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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Jul 01. 2018

불면과 불안의 밤 -3

수면제 부작용


오늘은 비가 많이 내렸다. 후드득후드득 소리를 내던 비는 토독 토독 깊은 밤에 어울리는 작은 소리가 됐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나는 음악을 듣는 것 외에도 빗소리가 나는 어플을 켜 일부러 인위적인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곤 했다. 그랬던 날들이 많았기에 오늘은 조금이라도 자연스럽게 잠을 잘 잘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을 품어본다. 

희망은 절망이 된다. 감은 눈 속에 잔인한 정신이 멀쩡히 흔들린다. 눈 앞에 빛을 지운 강제적 어둠 속에, 희뿌여한 눈꺼풀 아래 무색무취의 옅은 그림자로 이루어진 사람의 형상이 고립된 춤을 춘다. 억지로 실명된 눈, 말라가는 입술, 오직 혼자 해방된 귀에서는 삐익 삐익 작은 이명이 울린다. 조금씩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나의 정신을 다독이기라도 하겠다는 듯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잠에 들지 못한다. 오늘은 먹지 않아야지라고 다짐했던 수면제 반알을 '톡' 소리 나게 쪼개 물과 함께 삼키고 만다. 


신경정신과 선생님은 반알의, 최소량의 수면제는 며칠 연달아 복용해도 괜찮다고 했다. 잠을 자지 않는 게 더욱 건강에 나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용 시 유의할 것이 있다. 그가 수면제를 복용할 시 알려준 주의 사항은 아래와 같다. 

1. 절대 2알 이상 먹지 않을 것

2. 약을 먹고 바로 침대로 가서 누울 것 (핸드폰을 만지거나, 밖으로 나가거나, 무언가 '행위'를 하지 않을 것)

 - 약을 먹으면 가끔 잠들 기 전 본인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3. 약 복용 후 충분히 잠을 잘 것 (최소 6시간 이상 잠들 것) 

4. 감기약이나 다른 약(항히스타민 류)들과 섞어 복용하지 말 것 


최대한 1번과 2번은 지키려 노력했고, 4번은 괴로워 죽을 것 같을 때만 반알만 복용했다. 하지만 3번은 쉽지 않았다. 평소 잠을 잘 잘 때도 늦은 밤에 잠이 들었던 나였던지라, 평소와 비슷하게 잠을 청하다 1시간 이상 잠들지 못하고 약을 복용할 경우 4~5시간만 잠을 자고 출근하기가 일 수였기 때문이다. 약을 복용하고 얕게 잠이 들거나 오래 잠들지 못하면 나는 늘 악몽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조금 이상한 꿈들을 꿨으나 크게 기억이 나진 않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다음날 너무나도 피곤한 상태가 지속돼 점심을 거르고 잠을 잘 뿐이었다. 

그러나 며칠 전 나는 굉장히 괴상한 꿈을 꿨다. 


점심시간이 되기 조금 이른 시간, 나는 회사 수면실로 갔다. 전날 복용한 1알의 수면제 때문인지, 4시간밖에 잠들지 못해서인지 오전 내내 비몽사몽 한 기분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결국 주변의 권유로 회사 수면실로 향했고, 가끔 점심시간 때 잠을 청하는 4번째 2층 침대의 1층에 누웠다. 회사 수면실은 99프로 가까운 암막 상태였고, 무척이나 조용했다. 평소 밤에 어렵게 잠을 청하는 것과 달리 수면실에서 나는 무척이나 빠르게,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그 날 나는 점심시간에 약속이 있었고, 30분만 자고 일어나서 약속을 가야지 하고 시계를 맞춰두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는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을 깼고, 시계를 확인한 후 수면실을 나갔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오지 않아 계단을 이용했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 내려가도 건물의 계단은 끝이 나지 않았다. 당황한 나머지 이건 꿈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눈 앞에는 어두운 2층 침대의 천장이 보였다. 나는 깜짝 놀라 다시 핸드폰을 보았다. 알람을 맞춘 시간에서 약 1~2분이 지난 상태였다. 

"꿈이었나..." 

나는 기분 나쁜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다시 일어나 복도를 걸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복도가 끝나지 않았다. 복도에는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이번에도 꿈인 걸까?" 

나는 잠을 깨고자 노력했다. 이를 악물고, 볼을 꼬집고, 손을 누르고 힘을 주었다. 전혀 아프지가 않았다. 그리곤 나는 다시 침대의 천장을 바라보는 어둠 속으로 돌아왔다. 다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2분의 시간이 지나 있었다. 문자가 와 있었고, 점심 약속을 했던 회사 동료가 나를 찾는 내용이었다. 나는 지금 내려간다는 문자를 하고 다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 다시 침대 천장이 보였다. 이 으스스한 반복을 10여 차례나 하고서야 나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난 시간이었고 동료의 문자는 와 있었으나 내가 답한 내용은 없었다. 

수면제 부작용이었다.


나는 다급히 병원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틀 연속으로 수면제를 복용하고, 오늘은 4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오늘 회사에서 미친 듯이 잠이 와서 점심때 잠시 수면실 침대에 누웠는데 제가 계속 복도로 걸어나갔다 깨면 침대인 실제인지 꿈인지 모를 상황을 1~5분 간격으로 1시간을 겪었어요. 그냥 꿈인 건지, 부작용인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전화드렸어요."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듣곤 바로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면제의 부작용으로 악몽과 환각상태가 약하게 찾아오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곤 앞으로 약을 먹을 땐 꼭 반알 이상은 먹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최대한 자신과 약 없이 잠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고. 빠른 시일 내 병원에 다시 방문하라고 했다. 심한 부작용은 아니니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날 수면실의 기묘한 꿈을 나는 건축무한육면각체라 명명했다.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 중-


마치 이상의 시와 같이 꿈속의 꿈속의 꿈, 끝이 나지 않는 뫼비우스 같은 꿈. 혹은 영화 인셉션같은 그날의 기이한 기억.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계속해서 그날의 기억과 이상의 시를 교차하며 떠올렸다. 그 생각에 나는 또 잠을 쉬이 이루지 못했다. 어제의 불면과 오늘의 불면이 눅눅하게 스며든 이불, 어제도 분명 그리 좋은 꿈은 꾸지 못한 채 잠들었던 것을 증명하는듯한 옅게 남은 땀의 향. 땀에 섞여 묻어났을 나의 죽은 세포들을 온몸에 돌돌 말아 끌어안고 나는 오늘도 다시 잠을 청한다. 

방금 전에 끈 전등이 희미한 반딧불 같은 잔상을 남기고, 타버린 초같이 힘없이 요동치다 희뿌여히 서서히 사라진다. 내가 실제로 죽어버린 건지 알 수 없는 짙은 어둠 속에서 꿈뻑꿈뻑 나의 안구가 발광하고 있을 것이라 나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나의 침대를 그려본다. 오늘은 오늘은... 부디 아무런 꿈을 꾸지 않고 편히 잠들길. 

"잘 자."

나는 스스로에게 인사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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