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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Oct 04. 2021

나마스떼. 요가를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 이 정도 혼자 살았으면 조금 단단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업무 시간 중 5분 이상 쉬기 힘들 정도로 얼기설기 뒤엉킨 날들이 지나간다. 오늘은 점심 먹을 시간도 부족해 회의가 끝나자마자 컵라면 하나를 후루룩 급하게 마셨다. 재택근무를 한지 어느덧 2년이 다 돼간다. 안방에 침대와 책상이 함께 놓여 있는 형태라 어떤 날은 내 하루가 사각의 방 한 칸에서만 존재하는 기분이다. 특히 오늘은 더 그랬다. 옷을 갈아입으러 작은방에 갈 일도, 따뜻한 식사를 만들기 위해 주방을 갈 시간도 없었다. 나의 시야에는 오직 노트북 화면만이 존재하는 8시간이 흐른다. 


일이란 늘 비 오는 가을날의 낙엽처럼 우수수 쏟아진다. 업무가 끝나고, 축축이 젖어 바닥에 달라붙은 낙엽처럼 내 몸도 방 한 켠에 자리 잡은 리클라이너에 달라붙어 축 늘어진다. 그 순간 갑자기 입안에 단맛이 돈다. 침이 살짝 고였다. 불현듯 어제 사온 천도복숭아가 생각났다. 오늘의 첫번째 냉장고 방문.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 속 발그레한 복숭아들이 옹기종기 쌓여있다. 여름은 끝나가지만 아직 여름의 빛이 담겨있는 달콤한 복숭아. 복숭아 한입을 베어 물자 상큼하고 끈적한 여름의 맛과 습도가 몸의 생기를 돋운다. 


“운동 가자.”

운동. 케틀벨, 헬스, 필라테스. 많은 걸 ‘하긴 했는데’ 재미를 느껴본 적은 없다. 러닝을 하다 보면 혼자라는 지루함과 몇 년 동안 연이어 깁스를 했던 발목이 아파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뒀다. 그나마 빨리 걷기(라고 쓰고 산책이라고 읽는다.)만이 내가 가장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근육을 사용하는 행위다. 


며칠 전 문득 집 근처를 산책하다 발견한 요가원에 들어가 체험 수련을 받았다. 

“나마스떼”

어색하게 타국의 언어로 인사를 나눈다. 몇 년 전 아빠가 작은 식당을 준비할 때 식당 이름 후보 중 하나였던 이름이다. 카레집도 아닌데!!! 나는 핸드폰 스피커에 역정을 내며 그 이름을 반대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아빠는 이 어색한 타국의 언어를 발음하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어찌 된 일인지 요가원에 수련 중인 모두가 프로 같았다. 그 누구 하나 흔들리지 않고, 균형을 딱 맞춰 동작을 했으며 보기만 해도 아찔한 머리 서기(물구나무 서기 같은 자세), 온몸을 뒤집어 만드는 테이블 같은 자세를 편하게 했다. 앗, 이걸 어쩌지. 흔들리는 내 몸뚱이가 부끄럽고 당황스러우면서도 이 미묘한 동작을 어설프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떠올리니 웃음이 났다. 1시간 반의 수련이 끝나고 선생님은 나를 불러 “오늘 처음 오셨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쭈뼛쭈뼛 “잘 못하죠?”라고 대답했다. 

“괜찮아요. 여기 분들도 처음엔 다 못하셨어요. 일단 3개월 만이라도 꾸준히 해봐요.” 


이제 겨우 2주 차, 게으르고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어느덧 8번의 수업을 갔다. 요가가 몸에 딱 맞는지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스트레스 해소법을 모르고 과자 부스러기 마냥 자잘한 고민과 걱정을 까슬까슬 안고 사는 내가 ‘힘들다’, ‘시원하다’ 등의 단순한 감정으로만 내 머리와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것은 확실하다. 


작심 2주는 초심자의 행운처럼 ‘억지스러움’ 없이 부드럽게 지나갔다. 이제 목표는 작심 한 달. 분명 몸과 마음, 머리가 순서를 앞다투어 나의 탈의와 착복, 현관문 열기를 막아설 것이다. 늘어난 업무가 나의 손가락과 팔을 옭아매 노트북 화면에서 멀어지지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울에서 이 정도 혼자 살았으면 조금 단단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조금 강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끈적하게 감겨오는 나태와 피로, 끊임없이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일’로부터 잠시 자유로워질 때도 되지 않았나. 


나그참파 인센스 하나를 피워본다. 향이 강한 향신료나 고기를 구울 때 나는 그을린 연기 냄새를몰아내려 인센스 숍에서 한 움큼 집어온 5종류의 향기들. 향기들은 오랜만에 잡동사니로 가득한 서랍 밖으로 나왔다. 나무 서랍 가득 짙게 베인 이국적인 향은 바깥공기를 만나자마자 쏜살같이 집안 전체로 번져나간다. 

“요가원에서 나는 냄새다.” 

요가원에서는 항상 인도 느낌의 향을 피워 두었다. 겨우 2주 다녀왔다고 이 냄새가 요리의 흔적을 몰아내는 퇴치제가 아닌 요가라는 행위의 향기로 느껴지긴 하는구나. 본능이 적응하는 속도만큼 내 몸도 어서 몸을 늘리고, 당기는 이 행위에 익숙해지길 바란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나마스떼.” 

그러게요 아빠. 이 어색한 타국의 인사는 발음할 때 참으로 기분 좋은 말이 아닐 수 없네요. ‘떼’라는 된소리마저 혀끝과 앞니 사이를 데구루루 기쁘게 구르고 생기있게 발음되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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