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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l 05. 2024

서울의 달


지방 소도시에서 자란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낯설었다. 내가 자란 도시는 슬로시티라고 불릴 만큼 풍경이 느린 곳이었. 그럴듯하게 포장했으나 성장이 멈춘 도시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살던 동네는 낙후한 흔적이 역력했다. 티브이에서 보는 서울에도 후미진 곳은 있었지만 우리 동네와는 달라 보였다. 낮에는 높게 솟은 빌딩들과 부조화를 이루면서도 야경은 아름다운 곳, 한강의 기적을 이룬 사람들의 흔적으로 어둠 속에서도 끊임없이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는 곳, 서울의 달이 궁금했다.


서울에 취직하면 어떨까. 지방보다는 일자리가 많으니 어디라도 취직은 되겠지만 거처 또한 내가 마련해야 했다. 일찍이 서울에 취직한 친구가 고시원에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서울살이는 녹록지 않구나 생각했다. 사회초년생의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불안정한 생활을 감당할 수 있으려면 직장이라도 그럴듯해야 했다. 그런 튼튼한 구실이 있어야만 서울이라는 곳에 발붙일 엄두가 났다. 두 가지 모두 불안정한 상태로는 서울에서 모험을 할 만한 열정과 패기가 내겐 없었다.


소통이 어려운 부모님이 계신 집,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 쓰레기가 넘쳐나는 이 집보단 한 칸짜리 고시원이 나을 것도 같았다. 적어도 내 의지대로 물건을 버리고 깔끔하게 살 수는 있을 터였다. 지저분하고 자질구레한 현실 속에서 무기력했던 나는 이미 현실을 피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도피성으로 서울행을 선택하기엔 진짜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 나는 나라는 사람을 지탱할 수 있을까? 나 혼자만의 힘으로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의 살던 고향은 어둡고 축축한 우물 안이면서 동시에 은신처이기도 했다. 내겐 그곳을 벗어날 의지가 없었다.


그래도 한 번씩 여행 삼아 서울로 놀러 가기는 했다. 특히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가로지를 땐 이곳이 서울이구나! 하며 감격했다. 한편으론 분명 지하철인데 지상으로 지날 수도 있구나, 옛날에 지어진 선로를 따라 달릴 뿐인데도 그저 신기했다. 내 앞에 주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빛을 볼 수 있을까. 터널을 통과하듯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아오듯이.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생존방식은 각기 다를 것이다. 또 어떤 구간은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거나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벗어날 수 있다. 그때 나의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내 상황과 운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늪에 몸을 누이고 늪과 닿는 접촉 면적을 최대한 넓히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기어 나오는 것이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서울에 취직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날, 야근하는 친구가 안쓰러우면서도 부러웠다. 친구는 나와 달리 든든하고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해 주는 부모님이 계셨고, 그 곁을 떠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 안정감 덕분이었을까, 친구는 더 큰 꿈을 꾸며 날아올랐다. 친구에게는 해외에서도 서울에서도 자기를 지탱하고 삶을 지속하이 있었다. 나는 늘 친구의 삶을 응원했다. 나의 삶에도 응원이 필요했지만 무엇을 응원해야 하는지조차 막막했다.


빌딩숲 사이로 펼쳐진 야경이 있었다. 그 야경은 내가 사는 동네와는 너무도 달라 생경했다. 커다란 빌딩들 위로 달이 보였다. 그날따라 달이 더욱 반가웠다. 같은 시각, 나의 고향 밤하늘에도 떠있을 달이었다. 나는 달을 보고 하나님을 떠올렸다. 무소부재의 하나님.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데 나는 어디에도 없는 느낌이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지, 내가 돌아갈 곳이 진정 내 고향이 맞는지 묻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아예 도피하지도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차라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내게도 말씀하시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본토인 고향도, 친척도, 아비집에도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백한 구실만 있다면 오히려 벗어나고 싶은, 나의 냄새나고 연약한 토양이었다.


