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하길 인생은 소비자의 삶과 생산자의 삶으로 나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삶은 크게 차이가 난다고 했다. 나는 직장인으로서 생산자이기도 했지만 생계유지에 급급한 생산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부부 중 거의 한 사람의 월급이 통째로 은행에 반납되는 상황에서, 나의 근로소득이 없다면 우리 가족은 한 달을 살아낼 수 없는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생계유지를 위한 근로소득의 생산 외에 나는 모든 면에서 소비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생필품을 구매하는 것에서부터 유튜브로 개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 웹툰을 보는 것조차 나는 다른 사람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콘텐츠)를 소비하는 입장이었다.
이왕 소비하는 것 좀 더 유익한 콘텐츠를 소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산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부자부터 시작해 초보자의 선생들까지. 그들의 조언을 따라 뭐라도 남기고 싶었다. 비록 당장은 돈이 되지 않을지라도 추후에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 그 금액과 상관없이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꾸준히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내가 생산해 내는 가치에 대한 의미부여가 필요했다.
그러나 내겐 특별한 경험도, 아이디어도 없었다. 그저 매주 혹은 격주로 아이들과 어딘가에 다녀왔을 뿐이고, 남는 건 사진이라고 생각해서 많이 찍어 둔 사진들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소재로 가족과 함께 한 시간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여러 장의 사진들 속에서 활용할 만한 사진을 추려내고, 흐름에 맞게 배치하고, 글을 써서 게시물 한 개를 발행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훗날 이것은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만큼은 가치 있는 기록이 될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마침내 나는 ‘아이와 갈만한 곳’을 검색하여 블로그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인 동시에, 다녀온 곳에 대해 나의 경험을 토대로 글을 작성하는 생산자가 되었다. 블로그 이웃과 방문자 수는 여전히 한 두 자리를 맴돌았지만, 이것은 내 삶에 아주 커다란 변화였다. 생산자의 시각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예전에는 대충 보고 지나쳤을 정보들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방금 지나왔던 다리 이름을 한 번 더 기억하려고 되뇌고, 인물사진 위주로만 찍었던 카메라 프레임에 주변 경관들을 담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글을 쓸 소재를 찾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 위주의 일기를 썼지만, 어느새 내 글을 보게 될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어떤 정보가 필요할지, 내 글에서 어떤 것을 제공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사소한 것도 누군가에게는 정보가 될 수 있었다. 나의 작은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꿀팁'이 될 수 있었다.
주차장과 거리가 멀어서 고생했던 점, 크록스 신발을 신고 갔으면 좋았을 뻔 한 점, 물품보관함이 있었지만 동전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었던 점 등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해 불편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내가 쓰는 것은 대단한 지식과 정보가 아니었다. 멋진 깨달음도 아니었다. 심지어 내가 다녀온 곳들도 대단한 곳이 아니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었고, 누구나 갈만한 곳이었다.
그러나 소비자로서 SNS를 할 때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자랑하기 위해' 업로드하는 사진과 장소는 한정되어 있었지만, 그곳에 가거나 이것을 먹을 수도 있는 타인을 염두에 두니 모든 것이 리뷰(다시 보기)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어느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블로거’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