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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끝났지만, 나는 계속 간다.

애씀을 내려놓고, 다정히 나를 들여다본 시간

by 안긁복의 모두극뽁

잘 보던 드라마를 결말까지 못 보는 사람, 읽던 책이 재미있을 수록 단숨에 읽지 않고 부러 덮어두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나다. 한참 재미있게 연재하던 치앙마이 여행기는 끝자락에 이르자 무얼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떻게 마무리해야할지 어려웠다. 길게 길게 늘였으나 결국은 연재가 미뤄진 것에 대한 민망한 소회를 밝히고 시작해본다.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밤, 나는 어김없이 구시가지의 조용한 골목길을 걸었다. 낮에 갔던 쿠킹 클래스에서 선생님이 싸준 망고찹쌀밥을 조심스레 들고, 자주 가던 재즈바 앞 벤치에 앉았다. 거리는 여전히 분주했지만, 내 마음은 한 달 전보다 훨씬 고요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낯선 공기, 낯선 언어, 낯선 시간에 휩쓸리듯 서 있었다. 몸은 지쳐 있었고 마음은 상처투성이였다. 누군가의 아이를 연구하며 살아온 나는, 정작 내 아이 하나 품에 안지 못한 채, 수많은 주사 자국과 실패의 기록만을 안고 있었다. 이 한 달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니 나는 무사히 버틸 수나 있을지 몰랐던 시작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안다.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처럼, 삶은 우리가 만들지 않아도 흘러가고, 때로는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여행은 내 생애 처음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나는 꽤나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남편을 보낸 뒤 낯선 도시의 숙소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독립성은 허울일 뿐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무언가 결정할 때마다 누군가의 반응을 먼저 떠올렸고, 식사를 하며 ‘혼자 먹는 나’를 의식했고, 길을 잃으면 불안해지기보다 외로워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어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었다는 걸.

하지만 이 도시는, 그 부족함을 조급하게 메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숙소 앞 벤치에서 혼자 책을 읽고, 혼자 카페를 찾고, 혼자 오토바이를 불러 뒷 자리에 타고, 혼자 하루의 계획을 세우는 아주 작은 일들부터 내가 해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아주 작지만 명확한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 도시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치앙마이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자주가는 단골 카페 아저씨는 매일 아침 나를 보며 “굿모닝, 마이 프렌드!”라고 웃어주었고, 미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요가를 가르치기로 결심한 요가강사 친구는 “미국에서 잡도 찾지 않았고, 아마 결혼도 안하겠지만 나는 여기서 아주 잘 살고 있어”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동행을 찾다 만나게 된 한 친구는, 카페 창밖을 보며 “여기선 나를 꾸미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아요”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여행 후반기를 거의 함께했던 유쾌한 오빠들은 "평생 직장이 어딨어. 여름엔 치앙마이 같은 도시에서 휴양하고, 겨울엔 스키 타면서 그리고 남는 시간에 일하면 되지."라고 나의 좁은 세계를 넓혀주었다.

이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은 놀라울 만큼 다양했고, 또 모두가 제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고’ 있었다.
누군가는 파트너 없이 살아가고, 누군가는 아이 없이도 충분히 행복하고, 누군가는 완전히 계획 없는 삶을 선택했으며,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너무 오래, 너무 치열하게 ‘정해진 답안지’ 같은 삶을 좇아왔던 건 아닐까.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아야 하고, 박사가 되었으면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하며, 나이는 많지 않아야 하고, 몸은 건강해야 한다는 조건들. 마치 그것만이 '올바른 삶'이라고 믿고, 그에 도달하지 못한 나를 끝없이 자책하며 살았던 시간들.


치앙마이의 사람들은 나를 다그치지 않았다. 이곳의 풍경과 사람들은 내 결핍을 들춰내지 않았고, 그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나는 애씀을 내려놓고 다정히 나를 살피는 시간을 아주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더 많이 혼자가 되다

치앙마이에서 돌아온 뒤 나는 예전의 나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예전엔 혼자 있는 게 두렵고, 불완전하게 느껴졌다면, 이젠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단단해지는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후 나는 혼자만의 국내 여행을 자주 떠났다.


우리나라의 작고 조용한 소도시들, 오래된 시장이 있는 동네, 바닷가 근처의 조용한 민박집. 그곳들에서 나는 1주에서 길게는 2주씩 머물며, ‘순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 이 순간도 괜찮다”고 마음속으로 말하며, 갖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고,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도 충분히 살아낼 수 있음을 하나씩 익혀갔다.

그 시간들은 나를 점점 더 튼튼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무너지지 않고, 기준에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감사의 인사

이 여행기를 읽어주신 여러분, 그리고 나의 한 달 살이를 함께해준 치앙마이의 모든 인연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행 중에 만난 그 모든 인연들—낯선 이국의 거리에서 내게 미소 지어준 사람들, 동행이 되어준 친구들, 무심히 건넨 말로 내 마음을 움직인 여행자들—그분들 덕분에 나는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따라와준 독자 여러분. 혹시라도 당신이 예전의 나처럼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고,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나를 회복하는 중입니다

이제 나는 다시 내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아직 난임은 끝나지 않았고, 내일의 계획은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조금 더 나은 나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확신합니다.

일단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겠다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치유해나가겠다고. 다른 무엇보다 나를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 여행이 가르쳐주었으니까요.


언젠가 또 흔들리겠지요. 하지만 그때는 기억하려 합니다. 치앙마이에서 들은 재즈 선율, 해질녘 호수에 비치는 황홀한 빛깔들, 그리고 누군가의 다정한 목소리를.

여행은 끝났지만, 나는 계속 갑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여정은 여기서 완전히 끝나지 않습니다. 혼자 여행하며 겪은 시간들, 그리고 난임과 화해해가는 또다른 회복의 기록은 곧 새로운 브런치북으로 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이번 여정을 함께해준 독자님들이라면, 그 이야기 또한 마음으로 따라와 주시리라 믿습니다.



다음 여행기에서 다시 만나요.



“My plan was that I would walk until I felt healed. I had no other plan.”
— *Cheryl Strayed, Wild: From Lost to Found on the Pacific Crest Trail


“내 계획은 단 하나였어요. 치유되었다고 느낄 때까지 걷는 것. 그 외에는 아무 계획도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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