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의 대홍수와 함께 하는 피난 여행기
잠자리가 제법 익숙해졌는지 이제야 푹 자는가 싶었는데 쩌렁쩌렁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불이라도 났나?” 비몽사몽 간에 재빨리 옷을 챙겨 입고 방문을 열었다. 대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태국어, 영어, 중국어로 계속해서 방송이 나오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방인의 설움이 이런 것인지. 그리고 오늘따라 왜 영어도 한 마디도 안 들리는지. 생각보다 엄청나게 공포스러웠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을 못 알아들어 무슨 일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긴급상황이라니.
1분에 한 번씩 현관문을 열어봐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이미 다 밖으로 대피한 걸까. 그렇다기엔 베란다로 내려다본 콘도 앞 공터도 평소와 다를 바 없다. 답답해서 로비로 내려가려던 차에 호스트에게 연락이 왔다. 법무부에서 홍수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이틀간 환불해 줄 테니 잠시 대피했다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홍수라니? 물론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비가 오긴 했다. 스콜처럼 쏟아붓고 그치기를 반복해 열대성 스콜이겠거니 했는데 그렇다고 홍수라니, 대피라니?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홍수는 치앙마이보다 북부에 위치한 삥강 상류지역에 호우가 며칠 동안 이어져 댐의 수문을 열어 대규모로 강물을 방류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매일 비가 내리다 보니 삥강의 수위가 높아져 범람함에 따라 주변 지역이 모두 침수되는 100년 만의 대규모 홍수라고 했다. 여행객인 나로서도 난감하고 무서운 상황이었지만 이곳에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의 피해는 엄청나게 컸을 것이다. 오픈 카톡방에서도 치앙마이에 거주하는 한인들과 여행객들이 각자의 피해상황을 공유하느라 알림이 끊이지 않고 울렸다. 지난 편에 썼듯이 삥강을 따라 고급 리조트들과 글로벌 체인 호텔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모두 대피해야 하는 긴급 상황이었다.
갑작스레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이 콘도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치앙마이행을 결정한 것이 컸던 만큼 이곳에서 고작 3일을 지냈을 뿐인데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지난 이틀 간의 행복한 시간이 더욱 꿈같이 느껴졌다. 집주인도 처음에는 하루이틀이면 될 것 같다고 하더니 계속해서 삥강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으며 대피하라는 법무부의 경고가 잇따르자 아예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다. 내가 묵는 방의 집주인은 아주 양심적이고 나이스한 편이었다. 홍수 소식을 일찍 알려주기도 했거니와 본인의 손해를 감수하고도 2주나 남은 나의 예약을 캔슬하기를 권유했다. 나와 같은 콘도에 묵는 사람들 중에는 집주인이 아예 홍수소식을 알리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하루이틀 있으면 나아질 거라고 이야기해 대피가 늦어진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다행히 호텔에서 준비한 트럭을 타고 대피했지만 나보다 조금 더 버티던 사람들은 결국 캐리어도 버리고, 구명보트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조금 고민했다. 하루 이틀 버틸만한 식량과 물은 충분했다. 이 난리통에 새로운 숙소를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 고층에 묵고 있기 때문에 내 방까지는 침수가 되지 않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오늘은 엄마가 이곳으로 도착하는 날이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둘이 여행하자며 내가 엄마를 이곳으로 불렀다. 이 콘도에는 수영장도 있고 사우나도 있고 풍경도 멋져서 엄마가 오면 너무 좋아할 거라고 큰소리도 뻥뻥 쳐놨다. 나야 아직도 여행할 기간이 3주나 남았으니 하루이틀 이곳에 고립되어 있어도 상관없지만 단 3박 4일 머무는 엄마가 이 물난리를 겪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이 결정은 엄마가 나를 살린 결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중엔 이 콘도가 있는 지역은 단전과 단수가 이어져 엘리베이터도 운행하지 않았고 씻지도 못했다. 주변에 하나 있는 편의점은 물건이 동났고 주변 식당들까지 모두 물에 잠겨 ‘고급 콘도’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 철저히 고립되어 남은 사람들은 구조를 기다려야 했다. 물이 빨리 빠지지 않자 어떤 지역은 코끼리가 수재민들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난임 치료가 길어짐에 따라 불어난 무기력감과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택한 도피성 여행이긴 했지만 피난이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 자금? 백 년 만의 큰 홍수가 왜 내가 치앙마이에 있는데 일어났지? 그것도 왜 엄마가 오는 날 발생했지?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계속해서 울리는 카톡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각자 호텔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기도 하고 어디로 떠나야 할지를 공유하기도 했다. 올드타운과 님만해민 지역은 침수가 거의 없다고 했다. 올드타운 지역의 호텔 리스트를 공유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안내방송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을 때에 비하면 의지할 곳이 있어 든든했다. 그 리스트 중에 하나를 택해 얼른 2박을 예약했다. 그래도 엄마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호스텔이나 오래된 호텔은 잡을 수 없었다. 최대한 깨끗하면서도 수영장도 있고, 위치도 나쁘지 않으며 신축인 곳을 찾았다.
