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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Apr 11. 2021

내 이름은 파킨슨입니다

안녕하세요 파킨슨씨 2


처음 아빠의 병을 알아차린 건 엄마였다. 파킨슨병의 대표적인 증상은 묘하게 구부러진 자세인데, 어릴 적 삼선 슬리퍼를 찍찍 끄는 것처럼 발을 끌며 걷게 되고 몸이 지팡이처럼 구부러지며 목을 앞으로 빼고 등이 휘게 된다. 엄마는 아빠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파킨슨병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고 했다.

           

자네 내일 건강검진 가는 김에 파킨슨 검사도 받아보소.         

 

물론 의심일 뿐이었다. 아빠는 작년 낙상사고를 당해 허리 수술을 한 번 한 상태였고, 오랜 시간 그 나이 또래가 으레 그렇듯 과음으로 손이 많이 떨릴 뿐인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엄마는 그 의심이 과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품었다고 했다. 아빠도 엄마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여느 아빠들이 그렇듯, 스스로는 감기 한 번 제 때 걸린 적이 없고, 몸살 한 번 앓은 적이 없는데 파킨슨이라니,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다고 아빠는 생각했다.


허리가 좀 굽긴 했지만, 역시 지난 사고와 수술 때문이었고, 손이 조금 떨리긴 했지만 요즘 세상에 손을 떠는 게 그렇게 큰일은 아닐 거라고, 주변 친구들을 떠올려보면 다들 자기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아빠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또 쓰잘데 없는 걱정 하네 또


 괜한 말을 한다고 버럭 화를 내고는 속으로 아내가 틀렸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겠다는 마음이 섰다. 그래서 병원에서도 당당하게 파킨슨 검사를 요청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당당함도 잠시, 뇌영상을 찍기 위해 MRI 기계에 누웠을 때 조금 긴장이 됐는지 숨이 가빠오는 걸 느꼈다. 


'에휴 괜한 얘길 해서 정말'


아빠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검사는 여러 가지였다. MRI, PET, 자율신경계 검사 등등. 이 검사실과 저 검사실을 한참을 돌아다니다 마침내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아빠는 내게 전화를 걸어 보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때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 마음을 짐작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빠가 기다리던 검증의 시간이 왔을 때, 의사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아빠를 3초간 쳐다봤다. 그리곤 입을 뗐다.

          

음. 환자분, 그런데 어떻게 파킨슨 검사를 알고 오셨어요?
보통 파킨슨은 먼저 검사를 요청해서 진단받는 병이 아니라서..

아빠는 바로 결과를 말하지 않는 의사를 답답한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아내가 간호사인데 파킨슨인 거 같다고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더라고요
걱정만 많아가지고
  

그러자 의사는 조금 안도한 표정을 짓는 듯 눈가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아내분 말씀 잘 들으셨어요.
보통 잘 몰라서 병원에 다른 병 때문에 와서 진단받는 경우가 많거든요
검사해보니까 파킨슨 초기 증상으로 보이네요


아빠가 해준 그 날의 얘기는 여기가 끝이었다. 그 날 분명 혼자 운전해 집으로 돌아왔을 텐데, 아빠는 어떻게 집에 왔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에게 전화를 건 것까지도 아빠는 내가 말하기 전까지 까맣게 까먹고 있었다.


아빠에게서 그때 의사의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왜 의사가 엄마가 간호사라는 말을 듣고 조금 안심했을까,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게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의 몸에 감금되는 병으로 불리는 파킨슨병은 오랜 시간 완치될 수 없는 불치병이니까. 의학적으로 문외한인 사람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또 절망하고 포기하고, 신약 실험에 참여하고 또 실패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집은 달랐다. 엄마는 아빠의 미래를 희망도 절망도 없는 사실 그 상태로 내다보고 있었고, 그런 엄마의 진두지휘 아래 우리는 아빠에게 가장 필요한 방식으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어느 날 불현듯,

파킨슨 씨가 우리 집의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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