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14주차의 일기
"네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난 너를 너로서 사랑해."
뭔가를 계속 새롭게 만들어내야한다는 1인기업으로서의 강박관념에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의 이 말에 결혼을 결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해야하는지 고민한 후에 스스로 내린 결론은 '세상적인 조건을 다 덜어내더라도 서로를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배우자의 조건'은 얼마든지 세상에 의해 변할 수 있는 것인데 서로를 향한 사랑이 더 쉽게 변할 수 있을거라 폄하하고싶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이 내게 해준 말은 그의 '조건없는 사랑'이 담긴 말이었고, 나 역시 그에게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때 결혼했다. 아직 1년이 채 되지않은 신혼부부이지만 우리는 여태까지는 이 약속을 잘 수행하며 한번도 싸우지않고 잘 살고 있다.
결혼을 하자마자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나에게 '네가 하고싶은거라면 얼마든지 해'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응원을 해준 우리 남편은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 늦게 돌아와서도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 설거지는 꼭 본인이 하고, 주말에도 청소나 빨래 등 집안일도 나서서 하는 완벽한 남편이다. 남편은 항상 일이 많은 회사에 다니지만, 이번 주에 요즘들어 특히 너무 힘들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상황에 내가 옆에 있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 말에 감동을 받은 나는 주말이라도 맛있는 아침을 챙겨주기위해 노력했다.
이번 주에는 갑자기 서울에 일이 생겨 시부모님이 올라오셨다. 하루가 채 되지않는 일정이었지만 잠시나마 오랜만에 시부모님을 뵐 수 있었어서 좋았다. 시부모님 역시 남편처럼 내가 공부를 하겠다고 고백했을 때 조금이라도 젊을 때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좋은 거라며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셨다. 항상 시댁에 내려갈 때마다 몸도 마음도 편하게 해주셔서 (아무도 잘 믿지는 않지만) 나는 시댁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항상 여행가는 기분이자 초록이 가득한 휴양지로 밀양은 최고의 공간이다. 별다른 조건없이 사랑해주시는 모습에 나는 항상 감동하고, 나 역시 그만큼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해진다.
주말에는 바로 옆에 살고있는 부모님과 오랜만에 대학로에 나가 저녁을 먹었다. 나는 참 감사하게도 내가 하고싶은 일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관둬도, 기약없는 세계여행을 떠나도 항상 응원을 해주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바로 옆에 붙어 살다보니 우리 엄마는 딸에게 나눠줄 생각에 장을 두 배로 보고, 아빠는 아직도 집에서 지내는 딸처럼 오며가며 일이 있을 때마다 태워다주신다. 더 나이가 들어도 나는 평생 부모님의 딸로서 조건없는 사랑의 대상이겠지.
누군가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남편의 조건없는 사랑. 양가 부모님의 조건없는 사랑. 그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나도 남편을, 부모님을, 시부모님을 모두 조건없이 사랑할 수 있고 그래서 행복하다. 모든 사랑에는 조건이 없을 때 힘들지않다. 원하는 것도, 기대할 것도 없이 그 자체만으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의 노력도 참 많이 필요하지만, 결국엔 기적처럼 행복한 일이다.
공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선택한 공부라면, 내가 하고자하는 학문이라면 조건없이 사랑해야지만 힘들지 않다. 이렇게 공부해서 졸업하면 돈을 더 벌어야지, 어디 취직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괴롭다. 학위를 통해 기대하기보다는 학문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탐구심이 바탕이 되야지만 이 기나긴 과정이 힘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랬을 때 내가 애정을 준 만큼, 다시 학문으로부터 내가 사랑받을 수 있고, 그 사랑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 거라는 로맨틱한 생각을 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행복한 마음으로) 과제를하고 시험공부를 해야지.
조건없는 사랑은 결국 마인드 컨트롤이니까.
+ 이 기회를 빌어 첫 학기 동안 공부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도와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