내가 목격한 서울은 내가 사는 우물 속에 비친 바깥 풍경에 불과했다. 달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이곳에도 제 자리가 있을까요?'

 

내 자리가 없더라도 내 자리를 만들어갈 힘이 내 안에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늘 불안정했던 나는 어디서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좋은 토양과 물과 빛이 있어야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다지만 잡초처럼 강인하고 질긴 식물도 있는데, 나는 잡초만도 못한 인생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나의 뿌리로도 뻗어나갈 수 있단 사실을 믿지 못해서였을까. 나의 뿌리가 되는 부모님과 주변 친척, 성장 환경은 좋지 못했다. 돈을 떠나서 습득할 수 있는 좋은 아비투스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나의 뿌리에는 믿을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지만, 거슬러 올라가 결국 나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이셨다. 나의 진짜 뿌리가 되신 하나님께 나는 또 한 번의 막막함을 호소했다. 어디서든 나를 비출 수 있는 달빛처럼, 하나님은 어디서든 어디로든 나를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이셨다.




그 이후로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접붙임 사건'이었다. 언젠가는 하게 되길 바랐으나,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아 당시에는 바라지 않은 결혼이었다. (관련 글: 두 번 만나고 결혼) 당시 나의 남편은 서울에 살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결혼으로 인해 서울에 살게 되었다. 남편의 고향은 나의 고향과 같았고, 남편의 회사는 나의 고향에도 지사를 두고 있었다. 나의 고향 근처에 살고 있던 시댁 식구들과 가까이서 살게 될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우리는 서울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서울 하늘에서 별은 볼 수 없지만, 달을 볼 때마다 가끔 그날 밤이 생각난다. 잠시 머물다 갈 도시라고 생각했던 서울이 제2의 고향이 되어가고 있다. 전셋집과 반지하방에서 혼수 하나 제대로 해간 것 없이 남편이 쓰던 물건 그대로, 시어머님께 물려받은 살림살이로 신혼생활을 했다. 신혼생활은 행복했다. 첫째 아이의 탄생으로 우리의 행복은 견고해지는 것 같았다. 둘째 아이의 탄생과 함께 육아가 버거워졌다. 받아내기만 하고 채워지지 않는 시간 동안 새롭게 발견하는 나의 모습이 있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알아가고 이해하는 시간이 있었다. 남편과 사는 동안 겉으로 보였던 나의 긍정이 부정으로 까발려지기도 했으나, 것은 은혜였다. 뿌리 깊었던 부정이 남편으로 인해 긍정으로 변화되는 지점도 있었다.  또한 은혜였다.


왜 하필 서울일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사실 나의 고향과 떨어진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을 것이다. 차마 먼저 떠나오진 못했지만, 나의 부모님과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나는 숨통이 트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다.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내게 결핍되었던 수많은 경험들이 채워지고 있다. 외식 한번 한 적이 없었던,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던, 지오디의 <어머님께>라는 노래가사가 낯설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서울에서 대출빚을 갚느라 근근이 살아가고는 있지만, 나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맛있는 음식과 좋은 경험들을 누리고 있다. 서울은 어느 도시보다도 먹거리와 놀거리가 가득한 곳이다. 이것들을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나의 유년시절에 누릴 수 없었던 것들을 아이들에게 글로써 베풀 수 있어서 감사하다.


서울에 정착해서 살고는 있지만 이후에는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나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날 때는 미련 없이 훌훌 털고 올 수 있었지만(여전히 고향에서 쓰레기와 함께 살고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는 하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을 떠나라고 한다면 마음이 무거울 것 같다. 아브라함은 후자에 가까운 상황에서 떠났을 것이다.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그것이다. 하나님은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신다. 달은 어디서나 나를 따라온다. 어디서나 나를 비춘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 마지막 문장은 고수리 작가의 에세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제목을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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