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특별한 공간이 생겼다

대학원생 15주차의 일기

by 윤지민

손녀딸이 보고싶으시다고 할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우리 지민이는 나중에 커서 여박사가 되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할아버지가 여박사 되라고해서 제가 지금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있잖아요!'라고 투덜거렸더니, 공부를 시작하고 자주 못 찾아가는 내게 서운하셨는지 진짜 할 줄은 몰랐다면서 시치미를 떼신다. 다음주면 학기가 끝나니 바로 할아버지와 추어탕을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다.


사실 박사를 시작하면서 나는 할아버지의 후배가 되었다. 평양에서 대학을 나오고 이북에서 약사로 일하시던 할아버지는 전쟁이 나면서 기차 지붕에 겨우 앉아서 남쪽으로 내려오셨다. 전쟁 통에도 혹시 모르니 대학졸업장과 약사면허증은 챙겨오셨지만 막상 남북이 나눠지니 쓸 수가 없으셨다고 한다. 취직을 할래도 이북 대학은 쳐주지도 않았고, 약사 시험도 다시 보셔야만했다. 나름 평양에서는 좋은 학교였는데도 인정해주는 곳이 없으니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화학과 석사 1기로 졸업을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를 꿈꾸셨던 할아버지가 직업을 얻는 데는 이북에서의 대학 졸업이 다시 발목을 잡아 결국 꿈을 접으셨고, 사업가의 길을 가셨다고 했다. 당시 시대적 환경 때문에 다시 공들여 학교를 졸업하고도 상처를 받으셨던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나는 할아버지의 동문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아무 연고도 없는 학교보다는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15주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학교에 정이 들기 시작했다. 수업마다 계속되는 교수님들의 주입식 애교심도 물론 있었지만, 실제로 모든 수업들이 만족스러울만큼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수업이든 관계없이 관광에 대해 같은 가치를 공유하시는 교수님들과 그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는 동기와 선배들의 모습이 좋았다. 학생식당 메뉴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생겼고, 매 수업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티를 마실 수 있는 단골카페도 만들었다. 아, 새로 생긴 핫도그집에서 늦은 저녁 수업이 끝난 후 하나씩 사먹는 치즈핫도그야말로 요즘 내 학교생활의 행복이다. 특히 언덕에 위치한 학교인만큼 미세먼지 없는 날에는 예쁘게 보이는 한강뷰가 명품이다. 요즘에는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더라도 내부순환로를 따라 지나갈 때면, '우리 학교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제 진짜 나도 학생이 되었나보다.


마지막 수업의 기말과제로 장소성과 장소애착에 대한 페이퍼를 쓰고 있다. 장소애착에 대한 개념을 공부하면서 고작 15주라는 시간동안 이렇게 애착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보내야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그동안 이 공간에서의 배움과 성장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학교를 처음 선택할 때는 주변에서는 학사, 석사, 박사를 모두 다른 학교에서 하는 것에 대해 우려섞인 조언을 해주는 분도 계셨지만, 나는 오히려 다양한 학교의 학풍을 경험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내가 애착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하나씩 늘어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 한 주 남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학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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