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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Apr 11. 2021

이상한 전화

파킨슨씨 안녕하세요 1

그 날은 똑같은 날이었다. 또 늦잠을 자서 회사에 조금 늦었고, 하지만 아무도 내가 늦은 걸 몰랐고, 성의 없는 인사 몇 마디와 함께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둥당거리는 그런 날. 하지만 그 날이 1년이 지난 지금에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사무실을 가득 채웠던 꿉꿉한 냄새와, 위층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던 공사장 드릴 소리가 지금이라도 당장 들릴 것처럼 가까운 건, 점심시간 때쯤 걸려온 아빠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왜?



항상 그래 왔듯, 아빠의 전화를 받자마자 내 입에선 여보세요 대신 왜라는 샐쭉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말에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이상했다. 그도 그럴게 아빠는 특별한 용건 없이 내게 전화를 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여보세요 대신 왜 가 아빠의 전화를 받는 자동응답 멘트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친구 아들이 서울에서 결혼을 하니 대신 결혼식에 가라거나 차를 팔고 싶은데 시세를 좀 찾아보라거나 친구들에게 자랑을 해야 하니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내 위치를 좀 말해보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열 글자가 채 안 되는 말에 나는 자동응답기 모드였던 정신을 수동으로 돌려 그제야 제대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밥은 먹었는가아? 어딘가?”

“아빠 광주왔시야”     


기계음처럼 끝이 뚝뚝 끊기던 말투 대신 끝이 길게 늘어지는 전라도 사투리로 아빠에게 묻자 그제야 아빠도 특유의 발음을 뭉개버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광주는 왜?”

“응 병원”     


병원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언젠가부터 엄마 아빠의 입에서 병원이라는 두 글자가 나올 일이 점점 많아졌다. 마음 한 편으론 엄마 아빠가 걱정이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론 내가 걱정이 돼서 병원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해도 돌을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해졌다.     


‘얼마 전 허리 수술을 한 게 문제인 걸까, 아니면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간이 안 좋나? 어쩐지 저번에 봤을 때 눈 황달이 너무 심하더니, 손도 너무 떨고. 엄마 말 들으니까 화장실에서 몇 번 넘어졌다더니. 그것도 아니면 담배 때문인가? 그러게 누가 나이 육십 너머 담배를 하루에 한 갑씩 태워. 에이 아니야 건강검진이겠지. 엄마가 또 하라고 떠밀어서 보냈을 거야.’     


아빠가 왜 병원에 갔을지 머릿속으로 더듬더듬 답을 찾고 있었는데 그때 전화기 너머로 간호사가 아빠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김기석 님 김기석 님”     


그러자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양인지 끙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빠 가야겠다”     


아빠 가야겠다. 그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르고 나는 걱정은 접어놓고 평소보다 조금 길었던 통화가 끝나는 걸 즐기며 항상 하는 거짓말을 또 늘어놨다.     


“이따 전화할게”     


아빠의 이상한 전화가 끊어지고 나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것처럼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들었지만 모니터에 뜬 프로젝트 편집 파일을 보자마자 그 께름칙함은 금세  사라졌다. 괜한 걱정 정도로 이름 붙이면, 많은 걸 금세 잊을 수 있다. 그 전화가 다시 떠오른 건  통화 후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엄마한테 온 메시지 때문이었다.     


-딸 바빠?     


그때 나는 일이 나도 큰일이 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물론 엄마는 아빠와 달리 내게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이지만, 엄마도 아빠 못지않은 용건 주의자였고, MBTI에서 F(감정형)이 꼴랑 1%를 차지하는 T(이성형) 인간이라 바쁘냐고 묻는 엄마의 작은 말 뒤엔 거대한 이야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 엄마, 아빠 병원 갔어?     


그런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사무실을 나와 복도에서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는 중간중간 전화가 끊기는 것처럼 말을 시작했다.     


“엄마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네 아빠가 뭐라디...... 별말 안 했니..... 병원 갔다고 했고..... 왜 전화했냐니까..... 그래그래.... 어디라고? 광주. 그래서.. 맞나 보다.. 어.... 그래... 알았다”     


마치 목격자의 진술을 모으는 형사처럼 엄마는 나와 아빠와의 대화를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알아내려는 듯, 꼬치꼬치 캐물었고, 내가 답할 때마다 탄성인지 탄식인지 알 수 없는 숨소리와 큰 한숨 소리를 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 속에서 나는 한 단어의 뜻만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끝이 짧은 ‘알았다’가 그랬다. 이제 이 전화의 용건이 끝났으니 전화를 끊겠다는 엄마 특유의 사인이었다.     


“엄마!”     


나는 셔터를 내리는 가게 주인을 간절히 부르듯 엄마를 불렀다. 엄마만 끝났어? 나는 아직 시작도 못했어!     


“무슨 일인데 그래?”     


그제야 엄마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조용해졌다. 수화기 너머로는 엄마의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아빠, 오늘 파킨슨 검사받으러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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