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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Oct 24. 2021

구야

슈퍼마켓 단골손님

  2019. 3. 6.


  내가 머무는 자취방 근처에는 GS25와 규모가 작은 슈퍼마켓 하나가 있다. 그 외에는 각종 원룸과 고시원이 틈 없이 자리하고 있는데, 나는 저녁에 종종 아이스크림을 사러 슈퍼마켓에 들리곤 했다. 대중적인 편의점과 마트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작은 슈퍼마켓에서 신문을 들고 조는 아저씨가 파는 메로나가 조금 더 값이 쌌기 때문이다. 내가 그 슈퍼마켓을 애용했던 건 메로나 값이 싼 것도 있었고 주인아저씨가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것도 있었지만, 저녁마다 슈퍼 앞을 맴도는 고양이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갈색 털이 부드러운 아이인데, 성격이 온순하고 좀처럼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다. 아마도 저녁마다 슈퍼마켓 아저씨가 가게 앞에 둔 접시에다 간식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메로나를 사러 슈퍼에 간 나는 다시 고양이를 마주했다. 자주 보는 친구라 이전에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었다. 이름은 구야. 온 세상이라는 의미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구야를 처음 보았을 땐 겨울이었다. 그래. 내가 침대맡에 무릎을 꿇고 등 돌리고 누워서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 울면서 나 좀 봐달라고 빌기 전이었다. 나는 아래로 끝없이 천착해가는 사랑과 잘 풀리지 않는 학회 활동으로 인해 표정이 어두울 대로 어두웠다. 과실에서 저녁 내내 소설을 쓰고 수정하고 다시 쓰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배 한 갑을 비웠다. 말보로 골드 한 갑을 사려고 슈퍼마켓에 들린 나는 주인아저씨에게 조금만 있다가 고양이 한 마리 보고 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무슨 고양이요?


  "그 여기 매일같이 오는 단골손님 하나 있어."


  나는 마음이 혼란스러운 상태였기 때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고 슈퍼를 나왔다. 그러곤 한쪽 귀퉁이에 서서 흡연을 했다. 미리 복용해두었던 항우울제 때문에 속이 더부룩했고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담배를 다 피워갈 때쯤 구석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구야는 내 다리에 몸을 부비면서 한참 동안 내 옆에 있었다. 솔직히 귀여웠다. 구야가 사람이었다면 말수가 적고 신중하며 정이 많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일 것만 같았다. 나는 종종 구야의 사진을 찍고, 때로는 영상으로 남기기도 하면서 구야를 사랑해갔다. 내 핸드폰엔 매일 저녁만 되면 꾸준히 올라오는 고양이 브이로그가 있다. 내가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구야를 보고 있으면 구야는 앉아 있다가, 몇 번 뒹굴었다가, 내 주위로 와서 앉는다. 바닥을 사뿐히 내려 밟는 작은 발. 콩처럼 까만 눈. 내가 몹시 슬픈 날이면 그 눈을 보면서 구야 사랑해 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계산 없이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는 추운 밤을 덥혀주었다. 이불 안에서 반복해서 재생해보는 구야 브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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