 불안의 밤 -2

다시 마주한 불면을 이겨 내는 법


몇 년 만에 불면증이 돌아왔다.

참으로 반갑지 않은 손님. 분명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슬픔과 괴로움, 외로움과 고독에서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해왔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보잘것 없이 보는 나쁜 '시선'과 전기처럼 저릿하게 퍼져 가슴을 죄어오는 '자책'을 만들어내는 어떠한 '것'이 뇌와 심장에 분비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핏속에 섞여 들었나 보다. 흔히 스트레스와 고민이 불면을 불러온다고 한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원인'으로 지목당할 스트레스 상황들은 많다만, 이번엔 그것과는 다른 불면증의 형태와 무게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트레칭을 해 보았고,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마셨다. 재미없는 책을 뒤적거리고, 릴랙스 하게 만들어 준다는 명상음악을 틀어보았다. 손끝과 발끝, 손톱 아래를 찔러도 보고, 크게 숨을 쉬어보기도 했다. 수면 유도제를 먹어도 보고 잠자리를 옮겨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떠한 방법을 행하여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약 3주를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일부러 11시에 누워도 3시에 잠이 들까 말까, 몸을 피로하게 하려고 동네를 몇 바퀴를 뛰고 돌아와도 잠들지 못했다. 평균 수면시간 4시간 이하, 잠이 들어도 꿈속을 헤맸고 회사에선 점심을 거르고 쪽잠을 잤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불면에 빠진 내내 나는 꿈을 꿨다. 겨우 1시간, 아니 30분을 자도 꿈을 꿨다. 내가 꾼 꿈은 각기 다른 사람들과 내용 없이 그냥 사랑에 빠지는 꿈이었다. 엄마에게 불면증을 토로하니 "니 혹시 악몽 꾸나?"라며 걱정을 하셨으나 그와 정반대로 꽤나 기분 좋은 꿈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잠들어서 그 꿈을 이어가고 싶다."라며 피곤한 눈 아래 설렘을 품었다. 달콤한 꿈은 닿기가 어려워서 일까, 나는 단 한 번도 동일한 꿈을 꾸지 못했고, 깨고 나면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마치 사탕을 먹고 나서 혓바닥에 단맛이 남아있듯, 그저 텅 빈 입속의 혀는 입술만 쩝쩝거리며 핥을 뿐이었다.

불면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현기증이 오기 시작했다. 달콤한 꿈과 수면의 길이를 등가 교환한 듯 불쾌하고 불안하고 괴로운 전초전 끝엔 기억나지 않는 달콤함이 맴돌았다. 물론 꿈의 단맛 역시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수면 부족의 고통은 고문 수준이었다. 아무리 사랑해도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는 희망 없는 연애처럼, 꿈의 단맛은 거기까지였다.


내가 느끼는 불면의 괴로움은 늘 비슷했다. 우선 어지럽고 온몸에 체온이 끊임없이 오른다. 자칫 감기로 오해할 만큼 몸에는 미열이 24시간 지속되며 에어컨 아래 있어도 살이 겹쳐지는 부분, 허벅지, 무릎 뒤, 팔뚝 아래 및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맥박이 흥분한 것처럼 뛰지만 실제론 혈압 자체는 더 떨어져 있다. 입맛이 없어지다가 가끔 폭식을 하고, 무기력함이 지속된다. 수전증이 생긴다. 손이 발발 떨린다. 간단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입이 끝없이 말라 하루에도 몇 통씩 물을 마신다. 말을 가끔 더듬고 조리 있는 사고가 조금 힘들다. 입술이 말라 갈라지기 일수고 어깨와 종아리가 뭉쳐서 근육이 살 밖으로 터질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수면 유도제를 두세 알 한꺼번에 먹었다가 결국 부작용으로 다음날 회사를 가지 못했다. 나는 저혈압이라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을 땐 뇌를 안정시켜 잠을 유도케 하는 약을 받았는데,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은 심장을 통해 맥박을 진정시키는 약이었나 보다. 나는 몇 시간 동안 숨이 차 침대 위를 허우적거리다 고통 속에 1시간 단위로 잠을 깼고 새벽에 팀장님에게 "아파서 오늘은 회사를 못 갈 것 같습니다."란 문자를 보냈다.


결국 오랜만에 병원을 찾았다. 약 2년 전 공황 증상이 왔을 때 처음 찾은 병원이자, 제너럴 닥터 이후 처음으로 속내를 다 고백한 병원이다. 선생님은 종교 수장 마냥 나의 고해성사를 들어주시고, 토닥여 주신다. 아주아주 작은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모든 일을 알고 있는 그는 1시간 넘게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이번엔 <레고> 조립을 처방해 주었다.

"레고요?"

"네, 레고요. 건담도 좋아요. 원래 이런 거 좋아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네 맞아요."

"약도 다시 처방해 줄게요. 한동안 약도 다시 먹어야 할 것 같네요. 항우울증 약 조금, 항불안제 조금, 그리고 밤에 먹을 소량의 수면제를 처방해줄게요. 전에 부작용은 따로 없었죠? 수면제는 꼭 정량만 드세요. 그 이상은 먹지 말고 힘들면 전화하거나 병원으로 오세요. 이렇게 저랑 이야기하는 게 반이라면 약이 반이에요. 예전에 겪어 봐서 알죠? 다시 취미도 시작하고, 산책도 하고. 나쁜 생각에서 멀어지고 좋은 생각을 하려 노력할 필요는 없어요. 그 자체가 스트레스이니까. 그냥 잠시 모든 정신을 잠시 옮겨 봐요. 10분이고 1시간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건 루틴이라 나에겐 도움이 안 된다. 잔잔한 음악 역시 그러하다. 뜬금없지만 1시간 상담 끝에 내린 선생님의 처방이 기가 막혀 깔깔깔 웃으며 눈물을 흘린다.

"집 가는 길에 용산을 들려서 조립할 거 뭐라도 사가세요. 그리고 힘들면 언제든지 병원에 전화하고, 좀 자주 오세요. 운동도 조금 해보고요. 너무 격한 운동 말고."

"네. 여기 온 것만으로도 항상 마음이 편해져서... 오늘은 좀 잘 잘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한 달 후에 봐요."

상담실에서 나와 소파에 피식거리며 앉아있는 나에게 간호사 선생님이 묻는다.

"에구, 요즘 안 보여서 괜찮은가 보다 했는데 또 어디 안 좋아졌나 봐요. 오늘 맛있는 거 먹고, 재밌는 거 봐요!"

병원에 올 때마다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고, 먹을 것도 나눠 주시는 포근한 간호사 선생님의 조언에 나는 또다시 웃는다.


오랜만에 약을 먹고 깊이 잤다. 오랜만에 약을 먹으면 다음 날은 아직 약에 적응되지 않은 몸 때문에 조금 힘이 든다. 결국 회사 동료와 점심을 먹고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를 시켜놓고 나는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회사 동료는 환희 웃으며 "혜림님 요즘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불면증은 좀 괜찮아졌어요?"라고 진심 어린 질문을 하곤 초콜릿 하나를 건넨다. 이래저래 좋은 동료가 있어서 아직은 괜찮다. 다행이다.


약을 먹은 지 2주 즈음되자 다시 나의 잠 패턴이 평범한 형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다. 지옥 같던 수면 부족의 시간의 끝에 불빛이 조금 밝혀지는 것 같다. 물론 저 불빛은 언제든 다시 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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