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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18. 2024

하루살이와 같은 한달살이


지인 가족이 ‘제주도 한 달 살이’를 한다고 했다. 계획한 총비용을 물어봤더니 거의 우리 부부의 한 달 월급을 합친 금액이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라고 해도 두 명이서 벌어들이는 근로소득이 옆집 외벌이 가정의 소득보다 훨씬 적었다. 역시 사업하는 사람은 다르구나, 이해하려 해 봤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누가 맞벌이 가정은 여유롭다고 했나.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딸아이와 친구, 그 친구의 엄마와 함께 주말에 키즈카페에서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겨우 정도가 부담되는 수준이라? 아이에게도, 주 5일 내내 회사에 다니고 있는 나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한 달 내내 회사에 출근하여 일하지만, 그 대가로 받은 월급은 고스란히 대출빚을 갚기 위해 은행과 카드사로 흘러갔다. 혹시 (공기청정기 실적 제휴카드인) 신용카드를 사용해서 씀씀이가 헤픈 걸까, 3개월치 카드내역을 뽑아 기억나지 않은 상호명까지 더듬어가며 소비의 출처를 추적했다.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비중은 역시나 식비였다. 저소득층일수록 엥겔지수가 높다는 기사의 내용이 떠올랐다.


대부분 그저 장을 보고 아이들 먹을 간식을 사는 데 사용한 비용이었다. 이따금씩 배달과 외식비가 눈에 띄었지만 횟수로 봤을 때 한 달에 다섯 번도 되지 않았다. 금액적으로도 외식비용은 일정 금액을 넘기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배달과 외식 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정해진 금액 내에서 가장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가성비 있는 메뉴를 찾다 보니 늘 같거나 비슷한 것만 먹었다.


유기농은 하나도 없고, 가장 저렴하고 적당한 것으로, 생필품과 심지어 화장품까지도 취향보단 최저가 중 쓸 만한 것으로 고르는 편이었다. 내게 있어 취향을 고집하는 건 사치였다. 그래서 뭐든 '정착템'이 없고 그때그때 저렴한 것으로 갈아타는 유목민이었다. 여기서 더 아끼려면 아낄 수는 있었겠지만 나의 발품을 팔아야 했다. 내겐 그만한 에너지가 없었다.


지방에 사는 친구는 내가 서울에 살아서 부럽다고 했다. 친구 말대로 서울에는 지방에 없는 온갖 좋은 것들이 다 있었다. 그런데 누릴 수 없는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이럴 바엔 지방으로 내려갈까,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했다. 상대적 박탈감과 동시에 삶의 질이 너무 낮다고 느꼈다.


그야말로 남는 게 없는, 하루살이와도 같은 한달살이 인생이었다. 능력도 없으면서 애는 왜 (둘이나) 낳았냐는 MZ세대의 비난이 마음에 비수로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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