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겨우살이 09화>
© zuzi_ruttkay, 출처 Unsplash
벌써부터 이러면 안되는데, 지난 수요일을 그냥 지나쳤어요. 2주 만에 연재를 하게 되어 죄송해요. 이마저도 자정을 넘겨 목요일 발행이 될 것 같아요. 누가 제 글을 기다릴까 싶은 쭈그리 마음이지만 그래도 연재키로 했기에 사과의 마음을 먼저 전해요.
7월, 장마, 이상해요. 저희 직장은 무더위가 찾아오면 일이 많아요. 인테리어 수요가 많은데 그게 무더위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예요. 요즘 저는 매우 바빠요. 아직 현장을 잘 모르는 후임직원을 데리고 5~6개의 현장을 관리해요. 아무리 간단한 현장이라도 신경 쓸게 많은데, 몇몇 현장은 매우 복잡한 내용들이 많아요. 그래서 고객과의 소통도 많고, 그 시점을 잘 지켜서 해야 하고, 매일 저녁 퇴근 후 다음 날을 준비하는 업무정리를 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넘어가요. 자칫 야구경기에 빠져있기라도 하면 업무정리를 늦게 시작하고 끝내자마자 잠들어야 하는 일상이죠.
이럴 땐, 후임 직원이 나름의 역할을 잘 해내줄 수 있다면, 훨씬 현장관리가 쉬워지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꼼꼼히 체크해서 지시를 해도 엉뚱하게 할 때가 많은 친구예요. 그러다 보니, 현장정보를 바탕으로 관리 가이드를 알려주기만 해도 돼야 하는데, 모든 현장을 신경 쓰고, 디테일한 지시를 다 내려줘야 하다 보니 매우 바빠요.
내일 아침이면 어느 현장부터 가야 하나, 동선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일까 등등, 많이 힘겨워지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는 최근 후임에 은근한 짜증을 많이 낸 것 같아요. 그래서 어제는 둘 만의 회식을 하며 쑥스러운 사과의 이야기를 먼저 건넸어요. 물론, 더 잘해보자는 얘기도, 조언도, 잔소리도 함께 하긴 했죠. 여러모로 이 친구와의 대화시간이 괜찮게 흘러간다 싶었어요. 그때였어요. 말 한마디에 가져다주는 그 사람의 가치관, 의지를 반영하는 표현 등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왔는데요, 조금 힘이 빠지더라고요.
"실장님은, 하이엔드 방식까지는 안 하실 거잖아요."
이야기인즉슨, 저희 회사는 속칭 동네인테리어는 아니고, 그렇다고 일이억씩 하는 고급인테리어를 하는 하이엔드 방식을 추구하는 업체도 아니에요. 중저가 인테리어이며, 아파트 위주예요. 그러다 보니, 아파트마다의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면, 현장별로 특별하게 큰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메인 인테리어 플랫폼에서 전국 1위를 하기도 하는 업체이기도 해요. 이 친구의 말은 이런 회사 환경에서의 배웠는데, 이 정도 수준에서 배워 독립하고, 딱 이수준의 인테리어를 하려는 거 아니냐는 말이었죠.
저의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에 대해서 깊숙이 알지 못하는 친구가, 나름 자신에게 조언을 가장한 교육의 장으로 회식하는 도중 주고받는 대화에 제게 건네는 말의 성질과 무게가 참 당황스러웠어요.
'아, 이 친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는가?'
평소에도 업무실수로 작은 꾸지람을 들을 때면, 크게 개의치 않는 의연한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어요. 주눅 들지 않는 성격 같아서 참 좋게 생각하긴 했는데, 잦아지는 실수와 다수의 지시와 코칭을 그대로 수행하지 않는 모습에 그간 짜증을 냈었던 거거든요.
'하~, 어쩌지, 앞으로 갈 길이 멀겠는데... 이 친구도, 나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돈을 잘 벌고 싶다면서, 일 자체에 대한 노력의 소홀함과 순간의 열심히 받쳐주지 않는 적정선의 목표로 더디 가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자를 어떡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내 담당 후임인데...'
'언제까지 현장정리하면서 공사 폐기물만 치우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인데...'
'나는 왜 더 힘들어지는 상황에 놓이는 것인가...'
그러다 문득, 대표 형님에 대한 그간의 미움이 나름 이해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인테리어라는 게 사실, 정직원으로 일할 수 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일하는 경우도 많고, 인테리어 자체를 정말 정말 해보고 싶어서 시작하는 경우보다 나름 돈 잘 번다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이일 저일 해보다 기웃대 보는 경우도 사실 있다 보니, 진심으로 이 일을 내 일로, 전문적으로 해보고자 하는 끈기와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때론 그 반대로 정말 열심히 노력의 노력을 더해서 빠른 성장을 하는 직원이 있어요. 그럼 대표 입장에서는 현장을 빨리 맡길 수 있지만, 그만큼의 대우를 해줘야 해요. 그리고 좀 이른 시점에 홀로 서버리려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보통 막노동 현장처럼 알아서 어깨너머 배우도록 최소한의 가르침만 주는 경우도 많죠.
'뭘 알려주고나 하라고 해야 할 거 아닌가?'
3년 넘게 일하는 동안 참 자주 들었던 생각이에요. 가르쳐 주지도 않아, 정보를 준 적도 없어, 최소한의 자신의 일도 대충 해... 어떨 땐 일부러 똥을 싸놓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어요. 알아서 치우라고. 치우면서 어떻게 똥이 싸지는지, 어떻게 치우는 게 좋은 방법인지를 배우라는 듯 말이죠. (좋게 좋게 생각하지 않으면 언제든 떠나려는 마음이 올라와요.)
의욕이 많지 않은 후임.
돈은 벌고 싶지만, 최대한 쉬고 싶은 대표.
독립하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 좀 더 갈길이 있어서 열심히 똥 치우며 현장관리하는 김실장.
이 셋 모두를 이해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더라고요. 단, 그러므로 인해 내가 짊어져야 하는 것들이 고스란히 많아진다는 사실이 있을 뿐이고요.
P.S. 저는 사회복지사 출신이에요. 그 시절 가장 중요시 여겼던 가치가 '역지사지' 였어요.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뭐, 이해 못 할 일이 없죠. 힝~ 서글프지만, 잘 해내볼게요.