예약을 마치고 나니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그렇지만 콘도에서 차를 보내주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곳에서 오래 머물 거라고 생각하고 풀어헤쳐 둔 짐들을 모두 다시 싸야 한다. 어젯밤 세탁해 널어 둔 빨래들이 마르지도 않았지만 다시 캐리어 속으로 쑤셔 넣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냉장고에 가득 채워주고 간 식재료들 중 과일과 요거트처럼 간단한 것들은 챙기고 30개 정도 되는 생수병과 음료수, 생선과 채소, 아이스크림은 복도에 내놓은 뒤 한인 카톡방에 공유해 이곳에 머물기를 선택한 분들께 나눔 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며칠 후에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슬리퍼는 두고 왔다. 미련을 여기저기 남겨둔 채 호텔에서 제공해 준 차에 탑승해 삥강 건너로 넘어왔다.
거짓말처럼 올드타운 쪽은 내가 있던 창클란 지역과는 전혀 다른 도시인 것처럼 보송했다. 관광객들도 여전히 붐비고, 아무도 이 네모박스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수재를 입어도 무관심했던 나였다. ‘서울공화국’이라고 비난받을 정도로 서울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몇 날 며칠 연이어 특집방송을 편성하면서, 지역에서 물난리가 나면 한 줄 속보 정도로 보도하고 마는 언론들도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천 년 전 사람들의 지혜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 치앙마이는 옛 란나왕국의 수도이자 그중에서도 올드타운은 왕궁이 있던 곳이었다. 이곳을 둘러싼 해자가 왜 존재하는지 궁금했는데 이번 수해 상황에서 해자의 역할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해자’는 성벽 주변에 인공으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자연 하천을 이용하여 적의 접근을 막는 성곽시설을 말한다. 이러한 해자는 방어목적 이외에도 침수나 지하수위를 조절하는 역할도 있었다. 삥강에서 범람한 물들은 모두 해자 고랑으로 흘러들어 갔고 해자의 물이 넘칠 정도는 아니어서 올드타운은 안전하게 보호되었던 것이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자를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한강 작가의 질문에 대해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답을 하자면 YES이다. 아주 오래전 조상들의 지혜가 현대의 사람들을 보호해주기도 하는 것을 나는 목격했다.
호텔에 짐을 내려두니 어느새 어두워졌다. 하루가 이렇게 흘러가다니.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텔 근처의 노상 식당에서 팟타이를 하나 시켜 먹었다. 검색 없이 그냥 근처 식당에 와서 먹었는데도 참 맛있었다. 무사히 거처도 옮기고 배도 부르지만 긴장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엄마를 모시고 와야 비로소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
공항까지 가는 길도 잠길까 봐, 공항도 잠겨 엄마가 탄 비행기가 착륙 못할까 봐 걱정이 많았는데 결국 엄마를 무사히 만났다. 기쁨도 잠시 오늘 하루 내게 일어난 일을 풀어놓으며 예정과 달라진 점들을 공유했다. 말씀드린 콘도가 아닌 작은 호텔에서 지낼 것이고, 가보고자 했던 곳들이 물에 잠겨 가볼 수 없다고. 다행히 엄마는 내가 무사해서 다행이란 말과 함께, 고생했다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비가 무지하게 내리더라도, 설령 이 도시에서 아무 관광도 못하고 돌아가도 딸이 당신을 불러줘서 함께 이 도시에 있었던 것으로 족하다고 해주셨다. 그제야 나의 온전한 피난이 시작되었다. 타지에서의 이 예고치 않은 난리에서 무사히 벗어나 안식처를 찾은 느낌이었다. 먼 길을 날아온 사람과 홍수의 위험에서 헤엄쳐 나온 사람. 각자의 사정으로 하루가 길었던 모녀는 그렇게 회포를 풀고 잠이 들었다.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이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 어로
‘퀘렌시아’라고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퀘렌시아는 회복의 장소이다.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
본연의 자기 자신에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다.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퀘렌시아이다.
나아가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자신이 될 수 있다면
싸움을 멈추고 평화로움 안에 머물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곳이 퀘렌시아가 될 수 있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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